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아프니까 청춘이다

새 날 2016. 9. 6.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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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이 다가온다. 예년보다 유난히 빠른 탓에 왠지 시간에 쫓기는 느낌마저 든다. 어쨌든 추석 하면 누군가에게는 떨어져 있던 가족끼리 모처럼 만나 그동안 못 나눴던 정을 함께 나누며 오붓한 한 때를 갖게 하는, 명절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시간으로 다가올 테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귀하디 귀한 황금 연휴를 이용하여 해외여행을 다녀오마는 멋진 계획으로 꿈에 부풀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이러한 일조차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치이자 마냥 꿈으로 다가온다. 이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거나 만날 수 있는 우리의 이웃들이다. 학교 졸업 후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부모님께 미안한 생각이 드는 데다 초라해 보이는 자신이 싫고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겪는 삼중고 탓에 고향 방문은 언감생심, 오히려 추석 성수기를 맞아 한 푼이라도 아쉬운 경제적 상황을 타개해 보고자 극한 아르바이트에 뛰어드는 청년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극한 아르바이트를 바라보는 시선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다. TV 교양 프로그램 등을 통해 소개되는 극한 직업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올라오는 극한 아르바이트는 눈길을 확 잡아끄는 묘한 매력 때문에 흔히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곤 하는데, 이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지만, 단순한 흥미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더러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희화화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흥미거리로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누군가에게는 해당 작업이 매우 소중한 일자리인 데다 절실함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선 안 될 노릇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청년들이 뽑은 대표적인 극한 아르바이트는 무엇이 있을까? 얼마 전 한 아르바이트 포털 사이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택배 상하차와 배달 아르바이트에 가장 많은 표가 몰렸다. 특히 추석 대목을 맞은 택배사들 입장에서는 물량을 소화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더불어 바빠지는 건 극한 아르바이트로 세인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곤 하는 택배 상하차 작업이 되겠다. 



이 일에 대한 노동 강도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다양한 무게의 택배 상자들을 직접 들고 옮겨야 하기에 상당히 고된 작업이다. 밤새 한 사람이 평균 5천 개의 상자를 상하차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허리를 무려 5천 번이나 굽혔다 폈다를 반복해야 한단다. 물론 시급은 비교적 높은 편이다. 청년들이 자신의 몸이 망가져라 이에 뛰어드는 건 이렇듯 상대적으로 높은 노동의 대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추석을 앞둔 택배사의 집배센터는 한 푼이라도 아쉬운 청년들의 발길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청년들의 지원이 넘쳐나고 있어 인력 수급에 전혀 문제가 없단다. 갖은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우리 청년들의 모습이 대견스럽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을 씁쓸하게 하기도 한다. 


모 아르바이트 포털 사이트가 지난해 벌인 설문조사 결과 취업준비생의 38.3%가 명절이 되어도 고향에 가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할 것이라 답했다 한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청년들이 현재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체면을 중시하고 남들과 비교하기 좋아하는 문화적 배경은 청년들의 현재 처지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명절만 돌아오면 남들은 어떻더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상황에서 자신의 처지에 대해 옹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것도 한 두번이지, 왠지 초라해지는 자신이 싫어서라도 이를 회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테다. 그래, 차라리 돈을 벌자.


ⓒ한겨레


그렇다면 추석 명절임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고향을 찾지 못하고 몸과 마음을 혹사시켜 가며 극한 아르바이트에 뛰어드는 진짜 배경은 무얼까? 청년 실업률이 두 자릿수를 바라보고 있다.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라 한다. 그만큼 청년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 경제적 상황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통계상 실업률은 경제활동인구에 대한 실업자의 비율로써 체감 실업과는 꽤 거리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체감 실업률, 즉 실제 청년 실업률이 20%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받고 있는 건 바로 그로부터 기인한다. 


마땅한 일자리가 부족하다 보니 청년들은 아르바이트와 같은 비정규직을 전전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질곡에 빠져 있다. 알다시피 한 시간에 6,030원에 불과한 얄팍하기 짝이 없는 최저임금으로는 인간적인 삶은커녕 최소한의 생계를 누리는 일조차 버겁게 한다. 이에 청년들은 추석 명절을 마다하고 누군가에게는 흥미거리에 불과하거나 심지어 희화화되기까지 하는, 극한 아르바이트라 불리는 노동 여건이 가히 좋지 못한 작업에 과감히 뛰어든 채 곤란한 경제 사정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려 하고 있다. 몸이며 마음까지 스스로 혹사시켜야 하는 이 시대의 청년들, 진정 아프니까 청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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