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무심코 써내려간 텍스트 몇 글자, 그의 위험성

새 날 2016. 9. 5.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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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언론은 흡사 고삐 풀린 망아지 아닐까 싶다. 사회적 공기라는 스스로의 책무를 툭하면 걷어 차버리기 일쑤이니 말이다. 오늘 아침의 일이다. 느닷없는 동반자살 소식이 들려왔다. 각 매체들은 속보 형태로, 그리고 경쟁적으로, 이를 가장 먼저 타전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죽음은, 그것도 자살 소식은, 더구나 동반 자살이라는 형태는, 이를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급우울하게 만든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12년째 자살률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매년 9월 10일을 자살 예방의 날로 지정하고 이를 줄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으나 여전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출구 없는 아우성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결과의 기저엔 다름아닌 언론 매체가 한 몫 단단히 한다. 앞서 언급한 동반자살 소식을 담은 기사 제목을 보며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경기 안산서 남녀 4명 봉지쓴채 질식사..'동반자살 추정'" "사무실서 4명 동반자살..비닐봉지 뒤집어 쓴 채 발견" "안산사고, 질소누출 아닌 동반자살? 남녀 4명 비닐봉지 쓴 채 사망"



기사 제목만 봐도 놀랍지 않은가? 워낙 충격적인 사건들이 비일비재한 탓에 그다지 새삼스럽지 않다고? 하지만 자살 사건은 여타의 사건들과는 그 성격이 판이하다. 때문에 더욱 신중히 다뤄져야 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전염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요즘 유행하고 있는 콜레라처럼 물리적인 전염원에 의한 전파가 아니더라도 자살을 유발하는 심리 상태가 그 주변인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또 다른 자살을 유도하곤 한다. 유명인 혹은 주변인들의 자살로 인해 또 다른 자살로 이어지며 자살 빈도와 방법에 영향을 미치게 한다는,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는 자살과 관련한 언론 보도 직후 실제 자살 시도가 급증했던 과거의 사례를 통해 이미 입증된 바 있다. 


때문에 언론은 자살과 관련한 보도에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하고, 거듭 신중해야 한다. 자살보도 권고기준이 마련된 것도 다름아닌 그러한 연유 탓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 임하는 언론 매체의 행태를 보면, 과거와 비교해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사회적 공기로서의 책무보다 선정성에 가중치를 두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번 사례는 자살과 관련한 보도를 최소화해야 하며 자살이라는 단어 사용을 자제하고 선정적인 표현을 피해야 한다는 자살보도 권고기준으로부터 벗어나있을 뿐 아니라. 현장의 상황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자살 방법이나 수단을 대중들에게 상세하게 알려주는 효과를 낳고 있다. 단지 자살로 추정된다는 사실만으로 실제 자살인 양 선정적인 제목으로 이를 보도하는 건 오로지 진실에 입각해야 하는 언론인으로서의 직업 윤리를 망각한 행위에 다름아니다. 


굳이 자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해당 사건의 심각성을 얼마든 전파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자살이라는 매우 또렷한 글자로 제목을 장식하고 있는 언론들이다. 혹여 자살로 최종 판명이 났다 해도 언론은 자살 장소나 방법 등을 기사 내용에 구체적으로 포함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자살보도 권고기준에 따르면 이러한 표현은 아예 넣지 않거나 최소화해야 한다. 보도된 기사 내용을 보며 단 한 명이라도 이를 그대로 모방하여 귀한 생명을 잃게 된다면, 그에 따르는 개인적 사회적 손실은 과연 누가 책임져야 할 것인가.


ⓒ동아일보


때마침 자살과 관련한 심층 기사("혹시 나 때문에?" 1인의 극단 선택, 주변 28명까지 후유증)가 보도됐다. 이에 따르면 자살은 대물림되고 전염된다고 한다. 한 명의 극단적인 선택이 주변 사람 28명에게까지 후유증을 낳게 만드는 게 바로 자살이란 인자다. 때문에 한 사람이 자살했을 때 그에 따르는 영향력이 더 이상 사회에 퍼져나가지 않도록 이를 차단해야 하는 게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잘못된 자살 보도 행태가 자칫 엉뚱한 생명을 앗아갈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될 노릇이다.


자살 사건이 이슈화될 때마다 반복해서 지적돼온 게 다름아닌 언론의 자살 관련 보도 관행이다. 이들이 아무런 사회적 책임감 없이 무심코 손가락으로 써내려간 텍스트 몇 자에 의해 어떤 사람들은 고귀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면모가 이런 상황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읽히기 위한 선정성 경쟁에 매몰된 채 영혼 없는 기사 몇 줄 써내려간 결과가 불특정다수에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절대로 간과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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