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은행의 수수료 도입, 무엇이 문제일까

새 날 2017. 2. 15.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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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기조는 사회의 모습을 확 바꿔놓고 있다. 취업절벽과 인구절벽 등의 절벽 시리즈로 대변되는 작금의 구조적인 어려움은 산업화시대 이후 우리가 그동안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미증유의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이는 산업 전반에, 아울러 사회 모든 요소에, 변화를 요구하는 모양새다. 금융권이라고 하여 예외일 수 없다. 특히 일반 서민이 가장 자주 이용하는 금융기관 가운데 하나인 은행의 변화 또한 심상찮다. 저금리 기조가 길게 이어져 오면서 은행의 전통적인 수익원이던 예대마진만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어진 탓이다. 


근래 변화를 모색 중인 은행들이 늘고 있다. 이자 이외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 새로운 수수료를 도입하겠노라며 칼을 빼든 것이다. 가장 먼저 발 벗고 나선 건 한국씨티은행이다. 이 은행이 다음달부터 일부 고객으로부터 월 5천 원의 계좌유지수수료를 받기로 한 데 이어, KB국민은행 역시 ‘창구거래수수료’라는 항목의 수수료 신설을 검토하고 나섰다. KB국민은행의 경우 구체적인 수수료 부과 대상이나 수수료의 수준이 아직 명확하게 정해지지는 않았으나, 한국씨티은행의 경우 명의자 1인 잔액 기준 1000만원 이하의 입출금계좌 소유주가 주 타깃이다. 


ⓒ뉴시스


물론 이들의 움직임에 대해 전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대면 서비스는 텔러의 유지 비용을 유인케 하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근래 인터넷뱅킹과 스마트 기기의 발달로 웬만한 서비스는, 특히 단순 입출금 서비스는 온라인 상에서 얼마든 가능하기에 은행 입장에서는 텔러 고용으로 인한 유지 비용을 부담케 하는 대면 서비스보다 고객들을 비대면 서비스로 유도하는 방식이 결국 이익으로 다가올 테다. 


즉, 창구거래수수료 등의 도입은 텔러의 인건비와 부족한 수익원을 일정 부분 메우는 효과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대면 서비스를 비대면 서비스로 전환시키려는 은행의 속내가 담겨 있다. 은행 역시 이윤을 추구하는 영리기업이기에 사회 변화의 흐름에 걸맞는 생존 방식으로의 모색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은행은 단순히, 그리고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하는 일반 사기업과는 그 성격이 판이하다. 비록 법적으로는 공공기관의 범주에 속하지는 않지만, 대중의 복리 증진을 위한 일종의 공공서비스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중들의 일반적인 정서로는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 역시 공공기관으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짙다. 



저금리 기조는 비단 우리만의 현상이 아니다. 전 세계가 궤를 함께한다. 따라서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했었을 해외 선진국의 은행들 역시 앞서 언급한 개념의 수수료를 진작부터 도입 중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도이체방크, 코메르츠방크 등 독일 내 대형 시중은행들은 일반 소매 고객을 제외한 대기업과 기관 고객에 한해 일정 이상의 금액을 맡길 경우 예금 보관료를 징수하고 있다. 아울러 소매 고객으로부터 수수료를 징수하는 은행의 경우도 우리와는 그 방식이 판이하다. 독일의 ‘라이프아이젠(Reiffeisn)’이라는 신용협동조합 은행과 거래하는 소매 고객들은 지난해 9월부터 10만 유로(약 1억2000만원) 이상을 맡길 경우 보관료 0.4%를 내야 한다. 

 

우리와 극명한 차이가 드러나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그러니까 독일의 은행들 역시 저금리 기조에 맞서 고객들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있기는 하나 그 대상이 우리와는 정반대의 개념이다. 우리는 일정 금액 이하의 예금을 예치하거나 창구에서 일반 입출금 거래를 하는 일반 서민들로부터 수수료를 징수할 계획이지만, 독일의 경우엔 일반 소매 고객, 즉 서민들은 아예 수수료 징수의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혹여 대상이 된다 해도 우리와는 반대로 일정 수준 이상의 금액을 예치하는 고액 예금주로 그 폭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은행들은 수익원을 주로 기업이나 기관 혹은 자산가로 한정짓고 서민들을 철저하게 보호해주는, 일종의 공공의 가치를 존중하는 느낌이 강한 반면, 거꾸로 우리 시중은행들은 돈 많은 자산가나 기업, 기관만을 우대하고, 돈 없는 서민들만을 철저히 외면하는, 뚜렷한 차별화로 일관하는 것으로 읽힌다. 우리나라는 가뜩이나 소득 불균형 정도가 심한 국가다. 국제통화기금의 '아시아 불평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소득 중 상위 10%에 해당하는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45%에 이른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은행권의 억대 연봉 직원의 비율이 무려 25%에 이른단다. 이런 판국에 은행은 또 다시 서민들로부터 수수료를 징수, 소외 계층을 더욱 소외시켜 작금의 불평등 현상을 가속화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돈을 맡기고 찾을 수 있는, 오로지 금융기관만이 지니고 있을 법한 공공의 가치에 대해 최근 은행들은 이를 애써 무시하려는 분위기임이 역력하다. 구조조정의 압박과 경영 환경의 변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수료를 징수해야 할 상황이라면, 가뜩이나 돈이 없어 소외 당하는 계층으로부터 푼돈을 뜯으려 하지 말고, 선진국의 사례처럼 부를 거머쥔 이들로부터 징수해야 좀 모양새가 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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