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추모를 넘어 희망으로 '노무현입니다'

새 날 2017. 5. 28.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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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의 청산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부여안은 채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서울 종로 지역구를 과감히 박차고 부산으로 내려가 이곳에 출사표를 던진 노무현, 그는 거대한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국회의원과 지자체장 선거에서 연거푸 패배하고 만다. 기득권을 뿌리치고 일관된 행보를 보여온 그에게 '바보 노무현'이라는 애칭이 붙여진 건 바로 이 즈음이다. 우리 정치권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소신으로 똘똘 뭉친 그의 당찬 모습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노무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자발적 모임인 '노사모'가 결성되고, 잇따른 패배로 실의에 빠진 그를 해당 조직이 다시금 일으켜세우는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된다. 새천년민주당이 정당 최초로 국민참여경선 방식을 통해 대선 후보를 선출하기로 결정하면서 그를 기필코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만들겠노라는 놀라운 프로젝트가 마침내 시동을 건 것이다. 



경선이 시작될 당시만 해도 노무현 후보의 인지도는 거의 바닥 수준이었다. 당시엔 이인제 후보가 대세론을 굳히고 있던 상황, 한화갑 후보 등이 그의 뒤를 바짝 쫓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첫 경선이 시작된 제주도에서 노무현 후보가 3위를 차지하면서 일찌감치 파란을 예고한다. 


네거티브에 집중하던 다른 후보에 비해 노무현은 그만의 정치적 소신을 꿋꿋하게 피력하였으며, 이러한 진정성 있는 모습이 점차 대중들로 하여금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울산 경선은 곧 다가올 대선 승리의 서막을 알리는 일등공신이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그가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후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그에게도 시련이 닥쳐온다. 노무현을 향한 이인제의 공격은 차마 같은 당의 후보라고 말하기조차 꺼려질 만큼 치졸한 색깔론으로 일관한다. 


그러나 집요한 네거티브 공격으로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노사모'는 지극정성으로 이를 방어하는 데 힘을 쏟았고, 전체 경선 결과의 판도를 좌우하게 될 수도권의 첫 경선지 인천에서의 대결은 그가 승리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분기점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극적인 과정을 거친 끝에 마침내 바보 노무현은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으로 우뚝 서는데...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인지도 낮은 노무현 후보가 이인제 대세론을 잠재우고 새정치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과정은 정말 두고두고 다시 봐도 가슴 벅찰 만큼 명승부였다. 수많은 고비가 있었고, 특히 인천 경선을 앞둔 상황에서 불거진 색깔론과 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던 이인제 후보의 네거티브 공세가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위기였다. 


치명적인 공격 가운데 하나인 그의 가족사와 관련하여 노무현 후보는 뒤로 피하거나 감추기보다는 오히려 정공법을 택했다. 돌이켜보면 이러한 그만의 소신이 승기를 잡는 핵심 포인트였다. 그는 장인의 좌익 경력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뭐가 잘못됐습니까?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 그렇게 하면 제가 대통령 자격이 있고 이 아내를 그대로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까?" 



그의 연설은 늘 대중들의 심금을 울리는 멋진 것이었으나 인천에서의 연설은 그 가운데서도 단연 백미였다. 여과 없이 드러난 그의 의리, 진솔함 그리고 과감한 결단력은 이를 대중들에게 노무현만의 이미지로 각인시키면서 조금씩 그의 방식이 먹혀들기 시작하는 유인이 된다. 지지율 2%의 후보가 대세론으로 거론되던 거물급의 후보와 여타의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는 파란을 일으킨 것이다. 


인천 경선을 통해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반드시 지켜야 할 바른 도리를 몸소 보여준 그는 언제나 한결 같은 인물이었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대선자금 문제로 고충을 겪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거리낌없이 동업자이자 동지라며 그를 감싸안았던 일화는 이익이라면 배신과 배반을 일삼는 오늘날의 시대적 조류 앞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이 작품은 자연스레 지난해 개봉했던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서울 종로를 뿌리치고 부산으로 내려가 지역주의 청산이라는 시대적 소임을 완성하기 위해 과감히 맨몸으로 부딪혀 싸웠던 부산에서의 국회의원 및 지자체장 도전 과정과, 노무현을 좋아하고 그처럼 뚝심있게 소신을 지켰던 고 백무현 화백의 20대 국회의원 선거운동 과정을 그렸던 '무현, 두 도시 이야기'와는 달리, '노무현입니다'는 2002년 새천년민주당 내 대통령 후보 경선의 드라마틱한 과정과 노무현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담담한 소회를 그 중심에 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하여 유시민 전 장관, 조기숙 교수, 안희정 지사, 배우 명계남 등 노무현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많은 인물들의 인터뷰 내용이 생생하게 담겨있는 점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인터뷰에 응한 분들이 소회를 밝히는 와중에 감정에 복받쳐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어느덧 관객들을 울컥하게 만들고 있으나 그 가운데서도 특히 조기숙 교수가 노무현 대통령의 술에 대한 일화를 언급하다가 그분께 더 이상 술을 사들고 갈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슬프다며 말씀을 잇지 못하는 장면이 내겐 가장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관람석 이곳 저곳에서도 연신 코를 훌쩍거리는 이들이 많았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꿨던 노무현 대통령, 재임 당시엔 비록 그 꿈을 이루지 못했으나 그로부터 10년이 지나고, 대통령께서 서거하신 지 8년이 지나 당신께서 뿌렸던 씨앗이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을 통해 비로소 발아하는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유시민 작가가 노무현 대통령 생전에 그분께 언급했던 것처럼 당신께서는 사람 사는 세상의 첫 파도에 올라탄 셈이고, 비록 현재의 상황을 직접 바라볼 수는 없지만, 그 이후에 밀려드는 파도를 통해 대통령께서 꿈꾸고 바라던 세상에 한층 가까워지고 있음을 우리는 확신하게 된다. 



사람 사는 세상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음을 몸소 느낀 건 지난해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광장으로 운집한 촛불의 장엄한 물결을 통해서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던 노 대통령의 유지 대로 깨어있는 시민들이 촛불이라는 조직된 힘을 한데 모아 오늘날의 결과를 만들어낸 셈이니 말이다. 


이번 촛불 혁명이 무엇보다 의미 있는 건, 4.19혁명이 박정희의 쿠데타로 미완에 그쳤고, 5.18 광주민주화항쟁 역시 전두환의 쿠데타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6.10민주항쟁 또한 노태우에게 대통령직을 헌납하면서 꿈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으나, 이번 혁명만큼은 문재인 대통령을 당선시킴으로써 그 뒷마무리까지 완벽했던,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놀라운 결과를 보고 있자니 노무현 그는 선지자였음이 틀림없다. 그의 시원시원한 연설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아쉽고 안타깝지만, 그가 남긴 시대정신은 이제 추모를 넘어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대중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깊이 각인될 게 틀림없다. 이 작품 속에서 87년 6월항쟁 당시 거리 위의 대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불렸던 운동가요 '선봉에 서서'를 부르며 선거운동에 여념이 없던 노무현 대통령의 뒷모습은, 바로 문재인정부의 탄생으로 성큼 다가선 사람 사는 세상의 시대정신을 처음 구상하고 이를 꿈꿨던 그의 선지자적인 모습을 기림과 동시에, 이제는 미래를 향해 과감히 희망을 품어보자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감독  이창재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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