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어른도 아이도 '월화수목금금금'

새 날 2017. 4. 11. 11:51
반응형

'월화수목금금금'


이는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이다. 살인적인 노동시간으로 인해 휴일조차 반납하고, 일주일 내내 일을 해야 하는 다수의 사회인들에게 주5일 근무제도는 사실상 무력화된 지 오래다. 금요일 이후엔 으레 토요일, 일요일 등 휴일이 뒤따라올 법한데 끔찍하게도 왜 금요일의 연속일까? 


이는 현대인들의 일에 대한 심리 상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월요병과 같은 일종의 강박 관념이다. 금요일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거기에 머무르고 있는 건, 야근과 휴일 근무가 일상화되어 저녁이 있는 삶 따위는 꿈조차 꿀 수 없는 그들의 비참한 현실을 꼬집고 있는 셈이자 일종의 자조적인 표현이다. 한국인의 노동시간은 OECD 회원국 평균 노동시간 1천766시간보다 무려 347시간이나 더 긴, 연간 2천113시간에 이르는 세계 최장 수준이다. 


이렇듯 장시간의 노동에 허덕이는 현대인들, 안타깝게도 그들이 앞서 겪어왔을 학창시절이라고 한들 지금과 비교하여 특별히 더 행복했을 것 같지도 않다. 고달프기로 따지자면 도긴개긴이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하루 평균 학습 시간은 10시간을 훌쩍 넘어서는 탓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 또한 세계 최장급이다. 심지어 학습 노동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이니 이쯤되면 말 다한 셈이다. 


아이들의 학습시간은 어른들의 살인적인 노동시간에 버금간다. 어쩌면 성인들이 작금의 세계 최장급의 노동시간을 잘 감내하고 있는 건 역설적이게도 이렇듯 학생시절부터 이미 단련되고 열심히 극복해온 덕분이 아닐까 하는 끔찍한 생각마저 든다.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70%를 상회한다. 대학 진학을 꿈꾸는 학생들이 방과후 군집을 이뤄 학원으로 향하는 모습은 어느덧 우리에겐 너무도 낯익은 풍경이자 일상이 됐다. 현행 입시제도 틀 안에서는 공교육만으로 이른바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일은 사실상 언감생심이다. 아무리 공교육 내부로 사교육을 흡수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사교육업체를 죄인처럼 취급한다 한들 공교육과 사교육이 담당하는 역할은 엄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직장은 물론이거니와 대학 줄세우기가 만연돼 있고, 고등학교, 중학교 심지어 유치원까지 서열화가 고착화된 우리 사회에서 남들보다 앞서가려는 노력은 흠이 될 리 만무하다.



사교육에 대한 공교육의 지나친 경쟁 의식과 배척은 기형적인 현상마저 낳고 있다. 방과후학습과 야간자율학습이라는 명분으로 아이들을 학교에 강제로 묶어두려는 움직임은 그 가운데 하나다. 학교에서 정규 수업만을 마치고 그대로 귀가시킬 경우 아이들이 학원이나 과외 등으로 우루루 몰려다니게 되는 현실이 두려워 이를 제한하려는 일종의 무리수다. 작금의 살인적인 학습시간과 관련하여 사교육의 영향력이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으나 공교육 안에서 이뤄지는 학습량 또한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월화수목금금금'은 비단 성인들뿐 아니라 장시간의 학습에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있는 요즘 아이들의 생활 패턴을 고스란히 비트는, 또 다른 표현 양식 중 하나다. 그 때문일까?


근래 '학원휴일휴무제'라는 매우 기묘한 제도 도입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치솟는 사교육비와 아이들의 살인적인 학습량을 줄여보자는 취지로 빼든 카드다. 구체적으로는 적어도 일요일 하루 정도만이라도 의무적으로 학원 문을 닫도록 이를 법제화하여 아이들의 숨구멍을 틔워주자는 제안이다. 즉, '학원휴일휴무제'라는 용어는, 골목상권을 보호하고 영세상인들을 살리자는 취지로 대형마트들이 한 달에 두 번 의무적으로 휴일에 문을 닫게 하고 있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제도에서 착안한 듯싶다.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오죽하면 이런 제도까지 꺼내들었겠나 싶다. 때문에 살인적인 학습량에 치인 아이들로 하여금 일요일만이라도 잠시 쉬게 해주자는 이 기특한 제안은 사실 반대할 만한 명분이 딱히 없다. 골목상권 보호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대형마트 의무휴업제도가 현재 잘 시행되고 있듯이, 장차 이 나라의 기둥이 될 청소년들의 휴식을 보장하고 이들을 보호하자는 명분인 '학원휴일휴무제'를 실시하자는 주장은 그래서 꽤나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아동은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자신의 나이에 맞는 놀이와 오락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가 있다.” 1989년 유엔이 만장일치로 채택한 아동권리협약 내용 중 일부다. 이를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라도 해당 제도는 어쩌면 필요악일지도 모른다. 


ⓒ한국일보


여성가족부의 2016년 청소년통계에 따르면 초중고생 10명 중 7명가량이 학원과 과외, 학습지 등 사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 중에서도 초등학생의 경우가 가장 심각하다. 100명 중 80명가량이 사교육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아이들의 삶의 만족도를 크게 저하시킨다. 한국 아동의 삶의 만족도는 2013년 기준 100점 만점에 60.2점으로 OECD 국가 중 꼴찌를 기록했으며, 7년째 OECD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물론 해당 제도를 시행하기 위해선 사전에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수두룩하다. 가령 학교 내에서의 반강제적인 방과후학습이나 야간자율학습 등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충족시켜야 할 학습량을 토요일과 일요일 등 주로 휴일에 몰아서 처리해야 하는 아이들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아울러 앞선 사례처럼 휴일에만 학습이 가능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틈새 영업을 영위해온 사교육업체의 영업권 보장 문제도 고려 대상이 돼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작금의 기형적인 교육 행태를 만들고 있는 서열주의와 이를 기반으로 한 기존 입시제도에 대한 큰 틀의 변화 없이는, '학원휴일휴무제'와 같은 기이한 형태의 제도 따위가 앞으로도 횡행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을까? 이러한 현실이 난 가장 안타깝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