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치란 말야

스냅챗의 사례로 본 소프트웨어의 윤리적 책임 한계

새 날 2016. 5. 1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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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냅챗은 사진과 동영상 공유에 특화된 소셜 미디어 서비스다. 이의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전송된 메시지가 확인된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메시지가 자동으로 삭제된다는 점일 테다. 이른바 '자동 폭파' 기능이다. 물론 여기서의 일정 시간이라 언급한 메시지의 확인 시간은 받는 이가 임의로 설정 가능하다. 하지만 설정한 시간이 종료된 이후에는 메시지를 절대로 볼 수 없으며, 또한 보고 있는 이미지에 대한 스크린샷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스냅챗에는 제법 유용해 보이는 또 다른 기능이 있다. 이른바 '스피드 필터'라 불리는 기능인데, 이는 스냅챗으로 사진을 찍을 경우 만약 이를 활용하는 이가 현재 움직이는 자동차나 기타 탈 것에 탑승 중인 상태라면 당시 탈 것의 움직이는 순간 속도가 촬영 이미지에 그대로 기록되도록 한 것이다. 셀카를 이용한 인증샷, 그것도 자극적인 형태가 난무하는 세상이기에 이를 활용한 색다른 형태의 인증샷이 등장하리라는 건 쉽게 예측 가능하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 조지아 주에 사는 한 18세의 여성이 아버지의 승용차를 몰고 시속 172km의 속도로 달리다 이를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나머지 스냅챗을 이용, 인증샷을 시도했단다. 하지만 순간 다른 차를 들이받는 대형 교통사고로 이어지는 바람에 피해자는 뇌손상을 입은 채 평생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처지가 됐고, 가해 여성 역시 평생 장애로 살아가야 할 운명에 놓이고 말았단다. 

 

이에 대해 피해자 측은 가해 운전자뿐 아니라 스냅챗 역시 이번 사고에 책임이 있다며 치료비와 장애인 활동보조 비용을 청구한 상황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내가 관심을 갖게 된 건 다름아닌 이 지점이다. 원고 측은 스피드 필터 기능이 운전 도중 사용되는 사례가 잦아 매우 위험하기에 이를 폐지하라는 일각의 요구가 있었음에도 스냅챗은 이를 막기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어떤 판결로 귀결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과연 스냅챗의 책임은 인정될 것인가?

 

개발자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에너지가 오롯이 담겨 있는 이러한 최신 소프트웨어의 등장은 기술의 발전과 궤를 함께한다. 일상에서의 흔한 쓰임새에 아이디어를 조금 더 첨가하는 등 유용하고 편리한 생활을 추구하고자 함이 이러한 앱 개발의 궁극적인 목적일 테며, 앞서의 사례처럼 약간의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기는 하나 개발자들이 애시당초 그러한 부작용을 당면 목표로 삼고 해당 앱을 개발하지는 않으리라 짐작된다.

 

이를테면 채팅앱을 그의 사례로 들 수 있다. 스마트폰에서 채팅을 가능케 하는 채팅앱 역시 사람들 사이에서의 또 다른 소통 창구로써의 역할을 바라고 개발되었을 법한데, 현재 일부 앱 이용자들의 그릇된 오남용이 자꾸만 부작용을 낳고 있는 실정이다. 구체적으로는 '조건만남'으로 남성을 유혹하고 유인한 뒤 폭행을 일삼거나 채팅앱을 통해 여성을 꾀어 금전을 지불하기로 약속한 뒤 성폭행을 저지르고, 여성이 다른 남성들과 짜고 성매수 남성을 불러내 강도 행각을 일삼는 등 이를 매개로 한 불법 범죄 행위가 빈번하다. 심지어 남성이 채팅앱을 통해 여중생을 꾀어 살해하고 달아나는 강력 범죄마저 발생한 사례도 있다.

