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난 보행자 중심의 거리를 욕망한다

새 날 2017. 3. 19. 15:18
반응형

우린 그동안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다. 덕분에 우리 경제는 세계 10위권 언저리에 위치할 정도로 출중한 수완을 뽐내며 볼륨을 상당히 키워왔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압축 고도성장은 시민들의 삶의 지형을 크게 바꿔놓았다. 이는 흡사 전국 구석구석을 빈틈 없이 메워놓은, 잘 포장된 도로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비만 오면 진흙탕으로 변모하기 일쑤였던 거리는 아스팔트로 이쁘게 포장되고, 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여건을 갖추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의 생활은 더없이 편리해졌다. 


우린 그동안 성장이나 개발과 같은 범 국가적인 화두에 몰두해오면서 주변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오로지 앞만 보고 내달렸다.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우리만의 고유한 생활 문화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 키워온 셈이다. 전국 곳곳을 마치 그물처럼 촘촘히 연결하고 오지까지 뻥 뚫어놓은 넓고 잘 닦인 도로와 그 위를 달리는 수많은 자동차의 움직임이 이를 대변한다. 


ⓒ서울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자동차가 보다 더 잘 달릴 수 있도록 도로를 넓히는 일은 당장의 지상 과제였다. 하천을 복개하여 도로를 만들거나 도로 위에 또 다시 도로를 개발하는 고가도로 등이 마구 지어진 건 아마도 비슷한 시기 아니었을까 싶다. 하늘 높이 치솟은 멋진 건물과 그 옆으로 날렵하게 쭉 뻗은 고가도로는 일종의 고도성장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뒤를 돌아볼 겨를이 부족했다. 자동차가 잘 달릴 수 있도록 오로지 도로를 닦고 넓히는 일이 시급했다. 자동차가 창조해내는 놀라운 부가가치에 눈을 뜨면서부터다. 사람보다는 자동차가 가져다 주는 물질적 가치에 더 방점이 찍혀 있던 시기다. 우리가 그동안 열심히 달려온 길의 흔적을 비로소 돌아보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각 지자체마다 복개했던 하천을 다시 개방시키고, 고가도로를 철거하기 시작했다. 물질적인 가치보다 사람의 그것을 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아뿔싸 이제 보니 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도로는 넓디 넓은데 반해 사람이 걸을 수 있는 보도는 왜 이리도 좁았던 것인지.. 시각을 바꾸니 비로소 안 보이던 것들이 하나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우린 여전히 사람보다 자동차로 대변되는 물질적인 가치가 우선인 사고를 지녔다. 편리함이나 안락함 그리고 경제성을 핑계로 생명과 안전을 오롯이 자동차에 헌납한 채 살아가기 일쑤다. 도심권에서 조금만 벗어날 경우, 도로는 존재해도 보도가 아예 없는 곳이 부지기수다. 자동차가 제한 속도 이상으로 씽씽 달리는 도로 위를 위태롭게 걸어야 하는 보행자에겐 지옥이 따로 없는 셈이다.  


비록 그 움직임이 아직은 미미하나 최근 일부 지자체들이 보행자 중심의 거리를 만들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반가운 시도다. 이를테면 차도를 줄이고 보도를 늘리는 도로 다이어트가 서울 시내 곳곳에서 본격 시행된다. 흉물처럼 다가오던 서울역 고가도로를 폐쇄하고, 이곳을 전국 최초의 보행자 전용길로 지정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서울역 고가도로인 ‘서울로 7017’ 주변과 종로 일대가 걷기 좋은 보행자 중심의 ‘보행특구’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일환으로 대각선을 포함한 모든 방향의 횡단보도를 도심 곳곳에 설치하여 보행자가 돌아갈 필요가 없는 보행 천국의 환경을 조성하겠단다. 이 횡단보도는 이미 성균관대 입구 등 79곳에 설치돼 있다. 아울러 서울시는 한양도성 내부를 전국 최초의 녹색교통진흥지역으로 지정, 승용차 이용 수요를 대폭 감축하는 등 뉴욕시 수준으로 교통환경을 바꿀 계획이라고 한다.


ⓒ서울시


차량의 제한속도를 낮춰 보행자가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환경도 지속적으로 조성된다. 국토교통부와 경찰청이 시행하고 있는 '안전속도 5030' 운동이 서울시를 비롯한 전국 지자체로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안전속도 5030'은 왕복 2차로 이상 도로 50㎞, 생활도로 30㎞로 제한속도를 하향 조정, 보행자의 안전을 한 차원 높인 것이 핵심 내용이다. 


근래 우리 사회 곳곳이 아프다며 아우성이다. 온통 상처 투성이다. 지나칠 정도로 압축 성장한 성과의 부작용 내지 후유증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조금 늦은 감이 있긴 하나, 이제는 물질적인 가치보다 사람 그 자체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기 아닌가 싶다. 그동안 입은 상처를 서로가 보듬어주어야 한다. 차량 중심에서 보행자 중심으로 교통환경을 바꾸는 일은 그의 일환 가운데 하나다. 이제 성장과 개발보다는 안전을 최우선시해야 하고, 빨리빨리보다는 양보와 배려의 문화를 정착, 이를 가꿔나가야 한다. 난 보행자 중심의 거리를 욕망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