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혐오현상 부추기는 언론, 누구 편인가

새 날 2016. 9. 1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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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포스팅을 통해 언급한 사안이지만 부득이하게 또 다시 이를 끄집어내고자 한다. 추석 연휴 동안 한 고속버스 기사가 현역 군인에게 베푼 선행이 인터넷과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몇몇 언론 매체 역시 이를 놓치지 않고 기사화하는 등 대단한 민첩성을 선보였다. 덕분에 이 미담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질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던 사연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급반전됐다. 뿐만 아니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이들의 마음을 몹시도 불편하게 했다. 


미담의 주인공인 버스 기사가 자신의 선행에 대해 일부 회원들이 여혐이라며 폄하하거나 악플을 다는 등 몹쓸 행위를 한 까닭에 해당 글을 지웠노라며 하소연을 해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내용을 일부 언론사들이 '여혐'에만 초점을 맞춰 기사화하면서 사건이 일파만파 확산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일 테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 등에는 해당 기사 내용이 퍼나르기된 뒤 일부 성난 남성들의 성토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흡사 바싹 마른 장작에 불씨 하나를 내던진 꼴과 진배없었으며, 이를 기사화한 매체들은 불쏘시개 역할을 아주 충실히 하는 모양새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근래 우리 사회에서 여혐 남혐과 관련한 사안은 예민하다 못해 몹시 뜨겁다. 각기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무언가 먹잇감이 없을까를 호시탐탐 노리며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고 있는 형국인데, 언론 스스로가 자신들의 사회적 책무를 망각한 채 이들에게 먹잇감을 던진 셈이 돼버렸다. 그렇다면 그 먹잇감이란 게 객관성이 있느냐, 그러니까 요즘말로 표현하여 팩트냐 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최초의 미담도 그렇거니와 나중에 올린 여혐 관련 사연 역시 온전히 해당 이야기의 주인공에 의지하고 있을 뿐, 이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방도가 일절 없기 때문이다. 미담의 주인공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글 속에 실제로 '여혐'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진짜로 그 이유 때문에 미담글을 삭제하고 회원 탈퇴를 한 것인지, 아니면 애초 이러한 논란을 부러 야기하려 한, 다분히 의도적이며 불순한 결과물인지는 어느 누가 봐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 매체들은 이를 마치 사실인 양 보도하며 너 나 할 것 없이 불구덩이인 선정성 경쟁에 뛰어들었다.


최악의 경우 미담조차도 사실이 아니라고 가정해 보자. 혹여 그렇더라도 이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만큼 훈훈한 사연이었기에 그다지 문제가 될 것까지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후속 이야기인 '여혐'과 관련한 사연은 그 성격이 판이하다. 현재 우리 사회를 무한 갈등으로 몰아넣고 있는 주범이기 떄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보다 이러한 성질을 잘 알고 있을 언론 매체들이 전혀 객관적이지 않은 사실을 온전히 여혐과 관련한 현상 때문이라며 기사화한 건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과연 누구를 위함일까?



이들의 시도는 결과적으로 먹잇감을 기다리던 일부 남성들에게 매우 시의적절하게 다가오며 일거에 폭발,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또 다시 여혐 남혐 공방이 뜨겁게 일고 있다. 물론 이번에는 일방적인 공세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군인에게 베푼 선행이 어째서 여혐이냐며 입에 거품을 문 채 아우성들이다. 그러나 이렇듯 한쪽으로 지극히 편향된 보도 행태는 우리 사회에 하등의 도움이 될 게 없다. 


작금의 여혐 남혐 문제가 어느 정도로 심각하냐면, 일례로 일부 남성들의 해외 원정 성매매와 관련한 팩트성 기사에 대해서도 여혐이라는 단어만 봐도 눈이 뒤집어지는 일부 사람들은 이를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일쑤이다. 그러니까 극히 일부의 몹쓸 일탈 현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남혐을 위한 의도적인 기사라는 평이 대세를 이룬다. 심지어 여성가족부의 조작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글들이 오가기도 하며, 원정 성매매를 당연한 것처럼 합리화하기도 한다. 이른바 팩트가 온전하게 살아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여혐 남혐에 심취한 일부 남성들은 이러한 현실마저도 음모론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행을 여혐이라 폄하했으니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난 어느 누구의 편을 들어줄 생각이 추호도 없다. 지금 벌이고 있는 여혐 남혐 전쟁은 정말 부질없는 소모성 논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를 자꾸 부추기고 있는 언론에는 할 말이 제법 많다. 언론인의 직업 윤리는 사회적 책임을 근간으로 한다. 언론의 행위는 그 파급력이 막강하기에 별도의 윤리강령을 제정하여 자율적으로 이를 따르도록 하고 있다. 신문윤리실천요강을 살펴보자. 제1조에서는 건전한 여론 형성에 힘쓰며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금지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아울러 제3조에서는 사실을 보도할 때 선정적이어서는 안 되고, 그 진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른 조항들은 둘째치더라도 이번 사안과 관련하여 언론들은 건전한 여론 형성에 힘을 쏟아야 하는 판국에 오히려 사실 확인조차 온전히 이뤄지지 않은 사안을 이용, 편견적인 시각으로 일관하고 있다. 게다가 사실 보도를 할 때엔 선정적이어서는 안 되며 오로지 진실에 입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진실 여부는 내팽개친 채 근래 이슈가 되고 있는 '여혐'이라는 단어에만 초점을 맞추는 등 지극히 선정적인 보도 행태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 보다 진중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지니고, 올바른 여론 형성에 힘을 쓰는, 참된 언론을 보고 싶은데 진정 이는 한낱 꿈에 불과한 걸까? 혐오현상을 자꾸만 부추기는 우리 언론은 과연 누구의 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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