 

 

스냅챗은 2015년 '포브스'가 뽑은, 기업의 시장가치를 직원 수로 나눈 ‘직원 1인당 기업가치’가 가장 큰 회사로 등극할 만큼 촉망 받는 기업이다. 하지만 다수의 전문가는 스냅챗의 등장 당시 이미지와 영상이 수초만에 사라지는 휘발성 기능으로 인해 도덕적 일탈을 부추기거나 부정한 행위에 악용될 수 있다며 우려한 바 있다. 뿐만 아니다. 앞서 언급한 스냅챗의 스피드 필터 역시 한 스냅챗 사용자가 시속 229km로 과속하는 인증샷을 올린 사례가 있고, 브라질에서는 시속 177km로 운전하며 해당 기능을 사용하다가 대형 교통사고를 야기한 적이 있어 진작부터 부작용이 우려되던 터다.

 

스냅챗 측이라고 하여 스피드 필터 기능의 부작용을 모르는 바는 아닌 눈치다. 스냅챗 앱 약관에는 "교통이나 안전 법규를 따르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스냅을 찍기 위해 당신 자신이나 다른 이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마십시오"라는 구절이 포함돼 있다. 스냅챗 측은 앞서의 소송과 관련하여 “운전중 속도 필터를 사용하지 말도록 분명히 경고하고 있고, 이에 대한 사용자의 동의를 구한다”며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입장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도구이든 그로 인한 부작용은 마치 양날의 검과 같다. 가령 CCTV를 사례로 들어보자. 범죄 예방 등의 특수목적을 위해 우리의 생활 공간 곳곳까지 침투해 들어온 카메라이건만, 근래 이로 인한 개인 정보 유출이나 사생활 침해 등의 부작용이 보고되며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양상이다. 소프트웨어라고 하여 별반 다르지 않다. 소프트웨어에 의해 발현되는 부작용은 여타의 도구와 마찬가지로 결국 이를 활용하는 사용자의 몫이다. 셀카를 찍다 사망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하여 카메라를 모두 없앨 수는 없으며, 마찬가지로 채팅앱을 통해 성 범죄가 잦다고 하여 이의 개발과 판매를 원천봉쇄할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다.

 

그러나 적어도 개발자라면 앱 사용자의 입장에서 어떠한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으며, 또한 사회에는 어떠한 파장이 미칠 것인가와 같은 신중한 고민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 지점에서 바로 개발자와 그들에 의해 발현될 소프트웨어의 윤리적 책임 한계의 문제가 부각된다. 스냅챗이 약관을 통해 스피드 필터의 기능에 대한 경고를 했다고는 하나 과연 이 방식만으로 작금의 부작용을 막는 일이 가능할 것이며, 아울러 최선의 예방 장치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선 조금 더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다. 채팅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악용을 막기 위해선 성인 인증과 경고 문구 삽입 등이 뒤따라야겠지만, 이 역시 최선인가의 여부는 별개의 사안이다.

 

개발자들의 뛰어난 아이디어와 기술 발전의 결합으로 속속 등장한 채 우리의 손바닥 위에서 활용돼오고 있는 각종 첨단 소프트웨어는 일상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거나 즐거운 형태로 변모시키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과거에는 결코 볼 수 없던 생활 밀착 형태의 새로운 사업 유형인 까닭에 이에 대한 법적 윤리적 책임 한계는 여전히 모호하기만 하다. 일종의 과도기적 상황으로 읽힌다.

 

여러 개의 저렴한 컴퓨터를 마치 하나인 것처럼 묶어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술인 '하둡'을 창시한 '더그 커팅 클라우데라'의 최근 이와 관련한 일침은, 비록 데이터베이스와 관련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기는 하나, 그래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전통적인 분야, 즉 법률이나 의학은 윤리적인 운영을 위한 강령이나 체계가 있지만 컴퓨팅에는 아직 자리 잡지 않았다. 개발자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만약 본인이 고객이 됐을 때 문제가 없는지 윤리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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