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고풍스런 비주얼이 매력적인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

새 날 2017. 5. 12.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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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공연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이석진(고수)은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정하연(임화영)이라 불리는 여인에게 빠져든다. 그녀는 얼마 후 이석진이 소속된 마술 극단 단장의 눈에 띄게 되고, 결국 이석진과 동일한 극단의 직원으로 정식 발탁된다. 동시에 이석진과 마술 공연을 펼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된다. 늘 같은 무대에 서서 함께 일하던 두 사람이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었던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러던 어느날의 일이다. 그녀가 부재 중인 상황에서 의문의 편지 한 통이 배달되고, 그녀가 평소 신주단지처럼 소중히 간직해오던 가방 안에서 위폐 제작을 위한 것으로 보이는 동판이 발견되면서 이석진이 그녀에게 품은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한편 그녀로부터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이석진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정하연은 누군가에 의해 끔찍한 방식으로 살해되고 만다. 어느 누구보다 사랑했던 그녀의 억울한 죽음을 반드시 파헤치고 앙갚음을 하기로 굳게 결심한 이석진이다. 



정하연의 죽음을 둘러싼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찾을 요량으로 변신을 시도한 끝에 의심스럽게 여겨오던 주변을 맴돌던 이석진은 마침내 유력한 용의자 남도진(김주혁)의 흔적을 포착한다. 몸을 한껏 낮춘 그는 남도진의 운전기사 역할을 자처, 그에게 밀착 접근을 시도하는데...



이 영화는 추리문학계의 거장이라 불리는 작가 빌 S. 밸린저의 소설 '이와 손톱'이 원작으로 알려져 있다. 석조저택에서 일어난 시신 없는 살인 사건이라는 극의 흐름 사이사이에 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법정 공방 신을 삽입시켜 흡사 추리소설 한 권을 실시간으로 읽고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을 선사해주는 독특한 방식을 차용하고 있다. 이는 극의 맥락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역할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건 전반에 대해 유추해볼 수 있는 장치로도 활용된다.  



법정 공방은 극적이면서 나름 치열하다. 시신은 온 데 간 데 없고 오로지 사체를 태운 흔적과 손가락 하나만 남은 살인 현장에서 논리적으로 용의자의 죄를 입증하려는 검사(박성웅)의 날카로움과, 의뢰인이 바라는 대로 사체가 존재하지 않는 까닭에 결정적인 증거가 불충분한 사건임을 최대한 부각시켜 이번 사건을 원천적으로 무마시키려는 변호사(문성근)의 노련미가 맞붙으면서 조용하던 법정 공간은 일순간 들썩이게 된다.



사랑하는 여인 정하연의 억울한 죽음을 되갚고자 감내해야 했던 이석진의 고통과 개인적인 노력은 눈물겹기 짝이없다. 연민이 느껴질 정도다. 그가 잘생겨서 그런지 더욱 안쓰럽다. 


고수에겐 1940년대 후반의 고풍스러운 의상들이 너무도 잘 어울린다. 어떤 의상을 입혀놓아도, 심지어 남도진의 기사가 되기 위해 일부러 선택한 남루한 의상조차도 그에겐 예술이 따로 없을 정도다. 의상만큼이나 보다 다양한 그의 연기력을 감상하는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점도 이 영화만의 매력이다.  



다만, 극이 특정 결과 및 형태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할 만큼 뻔한 흐름과 다소 밋밋한 전개는 서스펜스 장르로써는 옥에티라 할 만하다. 조금 더 치밀하면서 탄탄한 구성이 아쉽다. 덕분에 이러한 류의 장르에서 흔히 선보이던 강력한 한 방이나 거친 반전을 기대한다면 다소 실망스러운 작품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박성웅과 문성근 등 중견 배우들의 묵직한 연기가 그나마 이러한 단점을 일정 부분 상쇄시키는 역할을 톡톡히한다. 아울러 극의 분위기와 찰떡궁합인 의상과 소품 등을 적재적소에 활용, 1940년대 경성을 중심으로 한 시대적 배경을 화면에 고스란히 구현하여 마치 흑백영화를 감상하는 듯한 고풍스러운 비주얼을 선보인 점은 이 영화만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라 할 만하다.



감독  정식 김휘


* 이미지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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