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안철수 짐승 발언, 적절치 못하다

새 날 2017. 2. 14.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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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라 모두 부질 없지만, 지난 18대 대선은 두고두고 곱씹어봐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선거였다. 만에 하나 당시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이 현재의 그분이 아니라 다른 분이었다면 우리 사회가 적어도 지금과 같은 혼란스런 상황을 겪을 일은 추호도 없었을 테다. 그랬다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지금처럼 치열한 국제사회의 경쟁 구도 속에서 뒷걸음질칠 일도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테다. 때문에 당시 대선이 끝난 뒤 느꼈던 허탈함과 아쉬움은 작금의 어이없는 상황과 견주어본다면 참 별 게 아닌 셈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탄핵 인용이 점차 다가오고 있고, 그만큼 19대 대선을 향한 발걸음이 빨라지자 유력 대선 후보들을 둘러싼 움직임도 점점 기민해지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공개되는 후보에 대한 지지도는 엎치락뒤치락하며 당사자는 물론 지지자들까지 애간장을 태우게 한다. 이런 와중에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단일화를 한 뒤 문 후보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다는 주장과 관련하여 “동물도 고마움을 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짐승만도 못한 것”이라는 격한 감정을 표출했다. 


ⓒ연합뉴스


일부 언론들은 안철수 의원의 해당 발언을 빌미 삼아 흡사 물 만난 고기마냥 문재인 전 대표 물어뜯기에 사활을 건 모양새다. 안 의원의 발언이 문재인 전 대표를 직접 저격한 것이라는 자의적인 해석으로 여론몰이에 나섰다. 그러나 그가 발언한 내용의 전후사정을 살펴보면 문재인 전 의원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당시 "안철수가 문재인 후보를 제대로 도와주지 않아 대선에서 졌다"며 이야기하고 다니는 일부 지지자들을 저격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그의 발언은 매우 적절치 못하다. 혹여 일부 지지자들을 향한 저격이 됐든, 아니면 문재인 전 대표만을 직접 겨냥한 것이 됐든, 이를 정치적인 수사로 용인하는 데도 엄연히 지켜야 할 선, 즉 도의란 게 존재하는 법이다. 이번 발언은 바로 이 선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 사용된 어휘 하나하나에는 상당히 격한 감정이 녹아들어있는 느낌이다. 


사실 그동안 안철수 의원의 행보를 돌아보면 지나칠 정도로 문재인 전 대표를 의식해온 것으로 읽힌다. 물론 문재인 전 대표가 현재 대세론을 굳히며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로 떠오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야당이 됐든 혹은 여당이 됐든 그를 넘지 않고서는 절대로 19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때문에 문재인 전 대표가 쉽게 오를 수 없는 거대한 산으로 비유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반대로 안철수 의원의 대권 후보로서의 지지율은 현재 답보 상태다. 아니 존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약세에 머무르는 상황이다. 대선 시계가 빨라진 추세 속에서 조급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 걸까? 그의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한 공세는 유독 거세다. 문재인 전 대표와 반대 노선을 걷고 있는 여권의 공격보다 오히려 더욱 집요하다. 한때 한솥밥을 함께했던 사람이 과연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기승전문재인으로 수렴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래도 과거 안철수의 등장을 반겨했고, 한때 그의 지지자이기도 했던 한 사람으로서 나 역시 그에 대해 일말의 관심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지금은 호남의 정치세력을 한데 모아 별도의 야당을 꾸려나가고 있지만, 어쨌든 불의한 세력의 집권을 막는 데 일조하고, 가까운 미래에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정의로운 정치세력과 다시 하나가 될 날이 올 것이라 믿으면서 그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뉴시스


그러나 아무리 정치인의 발언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수사에 불과하다지만, 이번 발언은 도가 지나치다. 이런 류의 발언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안철수 그의 사람 됨됨이와 그릇 크기를 스스로 한계지으며, 본인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좁히는 역효과로 작용할 것 같아 한편으로는 안쓰럽기까지 하다. 


어느 누구도 이미 지나간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다. 안철수 의원은 18대 대선 당시 겪었던 사실과 씁쓸한 기억들에 대해 지금처럼 격한 감정을 토로하기보다 "자신은 최선을 다했지만 이를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라는 형태로, 조금은 완곡하면서도 에둘러 표현할 수는 없었을까? 말을 하는 사람도 그렇거니와, 이를 듣는 사람도 모두가 거북해지는 짐승 발언은, 때문에 정치적인 수사 여부를 떠나 매우 적절치 못하다. 막말 정치는 그가 주장해온 새정치와도 거리가 한참이나 멀다.


무려 30년도 더 된 얘기이지만,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론 그의 이 말 한 마디가 향후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극적으로 바꾸어놓는다.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시라.. "


왠지 안철수 의원에게도 해당되는 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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