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죽 쑤어 개를 줄 수는 없다

새 날 2017. 4. 8.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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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및 구속과 함께 차기 대선이 성큼 다가왔다. 한 달 가량밖에 남지 않았다. 빨라진 대선 시계만큼이나 후보들 간 기싸움 또한 치열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롭게 다가오는 건 문재인과 안철수 두 후보 간의 대결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를 돌아다니다 보면 일부 네티즌들이 간혹 이런 발언을 하곤 한다. 


"문재인이나 안철수 두 후보 모두 훌륭한 사람이기에 누가 되든 상관 없다. 이런 구도로 흘러가게 된 사실이 너무 즐겁다." 


물론 그들의 표현처럼 두 사람 공히 인간적으로는 더없이 좋은 인물이다. 특히 안철수 후보의 경우 적어도 정치인 이전까지만 해도 그러한 평가가 전혀 무색치 않을 만큼 훌륭한 인물이었음엔 틀림없다. 청년 시절 그가 만들어 무상으로 배포한 백신 V3를 요긴하게 잘 사용했던 나 역시 그로부터 혜택을 받은 사람 중 하나다. 그러나 정치인 안철수를 논하자면 차원은 180도 달라진다. 


정치인 안철수의 정체성을 한 마디로 요약해보자. 그가 정치에 입문할 때부터 주구장창 떠들어오던 '새정치'로 압축된다. 그렇다면 '새정치'란 무얼까? 이의 의미는 생각만큼 복잡하지 않다. 아주 간단하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혹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로 압축된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실은 나도 모른다. 보다 정확한 뜻을 알고 싶으면 안철수 그에게 직접 물어보시라. 


공교롭게도 정치인 안철수는 '새정치'의 모호함을 그만의 정체성으로 아예 단단히 굳힌 모양새다. 물론 덕분에 요즘 이의 후광을 톡톡히 보고 있기는 하다. 박근혜의 몰락과 동시에 절멸의 위기에 몰린 자칭 타칭 보수 세력들이 모호한 정체성의 아이콘 안철수를 역선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안철수 그는 이번 대선이 문재인 후보와 자신과의 양자 구도로 좁혀질 테고, 종국엔 자신이 승리를 거머쥘 것이라며 호언장담한 바 있다. 


이 대목에서 흥미를 유발하는 건 그가 이러한 주장을 할 때까지만 해도 대선 주자로서의 존재감이 바닥을 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한 자리 숫자의 지지율로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던 그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더불어민주당 내 경선이 끝날 때까지만 해도 분명히 그랬다. 그에 비하면 최근의 일들은 기적에 가깝다. 안철수 그의 지지율이 급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이 결국 옳다며 한껏 고무돼 있을 법한 안철수지만, 이러한 결과가 빚어지게 된 게 실은 그의 역량 때문이라기보다 절멸이라는 위기에 몰린 자칭 보수 세력의 그를 향한 일방적인 러브콜 덕분이다. 물론 안철수 역시 이러한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그동안 밑밥을 착실하게 잘 뿌려두긴 했지만 말이다.



더불어민주당 내 경선이 끝나고 끝내 최종 후보가 문재인으로 좁혀지자 문재인 후보와 실질적인 경쟁을 펼칠 수 있는, 당선 가능성 높은 대안 인물로 안철수 그가 낙점됐다. 문재인으로 대변되는 진보 진영의 집권을 막기 위한 자칭 타칭 보수세력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대다수의 언론도 이에 힘을 보태고 있는 와중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정치인 안철수는 정치에 입문한 뒤로는 늘 기-승-전-반문재인이 전부였던 인물이다. 그가 말도 되지 않는 이유를 둘러대며 더불어민주당을 뛰쳐나와 국민의당을 창당한 것도 결국 문재인을 지나치게 의식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개발자 안철수는 무료 백신으로 국민들에게 많은 혜택과 기쁨을 주었지만, 정치인 안철수는 이뤄낸 성과나 비젼 없이 오로지 국민들로 하여금 부아가 치밀어 오르게 하고 있다. 조기 대선이라는 오늘날의 결과는 결국 촛불로 대변되는 민심의 힘 덕분이다. 안철수 그는 다 된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으면서 달콤한 열매만 취하고 있는 형국이다. 


안철수는 자신의 표현처럼 촛불 집회에서 모습을 결코 드러내지 않았다. (대구 집회에 참석했다가 욕만 한 바가지 얻어 먹었던 건 애써 잊고 싶은 모양이다.) 민심 속으로 들어오기 바랐던 촛불을 그는 끝끝내 외면한 것이다. 물론 오늘날 그의 행보를 보면 그동안 왜 그랬는지, 아울러 그의 정체성이 과연 무언지 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로부터는 진보와 보수 양쪽으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내어 무조건 문재인을 이기겠노라는 지극히 사적인 욕심이 어른거린다. 그의 심술궂게(?) -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니 오해 없기 바란다 - 변모한 얼굴과 괴상망측하여 도저히 듣기 민망한 목소리가 이를 대변한다. 그가 몸담고 있는 국민의당 소속 정치인들은 미수습된 희생자들이 빨리 수습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거나 세월호의 진실 인양에 정력을 쏟기보다 차디찬 바다로부터 들어올려진 뒤 처참한 몰골을 드러낸 세월호 앞에서 그저 기념 사진 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이런 게 새정치라니 정말로 할 말을 잃게 한다.


네거티브는 몹쓸 행위라고 그렇게 언성을 높이던 자가 정작 가장 밀도 높은 네거티브로 일관하고 있다. 최근 보도된 언론 기사에 따르면 언론이 안철수를 띄우고 있는 건 엄연한 팩트라고 한다. 우리가 예측한 그대로다. 댓글 부대와 언론 등 화력 지원이 가능한 모든 주체가 한꺼번에 안철수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헤럴드경제가 분석한 기사에 따르면 양강구도를 형성한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의 지지층 분포가 지난 2012년 대선에서의 문재인-박근혜 후보와 상당히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문재인-안철수의 지지층 분포가 5년전 문재인-박근혜의 그것과 80% 가량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세력은 몰라도 범죄자 박근혜를 추종하는, 이른바 친박으로 대변되는 세력은 헌법파괴자에 다름아니다. 안철수 후보는 촛불집회는 물론 태극기집회에도 참여하지 않았노라면서 진보 진영과 헌법파괴 진영 모두를 끌어안고 있는 모양새다. 결국 안철수는 5년전 문재인-박근혜의 구도로 흘러가는 작금의 상황에 온몸을 맡긴 채 이를 즐기면서 스스로 제2의 박근혜가 되어가고 있다. 



여타의 다른 것들을 차치하더라도 일베 및 이글루스 등으로 대변되는 극우 커뮤니티와 헌법 파괴세력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이미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잃고 있는 셈이다. 5년 전의 실패를 또 다시 답습, 대한민국의 미래를 과거로 되돌릴 수는 없다. 우리는 이러려고 그 추운 겨우내 촛불을 들고 열심히 구호를 외친 게 아니다. 절대로 죽 쑤어 개를 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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