그냥 저냥

속 깊은 배려로부터 얻는 위안

새 날 2017. 6. 1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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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는 엄마에게 MP3 플레이어를 사달라고 조르지만,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 때문에 다음 기회에 사주겠노라며 엄마는 애써 아이를 달랜다. 그런데 천지의 행동을 곱씹어보니 평소와는 어딘가 모르게 많이 다른 느낌이다. 생전 무언가를 사달라며 조르던 아이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왠지 싸한 느낌이 들어 언니인 만지에게 어떤 종류의 MP3 플레이어가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확인해보라며 당부하지만, 무슨 연유인지 천지에게 연락이 닿지 않는다.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간 모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간은 이들의 편이 아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늘 착하고 예뻤던 천지가 너무도 허망하게 이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지나치게 가혹한 시련이 아닐 수 없다.


영화 '우아한 거짓말'


유서 한 장 없이 홀연히 떠난 천지가 엄마에겐 야속했다. 엄마와 만지는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는 등 의식적으로 천지를 잊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천지가 종종 이용하던 뜨개질용 털실 속에서 그녀가 살아 생전에 남긴 것으로 보이는 쪽지가 발견되고, 황망하게 떠난 천지가 남긴 흔적을 바라보면서 엄마와 만지는 복받치는 서러움과 그리움에 다시금 목놓아 울고 마는데... 


영화 '우아한 거짓말'


영화 '우아한 거짓말' 속 장면 일부다. 세상을 먼저 떠난 딸이 남긴 쪽지는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난 뒤에 발견되어 상처로 인해 곪아터지고 몹시 고통스러워하던 엄마와 언니의 마음을 정성껏 쓰다듬으며 어루만진다. 이는 사려 깊고 배려심 많던 천지가 그녀의 가족과 이 세상을 위해 마지막으로 남긴 선물이다. 


천지가 남긴 쪽지는 그녀가 왜 세상을 먼저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 흔적을 복기하게 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으며, 아울러 극단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를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긴 털실과 함께 마지막 생명의 끈이 되어줄 것을 간곡히 호소하고 있다. 



영화속 천지처럼 속 깊고 배려심 많은 소녀는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미국에서의 사연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10년 전 세상을 떠난 소녀가 자신이 죽기 전 가족을 위해 수백 장의 쪽지를 숨겨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단다. 고작 6세에 불과하던 엘레나는 안타깝게도 뇌종양을 앓고 있었으며, 2006년 당시 9개월의 시한부 삶을 통보 받았는데, 그녀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사랑해요, 엄마 아빠 그리고 그레이스. 아파서 미안해' 등의 메시지가 담긴 쪽지를 가족들에게 가능한 한 많이 써서 집안 이곳 저곳에 감춰놓았단다.


ⓒ서울신문


그녀는 1년 뒤 결국 숨을 거뒀고, 엘레나가 생전에 벌였던 일들을 전혀 눈치 채지 못 했던 가족들은 후에 집안 곳곳에서 엘레나가 남긴 흔적들을 발견함과 동시에 기적과도 같은 사실에 놀라워하면서 그녀를 잃은 슬픔으로부터 벗어나 큰 위안을 얻고 있다고 한다. 아이가 남긴 쪽지가 얼마나 많았던지 이를 모두 찾는 데에만 무려 2년 여의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하니, 그 많은 쪽지를 하나 하나 정성껏 작성하면서 꾹꾹 눌러 담았을 엘레나의 애틋한 마음 씀씀이가 이역만리 떨어진 이곳까지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다. 


6살 어린 꼬마 소녀에게 어쩌면 이토록 기특한 생각이 가능했던 것인지 곱씹어볼수록 가슴 한켠이 뭉클해진다. 엘레나의 속 깊은 배려는 어느덧 나비효과가 되어 그녀의 부모가 자선단체를 설립하여 암 환자들을 돕는 데 힘을 보태고 있고, 그녀가 남긴 쪽지들은 ‘남겨진 쪽지’라는 한 권의 책으로 발간되어 차갑게 얼어붙은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녹이며 따뜻한 위안이 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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