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대통령 탄핵을 통해 얻는 뜻밖의 교훈

새 날 2017. 3. 12. 20:40
반응형

헌법에 의한 대통령의 파면은 단연 세계적인 토픽감이다. 탄핵이라는 결과 그 자체뿐 아니라 이른바 '촛불'로 상징되는 국민 저항의 지난했던 과정은 세계인들의 시선을 강탈시키고도 남을 만큼 강렬한 것이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이 있었던 지난 10일 유수의 해외 언론사들은 일제히 열띤 취재 경쟁에 나선 바 있다. 영국 BBC도 그들 중 하나다. 같은 날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로버트 켈리 교수는 자신의 집에서 BBC 월드 뉴스와 화상 연결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었다. 


순간, 자녀 두 명이 방안에 들어오는 뜻밖의 상황이 벌어지고 만다. 이를 뒤늦게 알아챈 켈리 교수의 아내가 짐짓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아이들을 방에서 데려가는 모습이 여과없이 생중계됐다. 켈리 교수는 급작스러운 사태에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반면, 아이들은 천진난만함 그 자체였다. 아울러 어쩔 줄 몰라해하며 아이들을 방에서 끌어내고 사태 수습에 나선 아내의 당황스런 몸짓이 그와 어우러지면서 해당 동영상을 본 이들로 하여금 얼굴에 절로 미소짓게 했다. 


유튜브 영상 캡쳐


BBC의 이 영상물은 유튜브에서 무려 300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SNS를 통해 급속히 확산되면서 전 세계적인 화제를 낳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태라는 불쏘시개에, 아이들에 의한 전혀 꾸밈없는 돌발 상황이 더해지니 발화점이 낮아지리라는 건 누구나 예측 가능해진다. 짐작컨대 켈리 교수 자녀들의 깜찍하면서도 귀여운(?) 이 돌발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관심과 인기는 결코 누리기 힘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 흥미로운 영상이 뜻밖의 논란을 낳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관련 기사에서 동영상에 등장하는 여성을 ‘당황한 유모’라고 표현했다가 나중에 ‘당황한 아내’라는 표현으로 고쳤단다.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 역시 켈리의 아내를 ‘겁에 질린 유모’라고 표현했다는 소식이다. 뿐만 아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켈리의 아내를 아무런 근거 없이 보모라고 지레 짐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아내의 놀란 표정과 당황해하는 행동을 두고 일부 사람들은 보모가 자신의 일자리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는 엉뚱한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무척 씁쓸한 상황이다. 동양인, 더구나 여성을 향한 서양인들의 편견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례이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는 백인 남성과 함께 지내는 동양 여성 하면 응당 유모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인 모양이다. 동양계 여성은 복종적이고 수동적이라는 고정관념이 그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는 탓이다. 영화나 드라마 등 각종 미디어 매체 역시 이러한 편견적 시각에 한 몫 단단히 거들고 있는 입장이다. 


이들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되는 동양인의 모습은 하나 같이 우스꽝스럽다.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그려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미국 등에선 한국 여성을 째진 눈으로 비하하여 수차례 논란이 된 바 있다. 평소 그들의 동양인을 향한 인식의 단면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를 두고 외신과 네티즌들의 날선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한국인 아내를 유모로 오해한 것은 성적 그리고 인종적 편견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는 지적이다. BBC는 “한국에서는 맞벌이 부모일 경우 유모를 고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영상에 등장하는 여성을 아내가 아닌 유모로 보는 것은 아시아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보여준다”고 지적하였으며, 다수의 해외 네티즌들 역시 백인 남성과 같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시아 여성을 유모로 생각하는 것은 전형적인 인종차별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나섰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레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과연 순수한 피해자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 역시 가해자에 해당한다. 오히려 저들보다 더욱 심각한 편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보다 피부색이 조금 더 진하고 체형이 작은 동남아인들이나 흑인들을 바라볼 때면 갖게 되는 편견과 비슷한, 자신보다 몇단계는 낮은 수준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들이 듣기 싫다고 하는 데도 흑인 남성을 향해 굳이 '흑형'이라 일컬으며, 낮잡아 부르는 경우가 그에 해당하지 않을까?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통해 우린 뜻밖의 교훈을 얻는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