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원칙의 중요성 일깨운 '노룩 취재' 논란

새 날 2017. 6. 3.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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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JTBC 앵커가 지난 달 31일 방송을 통해 내보냈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두 딸의 거제 땅 기획 부동산 매입 의혹 보도와 관련하여 다음 날 뉴스룸을 통해 사과했다. 그는 '기획 부동산'이라고 표현한 부분에 대해 "부동산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했지만, 통상적인 의미와 달라 혼동을 드렸다. 이 점에 대해 시청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했다. 아울러 이른바 '노룩(No Look) 취재' 논란에 대해서도 "기사는 기본적으로 현장에서 출발한다는 원칙에 충실하지 못했다"며 이 또한 사실임을 인정했다. 


JTBC 동영상 캡처

그의 사과에 앞서 온라인에서는 뉴스룸의 보도 행태에 대한 네티즌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기획 부동산은 정확한 용어가 아니라는 지적과 함께 영상 자료로 삽입된 사진 출처가 '다음 로드뷰' 캡처본임을 확인하고, 커다란 의혹으로 불거질 수도 있는 사안을 취재진이 현장에 직접 나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보도했던 사실을 꼬집고 나선 것이다.  


방송국 책상에 앉아 구글맵과 다음 로드뷰에 의지, 이를 캡처하거나 해당 지역 부동산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녹취하는 등의 안이한 방식으로 취재한 정황이 짙은 데다가, 이에 대해 손석희 앵커는 제대로 된 검증 절차 없이 해당 기사의 보도를 그대로 내보내게 했다는 사실이 네티즌들을 화나게 한 것이다.


뿐만 아니다. 네티즌들은 이러한 보도 행태를 '노룩 취재'라 지칭하고, 이를 빗댄 기발한 형식의 시위에 나섰다. JTBC의 취재 방식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 역시 직접 시위 현장에 나가지 않은 채 다음 로드뷰를 이용하여 JTBC사옥 앞 이미지를 캡처한 뒤 ‘노룩 취재 사과하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든 시위자의 이미지를 덧입혀, 이를 SNS와 각 인터넷 커뮤니티에 일제히 게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참여자는 늘어났고, 시위 형태 또한 더욱 다양한 모양새를 띠어갔다. 이는 현장에 가지 않고 다음 로드뷰를 이용하여 취재한 JTBC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비꼬고 있는 셈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이른바 진보 언론으로 분류되는 '한경오'를 향한 네티즌들의 견제 및 감시 기능이 강화되면서 한동안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웠던 바다. 물론 이들 언론과 네티즌들 사이에 형성된 전선의 긴장감은 여전히 팽팽하다. 뿐만 아니다. 네티즌들이 자처하고 있는 언론을 향한 감시와 견제는 앞서 언급한 진보 및 '조중동'과 같은 전통적인 보수 언론뿐 아니라 언론 전체로 그 범주를 점차 확대해 나가고 있는 양상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JTBC 뉴스룸이 이른바 '노룩 취재' 형식의 보도를 내보낸 것이다. 가뜩이나 감시의 눈초리를 번뜩이던 네티즌들이 이를 놓칠 리 만무했다. 이곳 저곳에서 불만이 쇄도하더니 마침내 가공할 만한 에너지가 JTBC를 향하기 시작했다. 재능과 창의력이 발현되고 통통 튀는 아이디어가 한 곳으로 모였다.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노룩 시위'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사태의 발화점 역할을 톡톡히 하며, 적어도 시사 보도 영역에서 만큼은 나름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해온 것으로 받아들여지던 JTBC이건만, 네티즌들에게 우호적인 반응 일색이던 얼마 전까지의 상황과 견주어보면 급반전이 아닐 수 없다. 



최근 SBS는 수 차례 반복되고 있는 일베 방송 사고와 관련하여 특단(?)의 조치를 내놓았다. 영상물 제작 시 포털에 올라온 이미지를 다운로드하여 사용해오던 관행을 지양하고 해당 기관의 검증된 이미지만을 사용하겠노라는 방침이다. 이를 반대로 해석해 보면, 그동안 방송물을 제작함에 있어 검증된 이미지를 사용하기 보다는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경로를 통해 무단으로 활용해왔다는 의미가 된다. 일베가 온라인 곳곳에 그물을 짜놓은 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먹잇감이 바로 이러한 형태 아니었을까 싶다. 결국 SBS 스스로 먹잇감을 자처했노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그동안 되풀이돼온 SBS의 일베 방송사고는 결국 예견된 참사였던 셈이다.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인 원칙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SBS의 사례는 직접 현장에 투입되어 발로 뛰기보다 손쉬운 취재 방식을 택하여 논란으로 빚어진 JTBC의 노룩 취재와 상당 부분 닮아있다. 물론 SBS가 그동안 계속돼온 경고 및 비난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방송 사고가 빈번했던 것처럼 새롭게 꺼내든 방식이 이를 완전히 차단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않는다. 다만, JTBC 뉴스룸으로 불거진 '노룩 취재' 관행이 언론 전체에 경종을 울리고 있듯, 방송물 제작 관행에도 이참에 모종의 변화가 생길 수 있기를 아주 조심스럽게 기대해볼 뿐이다.


근래 '노룩'이라는 용어가 유행이다.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이 공항에서 선보인 '노룩 패스'가 그의 시발점이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권위주의의 단면을 들춰낸 바 있고, 최근 불거진 JTBC의 '노룩 취재' 논란은 언론사 기자들의 취재 관행을 도마 위에 올려놓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노룩 패스는 다양한 패러디물을 양산시키면서 사회 곳곳에 여전히 팽배한 권위의식에 일침을 가하고 있으며, 노룩 취재는 노룩 시위라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기발한 형식의 시위 문화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원칙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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