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경주 지진에 휘청거린 국민안전

새 날 2016. 9. 13.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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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반드시 유사한 작은 사고와 사전 징후가 선행한다" 


'하인리히의 법칙'이다. 이는 어떤 상황에서든 문제되는 현상이나 오류를 초기에 신속히 발견하여 대처해야 함을 의미함과 동시에 초기에 신속히 대처하지 못할 경우 큰 문제로 번질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주로 노동현장에서의 재해 예방 차원에서 적용되는 법칙이지만, 근래 한반도 상황은 흡사 이 하인리히의 법칙과도 같이 무언가 더 큰 재난 상황을 예고하고 있는 느낌이라 꺼림직스럽다.


한반도 전역으로 지진 공포가 엄습해 왔다. 12일 경주에서 진도 5.1과 5.8이라는 기록적인 지진이 연거푸 발생하면서 역사상 최대 규모급 기록을 단숨에 갈아치운 것이다. 통상 진도 5.0부터 강진으로 분류되는 터라 지진 안전지대였던 한반도에도 이번 지진으로 인해 그에 따르는 위험이 점차 현실화돼 가고 있음을 체감하게 된다. 특히 우리를 더욱 불안케 하는 건 최근 경북 일대를 중심으로 강진이 연이어 감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7월 6일에도 울산 동구 동쪽 52km 해역에서는 규모 5.0의 지진이 발생한 바 있다.


ⓒ머니투데이


아이들 교과서 속에서 등장하는, 한반도는 일본과는 달리 유라시아판과 태평양판 그리고 필리핀판이 만나는 판의 경계로부터 살짝 벗어나 있어 다행히 지진 안전지대에 놓여있다는 이론도 이제는 무색해질 지경이다. 한반도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의미한다. 이는 그동안의 통계 수치로도 입증되고 있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한반도에서 발생한 지진은 총 527건에 달한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부분은 시간이 지날수록, 즉 최근에 가까워질수록 지진 발생 건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구체적으로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발생한 지진 건수는 235건이었으나,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발생한 지진은 무려 292건이나 된다.


이보다 훨씬 이전의 통계와 비교해 볼 경우 지진 발생 증가 현상은 더욱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1978년부터 1982년 사이에 발생한 지진은 총 72건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40여년만에 4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양적으로 보나 질적으로 보나 이쯤되면 하인리히의 법칙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적으로 지진 공포와는 거리가 멀었던 한반도에 사상 초유의 유례 없는 강진이 발생하자 나라 전체가 온통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국민들은 혼비백산하거나 심지어 공황 증상에 시달리며 밤새 잠을 못 이루기도 하고, 인터넷 커뮤니티 등엔 온종일 지진 관련 글들이 쇄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 메신저라 불리는 카카오톡과 휴대전화의 일부 회선마저 한때 먹통이 되자 불안감은 극도에 달한 분위기이다.


국민들이 이렇듯 지진 공포에 떨며 어쩔 줄 몰라해할 때 이를 다독이며 재난 상황을 컨트롤해야 할 정부는 이번에도 또 다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지난 폭염 때는 지겨울 정도로 날아오던 긴급재난문자가 뒤늦게 발송된 데다가, 전국에서 감지될 정도의 강진이었음에도, 진앙으로부터 반경 120㎞에 해당하는 지역에만 발송, 다른 지역에 사는 국민들은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불안에 떨어야 했다.


KBS 방송화면 캡쳐


뿐만 아니다. 국민안전처의 홈페이지는 접속자 폭주로 인해 장애를 일으켜 다섯 시간이나 먹통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안전처 페이스북 등 여타의 경로에는 이와 관련한 별다른 정보도 없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총괄하고 있는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 국가 수뇌부는 지진이 발생한 지 무려 3시간이 지난 뒤에야 지진과 관련한 첫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지진이 북한이 실험한 핵무기의 성능에 비해 50배 이상의 가공할 만한 에너지를 지녔다는 위기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지나친 늑장대응이 아닐 수 없다. 만에 하나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한 상황이라면 과연 어떠한 결과가 빚어졌을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KBS 방송화면 캡쳐


일선 학교 등에서의 안전불감증도 여전했다. 부산의 모 고등학교에서는 학교측이 야간자율학습 중이던 학생들에게 “금방 사라질 지진이니 가만히 있으라”, “공부하는 데 지장이 없으니 계속 자습하라”고 종용했다는 주장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세월호 참사 당시 '가만히 있으라'던 지시를 묵묵히 따르다 희생됐던 아이들의 앳된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KBS 방송화면 캡쳐


앞서도 언급했듯 최근 한반도에서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있고, 더구나 강진의 형태로 잇따라 그 존재감을 드러내며 흡사 하인리히의 법칙이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키우고 있지만, 자연재해를 예측한다는 건 사실상 인간 능력 밖의 일이다. 이번 지진에 대해 전문가들이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는 있으나 현재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내용들처럼 진도 6.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거나, 더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등 서로 상반된 의견들이 쏟아지면서 짐짓 혼란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도 다름아닌 그러한 연유 때문이다. 과연 누구의 주장이 옳은 걸까? 


KBS 방송화면 캡쳐


물론 정답은 없다. 큰 지진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으나,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위력을 지닌 지진이 발생한다고 해도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수 있다. 결국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며 무의미하다는 얘기이다. 다만, 이런 혼란스럽고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란, 만약에 빚어질지도 모를 재난 상황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하는 게 고작일 테다. 


세월호 참사 이래 우리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용어 중 하나가 다름아닌 '각자도생'이다. 이는 국민들이 사회 안전망이 붕괴되는 현상을 직접 목도하면서 자신의 안전과 생명만큼은 스스로가 지켜야 한다는 절실함을 깨달은 데서 비롯된 현상 중 하나다. 정부가 위기적 상황에서 마땅한 대응을 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온전하게 담보될 리 만무하다. 그 토대가 취약하기 짝이없는 국민안전은 경주 지진의 강력한 진동에 의해 다시금 휘청거리는 모양새다. 또 다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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