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변화하는 대학 졸업식 풍경, 씁쓸한 이유

새 날 2017. 2. 22. 12:57
반응형

졸업이란, 소정의 교과 과정 등을 모두 마친다는 의미이다. 그와 동시에 한 단계 높은 곳으로의 새로운 도약을 뜻하기도 한다. 어떠한 종류의 졸업이 됐든 졸업생에게 축하를 건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길다면 긴 생애에 있어 여러 과정 가운데 하나의 절차를 잘 마무리지음과 동시에 새로운 출발을 축복해주자는 의미이다. 졸업식장의 모습은 그래서 사람들로 늘 북적거리기 마련이다. 특히 대학 졸업은 다른 단계의 그것보다 더욱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대학원 진학이나 유학 등의 또 다른 공부를 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를 마치자마자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대학 졸업식의 모습이 예전 같지 않다는 소식이다. 취업난 때문에 부모나 친구를 볼 면목이 없자 아예 졸업식 참석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심지어 졸업장을 받기 위해 학교에 가긴 해도 졸업식장에 들어가기는커녕 졸업 가운도 빌리지 않는가 하면, 아예 택배로 졸업장을 보내달라는 경우도 있단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모 사립대의 경우 지난해부터 졸업생 3분의 1 정도에게 택배로 졸업장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청년들의 취업절벽 현상이 어느덧 졸업식장의 전통적인 풍경마저 변모시키고 있는 것이다. 


축하받을 주체가 참석하지 않았으니 축하해줄 꽃도 팔리지 않게 되고, 때문에 화훼상인들마저 울상이라는 우울한 소식이 들려온다. 악순환이 아닐 수 없다. 취업 등의 여부와 관계없이 소정의 과정을 마친 노고에 대해 마땅히 축하를 받아야 하고 또한 건네야 하거늘, 작금의 취업 빙하기가 사람들 마음에 남아있을 법한 한 웅큼의 여유조차 마저 앗아버리고, 우리 삶의 과정 가운데 하나인 기본적인 통과의례마저도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일보


오늘자 한국일보 기사 한 귀퉁이에 올라온 사진은 참으로 웃프다. 분명 졸업 축하 현수막이건만, 축하보다는 왠지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너무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 상에서는 '이불 밖은 위험해' 라는 표현이 널리 사용된다. 



일종의 우스갯소리로 현실 도피와 비슷한 의미로 회자되곤 하는데, '학교 밖은 위험해' 라는 표현은 바로 그러한 의미로 패러디된 결과물이다. 학교를 벗어나 사회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뎌야 할 상황임에도 거대한 취업절벽 앞에 자신들의 진로가 가로막히자 시작 시점부터 무거운 짐에 짓눌리게 된 스스로의 처지를 이런 방식으로 풍자한 셈이다.


ⓒ한국일보


또 다른 사진에는 아예 '무직 아무개' 라며 졸업생의 실명을 적고, 그 아래 졸업을 축하드린다는 하얀색 바탕에 검은색 글귀로 작성한 현수막이 담겨있다. 디자인적으로 세련된 맛이라곤 전혀 없으며, 그렇다고 하여 다른 현수막들처럼 패러디 따위의 기발한 창의력 같은 것도 일절 발휘되지도 않았건만, 왠지 이 유치한 폰트와 단순한 글귀들이 오히려 심금을 더욱 울리는 느낌이다. 최근 청년들의 현실을 이보다 더 적나라하면서도 단도직입적으로 묘사할 수는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질박하기 짝이없는 현수막이 도대체 뭐라고, 우리의 마음 한켠을 이토록 우울하게 할까?


ⓒ조선일보


지난해 청년층의 실업률은 9.8%였다. 역대 최고치다. 대학 졸업식의 풍경이 변모한 이면엔 이러한 통계 수치들이 감춰져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300인 이상 대기업 취업자 수는 241만6000명으로 1년 전보다 4만6000명이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이래 가장 큰 폭의 감소세다. 반면, 지난달 취업준비생은 69만2000명으로 1년 전보다 8만3000명가량 증가했다. 이는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3년 이래 가장 많은 수치다. 당연히 축하받아야 할 졸업식장도 찾지 못할 만큼 고통을 겪고 있는 오늘날 청년들의 우울한 현실이 통계 수치 안에 오롯이 담겨있는 셈이다. 


정부가 얼마 전 ‘청년내일채움공제’ 가입대상을 5만명으로 늘리고 공공 및 민간기업의 육아휴직을 활성화하는 등의 청년 일자리 보완대책을 내놨지만, 기존 대책의 재탕이자 그나마도 나열 수준에 그치는 데다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국정 리더십이 실종된 상황에서 정책 추진력이 크게 떨어지는 까닭에 과연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일보


청년들의 고통은 점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 경제의 구조적인 여건은 현실적으로 이를 감내할 만한 여력이 없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놓고 사회적 갈등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국정 리더십이 실종된 상황에서 그나마 정치권은 온통 차기 대선에 올인한 상태다. 


전통적인 대학 졸업식장의 풍경을 바꿔놓고 있듯이 앞으로 그와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미처 예상치 못한 변화를 경험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병우처럼만 되지 말자'던 모 사립대 법학전문대학원에 걸린 졸업 축하 현수막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가감없이 패러디하고 있는 모습이라 웃프면서도 더없이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