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반려동물과의 아름다운 공존을 바라나요?

새 날 2016. 9. 2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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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반려동물 인구가 크게 늘었다. 천만 명 시대라는 언론속 이야기는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 확연히 느껴질 정도이니 말이다.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눈에 띌 정도의 변화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는 볼 수 없었거나 미처 생각지 못한 일들이 꽤 빈번하게 일어나곤 한다.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도 무수한 갈등이 빚어지곤 하는데, 그 사이에 동물이 끼어든 셈이니 어쩌면 없던 갈등마저도 쉽게 발생하리라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 아닐까 싶다. 


누구나 그러하듯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의 처지와 마음을 헤아리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을, 그 반대로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을 서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단언컨대 비반려동물인이 반려동물인을 이해하는 마음보다 반려동물인이 비반려동물인을 헤아리는 마음이 그래도 조금은 더 수월하리라 짐작된다. 오늘날의 갈등은 다름아닌 이 비대칭적인 이해 수준의 현실을 애써 무시한 채 오로지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며 헤아려 달라는 현대인들의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경향이 크다. 



그동안 수면 아래에서 잠자던 갈등을 급작스레 깨운 건 다름아닌 부쩍 늘어난 반려동물인들이다. 우려하던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모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하나로 인해 해당 사이트에선 때아닌 반려동물과 관련한 격렬한 논쟁이 빚어졌다. 목줄을 매지 않은 말티즈 한 마리가 어린 조카들에게 달려들자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심코 개를 발로 걷어찼는데, 나무에 부딪힌 개는 그만 현장에서 즉사하고 말았단다. 견주는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고, 개를 발로 찬 당사자는 황당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해당 글에 달린 댓글만 수백 개에 달하며, 그 뒤로 관련 글이 쇄도할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도는 상당했다. 이는 일상 속에서 비슷한 사례가 얼마든 일어날 수 있음을 상징하는 바이고, 반려동물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갈등의 골이 생각보다 무척 깊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나는 개를 키우고 있는 입장이기에 반려동물인의 마음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헤아릴 수는 있다. 때문에 이런 글을 쓰는 자체가 보는 이에 따라 어쩌면 객관적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반려동물인이기에 솔직히 개를 다루는 데 있어 더욱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이를테면 우리집 개를 산책시킬 때면 부러 사람이 없는 곳과 시간을 택해 조용히 다녀오곤 한다. 운동을 위해 천변 산책로를 걷거나 뛸 때마다 느끼지만, 반려견들이 은근히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목줄마저 매지 않은 경우라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개도 좋으나 그보다는 사람이 우선이 되어야 하고, 더구나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조금이라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러니까 개를 키우다 보니 오히려 개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의 심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경우이다. 천변 산책로에서의 운동 이후 개를 데리고 나가는 일이 더없이 조심스러워졌다.



자, 그렇다면 앞선 사례는 어떻게 봐야 할까? 우선 목줄을 매지 않아 원인을 제공한 견주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는 건 분명하다. 동물보호법을 통해 반려견의 목줄 착용을 의무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득불 이를 어긴 상황에서 발생한 결과이니 말이다. 개를 발로 찬 사람 역시 일종의 자기 방어적 수단 행위로 보이긴 하지만, 개가 즉사할 만큼 강한 힘을 가했다는 건 그의 발끝에 필요 이상의 감정이 실린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결과적으로 볼 때 참 안타깝다는 표현 외에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다. 왜냐하면 견주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어쨌든 애초 원인 제공을 한 건 견주임이 분명하니 말이다. 


난 이번 사례 자체보다 이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뒤틀려 있으며, 강퍅한가를 여실히 깨닫게 된 사실이 더욱 안타깝다. 이런 비극적인 분위기에서 '그러니까 토끼를 키우라고 하지 않았느냐' 혹은 '고양이를 키우세요' 와 같은 말도 되지 않는 표현을 서슴지않는 이들이 있다. 이는 비아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러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려 하기보다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자적 태도를 취한 채 외려 기름을 끼얹는 형국이니 말이다. 사실 앞서의 사례는 반려동물인구가 지금처럼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면 누구에게든 일어날 법한 사안이다. 본인들은 진지하게 말한 것일지 모르나 이런 농담 아닌 농담은 지금과 같은 갈등 구조에서는 하등의 도움이 되질 않는다.


혹자는 목줄을 매지 않은 채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견주를 일일이 처벌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한껏 높인다. 물론 그 심정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마땅히 지켜야 할 것들은 이뿐 아니라 도처에 널려 있다. 가령 길에 침을 뱉거나 담배꽁초를 버리고 무단횡단을 일삼는 등의 행위 역시 법에 의한 제재 대상이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이에 대해 일일이 간섭 않는다. 그러니까 법에 의해 강제되기 이전에 모두가 마땅히 지켜야 할 일종의 생활속 에티켓 중 하나로 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뉴스1


앞으로 반려동물인들과 비반려동물인들 사이의 갈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려동물인들은 비반려동물인들에게 무조건적인 배려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앞서도 살펴봤듯 작금의 갈등의 원인을 그 정도에 따라 가중치를 두자면, 결국 반려동물인들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비반려동물인들 입장에서는 피해자의 지위에 놓여 있다는 의미가 된다. 반려동물을 키우기 위해선 선진국들처럼 엄격한 인증을 받거나 심지어 자격증을 취득하게 하여 말 그대로 반려동물을 키울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만큼 반려동물인들을 향한 시선이 곱지 않다는 방증이다. 


자식처럼 귀한 반려동물과의 아름다운 공존을 바라는가? 그렇다면 그에 걸맞는 책임의식과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가장 기본적인 에티켓조차 지키지 않으면서 비반려동물인들에게 무조건적인 배려를 바란다는 건 지나친 욕심이다. 비반려동물인들 역시 반려동물과의 공존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다소 불편하거나 불만이 있더라도 너그러움과 아울러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가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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