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치란 말야

구글은 왜 이모티콘을 바꾸었나

새 날 2016. 7. 16.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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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장난감을 고를 때 여아용과 남아용 완구 코너를 구분해놓아 소비자로 하여금 부지불식 간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는 일상의 관례를 깨기 위해 미국의 대형 유통업체들이 완구류에 남아용, 여아용 등 성에 기반한 표시를 아예 없애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담은 포스팅을 얼마전 썼던 적이 있다. 뿐만 아니다. 멋지거나 예쁜 외모 일색인 완구 시장에서 세계적인 완구회사 덴마크의 '레고'가 회사 창립 이래 처음으로 장애인 피규어를 선보이는 등 각종 편견을 깨려는 움직임이 지구촌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는 소식도 전했다. 


헤르미온느의 사례 역시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해리포터의 단짝인 헤르미온느의 연극 배역을 흑인 배우로 낙점, 일반인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편견을 부숴 버리는 사례가 얼마전 영국에서 있었다. 미국에서는 한 여성이 국제표준으로 자리잡은 뒤 전 세계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는 장애인 표식이 지나치게 수동적인 주체로 묘사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좀 더 역동적이며 독립적인 주체로 보일 수 있도록 디자인을 바꿔 보급에 나섰다.


ⓒ뉴시스


일견 보잘 것 없는 행위들 같으나 실은 그렇지가 않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된 사례들 모두는 생활밀착형 도구이거나 매체들인 까닭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 우리는 부지불식간 '이것은 반드시 ~할 것이다'라는 선입견에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완구는 한창 성장하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라면 반드시 아동의 나이대에 걸맞는 제품으로 바꿔가며 적어도 수년 동안 이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 그러다 보니 생활 속에서 몸과 부딪혀가며 자연스럽게 다뤄지는 과정에서 어느덧 여성은 '분홍', 남성은 '파랑'이라는 성에 기반한 고정관념을 부지불식간에 심곤 한다. 


ⓒKBS


연극이나 영화 그리고 TV와 같은 미디어 매체의 대중을 향한 영향력은 더욱 막강하다. 해리포터 원작가인 조엔 롤링이 직접 지적하고 나섰듯 자신은 작품 속에서 헤르미온느와 관련하여 절대로 피부색을 언급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스스로 주인공은 멋진 외모의 백인이어야 한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힌 채 흑인 헤르미온느를 배척하는 결코 웃을 수 없는 현상마저 빚어지고 말았다. 


장애인 표식은 또 어떤가. 관공서며 주차장 등 웬만한 건물에는 이 표식이 빠지지 않고 표기되어 있는데, 대중들은 이를 보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장애인 하면 그저 휠체어에 의지하는 나약하고 수동적인 존재로만 인식하기 쉽다. 그러니까 가뜩이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상황에서 이러한 디자인이 그러한 현상을 더욱 부추기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온라인에서 흔히 활용되고 있는 이모티콘은 어떨까? 근래엔 이모지(이모티콘과 이미지의 합성어)가 메신저상에서의 대화속 양념과 같은 역할을 톡톡히하며 인기몰이 중이다. 국내 최대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에서 오가는 이모지 개수는 하루 평균 6천600만 건으로 알려졌다. 문자로만 대화하다 보면 감정 전달이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이런 상황에서 이모지는 감정을 전달하는 데 있어 좀 더 정확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모지는 국경마저 뛰어넘는다. 이모지가 전달하는 의미는 언어의 장벽을 훌쩍 넘어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영향력이 막강할 수밖에 없다. 2015년 이모지 리포트에 따르면 전세계 온라인 이용자의 92%가 이모티콘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모티콘에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 각종 편견적 요소로 가득하다. 


이를테면 특정 직업인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의 경우 남성과 여성의 전유물인 양 표현되거나 특정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경우가 왕왕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자면, 교수나 경찰, 의사 등의 직업을 나타낼 때는 으레 남성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고, 헤어디자이너나 간호사의 경우에는 반대로 여성의 전유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최근 구글이 이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경찰관, 탐정, 안전요원 등 대부분의 직업을 나타내는 기존의 구글 이모티콘은 남성형으로만 존재해 왔으며, 반면 여성형 이모티콘은 미용사, 공주, 신부 등으로 극히 제한돼 있었다. 특정 성별로 지나치게 기울어져있던 셈이다. 구글은 이에 변화를 꾀했다. 13개의 여성 직업인 이모티콘을 유니코드 기술위원회에 제안하였으며, 이 중 11개가 유니코드로 공식 지정된 것이다. 유니코드로 지정되면 전 세계 컴퓨터에서 일관되게 표현하고 다룰 수 있게 되어 성별에 따른 직업과 관련한 고정관념을 깨는 데 일조할 수 있게 된다. 


ⓒ구글 코리아 블로그


구글은 기존 이모티콘도 새롭게 보완했다. 이미 유니코드로 지정된 33개 이모티콘을 남성과 여성 모두 선택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다. 일례로 여성 달리기 선수와 남성 헤어디자이너가 새로이 추가됐다. 


헌법 제11조에는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생활속 익숙한 도구나 매체로부터는 늘 특정한 방향으로의 고착화된 편견을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정해지는 남성성이나 여성성과 관련한 성적 관념의 편견은 왜 문제가 되는 걸까? 


어릴적부터 보다 다양한 꿈을 꾸고 이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편견 때문에 놓치게 되거나 특정한 방향으로 흐르게 만들 개연성이 높고,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의 삶 자체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셈이다. 즉, 주체적으로 삶을 선택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함에도, 어릴적부터 정해지는 편견 때문에 그 방향이 틀어지게 된다면 이는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다행히 구글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는 각종 편견을 깨려는 다양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바람직한 변화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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