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광장의 태극기와 성조기

새 날 2017. 2. 21.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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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탄핵 심판이 시시각각 다가오면서 이른바 태극기로 대변되는 자칭 보수단체의 움직임도 더욱 기민해지고 있다. 지난 주말 탄핵 반대 태극기 집회에는 무려 250만 명에 달하는 자칭 애국 시민들이 광장을 찾은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이는 주최 측의 주장이기에 믿거나 말거나의 수준이다. 그러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꽤나 많은 인원이 광장을 가득 메운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평소 이들이 집회를 진행하는 모습이 무척 생경하게 다가오는 데다가, 요즘 사람들의 정서에도 잘 맞지 않는 느낌이 강하게 들곤 했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의아스러운 광경 하나를 꼽으라 한다면 단언컨대 광장에서 나부끼는 성조기를 들 수 있겠다. 집회 참가자 스스로 애국자임을 밝히고 나선 상황이니 태극기를 흔드는 행위야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러나 왜 우리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이와는 상관관계가 털끝 만큼도 없어 보이는 성조기를, 그것도 대형 성조기까지 들고 나와 이를 흔들고 있는 것일까? 무언가 어색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머니투데이


외국인들 역시 태극기 집회에 미국 국기인 성조기가 등장하는 사실을 의아해하고 있었다.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칠레인 셀레스테 바르가스는 “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성조기를 드냐. 내정 문제에 미국의 도움을 요청하는 거냐”며 되묻고 있었고, 네덜란드에서 온 욥은 “태극기를 든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은 애국심이 강할 텐데 왜 성조기를 드는 거냐. 한국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고 싶은 거냐. 미친 것 같다”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낯뜨거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세계일보


태극기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태극기 집회가 개최되는 광장 주변의 상가들은 주말만 되면 태극기의 만행으로 온통 몸살을 앓고 있노라며 하소연 중이다. 인파가 대거 몰리는 까닭에 매출 상승의 호기로 받아들여질 법도 한데, 도대체 무슨 연유일까? 식당 및 편의점 주인과 아르바이트생들은 주말마다 생지옥이 따로 없단다. 


무전취식에 술을 먹고 행패 부리는 사람, 식당 화장실에서 샤워하는 사람, 고성방가에 음주 금지 장소에서 버젓이 술을 먹는 행위, 술에 취해 설교를 늘어놓는 사람 등등 언론에 소개된 이들의 만행만 해도 그 종류가 너무 다양하기에 이루 열거하기조차 쉽지 않을 정도다. 오죽하면 매상이 오르지 않아도 좋으니 이들이 찾지 않았으면 좋겠노라고 하소연해야 할까 싶다. 뿐만 아니다. 서울광장 부근에 위치한 서울시청 청사 또한 이들에 의해 몸살을 앓고 있다는 취지의 기사가 최근 보도된 바 있다.



태극기 시민들이 집회에서 외치는 주장은 늘 한결 같다. 그 중에서도 "군대여 일어나라" "계엄령을 선포하라" 따위의 외침은 어쩌면 애교 수준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다. "계엄령 선포하여 빨갱이 죽여라" "간첩 수괴인 문재인, 박지원, 박원순을 처단해야 한다" "종북 세력을 척결하지 못하면 애국 시민들이 모두 죽임을 당한다" "김대중, 노무현에게 역사의 낙인을 찍고 부관참시하자"는 등의 섬뜩한 주장도 서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내란음모 및 선동에 가깝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건 이렇듯 섬뜩한 주장을 늘어놓으며 내란선동을 일삼는 이들에 대한 제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의도적으로, 그리고 공공연하게 사회 갈등과 혼란을 조장하거나 부추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제지하기는커녕 수수방관하고만 있다. 구체적인 무기 확보 계획도 없었던 데다가, 북한과의 연계성도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저 강연을 통해 몇차례 과격한 발언이 흘러나왔다고 하여 누군가를 내란선동으로 잡아넣은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정말로 의아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뉴시스


광장에서의 흔한 등장과 앞서 언급한 온갖 만행 때문에 태극기의 이미지가 폄훼되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근래 부쩍 늘고 있다. 더구나 애국자임을 자처하며 태극기와 함께 등장하기 시작한 대형 성조기는 이들이 지닌 애국이라는 신념이 과연 어떠한 성격의 것인지 그 뿌리부터 의심케 하기에 충분하다. 혹여 이들의 애국이란 개념이 사대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미국에 대한 일종의 충성심을 드러낼 요량인 것이며, 우리 문제에 대해 미국이 개입해줄 것을 바라는 취지라면, 이는 너무도 부끄러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행위는 우리뿐 아니라 미국인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민망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질 법하다. '애국'이란 용어와 '보수'라는 단어가 근래 원래의 의미와 그 쓰임새가 달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처럼, 태극기 또한 어느 순간부터 창피하거나 부끄럽게 다가오며, 왠지 좋은 의미가 담긴 그 고유한 형상마저 조금씩 삐딱하게 보여지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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