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드론 잡는 독수리로부터 얻는 뜻밖의 안도감

새 날 2016. 9. 14. 16:55
반응형

'매사냥'은 맹금류에 속하는 매를 잡아 길들이고 훈련을 시킨 뒤, 이를 다시 날려보내 야생 사냥감을 포획하는 전통 사냥법이다. 대략 4-5,000년 전부터 활용돼 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이는 인류와 조류라는 이종 생물 사이에서 맺어진 가장 오래된 관계 중 하나일 법하다. 매사냥은 원래 식량을 얻는 한 방편으로 사용돼 왔다. 하지만 오늘날엔 전통놀이의 한 축으로, 혹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무형문화유산이라는 이름으로 교과서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그 명맥만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처지이다. 


기록에 의하면 매사냥은 중앙아시아의 초원 지대와 중동지방에서 발달, 중국과 몽골을 거쳐 우리나라에까지 전파됐으며, 고조선을 지나 삼국시대에 접어들면서 활성화된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매의 종류는 10종이 넘는다고 한다.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진 매의 종류로는 참매와 송골매, 황조롱이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이들 모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어 평소 보기가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매도 그렇거니와 이를 이용한 사냥 또한 모두 보호 대상일 만큼 힘겹게 보존돼 오고 있는 실정이다.


ⓒ연합뉴스


세계적으로 드론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덕분에 우리의 삶은 점점 더 윤택해지는 모양새다. 드론 등 최신 기술의 원천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결국 조류나 곤충 등 대부분 자연으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온 사실임을 어렵지 않게 터득하게 된다. 기술 발달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늘 명과 암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대부분은 좋은 의도로 활용되고 있으나 간혹 악용되기도 하며 지나친 대중화로 뜻하지 않은 위협과 맞닥뜨리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근래 드론으로 인한 테러나 각종 사고 등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전 영국 공항에서는 착륙하려던 여객기가 드론과 충돌하는 위험천만한 사고가 발생했다. 미국 JFK공항에서도 지난해 아찔한 장면이 연출된 바 있다. 승객 160여 명을 태우고 착륙을 시도하던 항공기의 오른쪽 날개로 드론 한 대가 바짝 접근해 왔기 때문이다. 미국의 백악관과 일본의 총리 관저에도 드론이 날아들어와 당시 많은 이들이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기술이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 주고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이들을 위험 속으로 몰아넣는, 이중성을 여실히 드러냈던 사례다.



이렇듯 드론의 위험성이 점차 부각되자 각국 정부는 발빠르게 대응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도쿄 전역을 아예 비행 금지 구역으로 지정하였고, 다른 국가들 역시 드론과 관련한 규제 법안을 마련하거나 논의 중에 있다. 근래에는 단순한 규제 법안을 넘어 아예 불법으로 조작되는 드론을 직접 잡기 위한 각종 묘안이 속출하고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건 드론을 격추시키는 안티 드론 장치의 개발이다. 이른바 드론버스터라 불리는 소총 모양의 제품은 드론을 격추시키는 기능을 갖췄다. 영국에서는 급기야 드론 잡는 바주카포까지 등장했다. 


ⓒ테크홀릭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거칠기 짝이없다. 아무리 불법 행위라지만, 바주카포나 총기류 따위로 드론을 잡는다는 건 지나치게 위협적인 데다 위험천만하기까지 하다. 이런 가운데 네덜란드 경찰이 불법 드론 퇴치를 위해 독수리를 공식 투입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깜짝 놀랄 만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앞서 언급한 사냥감을 잡기 위해 사전에 훈련을 마친 매처럼 독수리로 하여금 불법 드론을 잡을 수 있도록 특수훈련을 시켜 이미 테스트까지 마친 상황이라고 전해진다. 훈련을 받은 독수리들은 드론을 먹잇감으로 인식, 발톱으로 거머쥔 채 안전하게 이를 땅에 내려놓는 놀라운 순발력을 보인다. 


이 방식은 그야말로 획기적이다. 더구나 자연친화적이기도 하다. 드론을 격추시키거나 전파 방해로 떨어뜨릴 경우 자칫 의도치 않은 추가 사고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으나 적어도 이 방식만큼은 그러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 물론 독수리의 안전이 염려되기는 하나 다행히 테스트 과정에서 다친 독수리가 단 한 마리도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살아남은 불법 드론이 일절 남지 않을 정도의 출중한 실력이라고 하니 기대해 봄직하다. 


매사냥이라는 전통 사냥법을 문화유산으로 간직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왠지 이러한 시도가 낯설지 않다. 인류가 발전시켜 온 기술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매사냥처럼 친환경적인 방식을 활용하는 그들의 창의력과 아울러 단순히 발상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실행에 옮기는 실행력은 충분히 부러움을 살 만한 요소다.  


ⓒ연합뉴스


드론을 움켜잡은 독수리의 모습은 몹시 인상적이다.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인류의 기술 집약체인 기계 덩어리를 자연의 일부인 조류가 움켜쥐고 있는 모습은 흡사 인류로 하여금 생태계 일원으로서의 제 역할을 온전히 하고 있는가를 되묻고 있는 느낌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적어도 전파 방해를 일으켜 떨어뜨리거나 총기류 혹은 바주카포를 발사하여 드론을 격추시키는 행위보다는 이렇듯 독수리나 매를 활용, 드론을 안전하게 회수하는 방식이 훨씬 자연친화적이라는 의미이다. 


먼 훗날, 현재 매사냥이 그랬듯이 드론 잡는 독수리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게 될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인류와 조류라는 이종 생물 사이에서 맺어진 끈끈한 관계가 수천 년이 흘러도 이렇듯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더불어 자연이라는 존재가 거만하기 짝이없는 우리를 아직 저버리지 않았노라는 뜻밖의 안도감마저 전해 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