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치란 말야

온오프라인을 잇는 소통, 놀라운 발명품 '포스트잇'

새 날 2016. 6. 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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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뉴욕시 빌딩가 한복판에서 벌어진 포스트잇 전쟁은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그 시작은 매우 단순했습니다. 일상에 지친 사무실 직원들이 무료함을 달래고자 창가에 포스트잇을 이어 붙여 표현한 'Hi' 라는 글귀가 발단이 된 것인데요. 반대편 건물에 있던 다른 회사 직원들이 이에 화답을 하며 전쟁 아닌 전쟁으로 불거진 것입니다. 이후 사람들은 포스트잇을 활용한 작품(?)에 자존심 대결까지 펼쳐가며 더욱 창의적인 방법과 기발한 디자인을 동원하게 되었고, 삭막한 사무실의 유리창은 어느덧 형형색색의 형상으로 아름답게 물들어갔습니다. 당사자들은 전쟁(?)이라며 너스레를 떨 법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사실 즐거움 그 자체였습니다.


즉흥적이지만 제법 심혈을 기울여 표현된 각종 형상들은 심지어 예술 작품이라는 묘사마저 등장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무료함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단순한 행동이 보다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으로 이어지게 했고, 저마다 지니고 있을 법한 예술적 공감을 일제히 불러모은 셈입니다. 즉, 여기서의 포스트잇은 제품이 지닌 원래의 쓰임새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매개 역할을 톡톡히하고 있던 것입니다.


ⓒ서울신문


'포스트잇'은 저처럼 기억력에 한계를 느끼는 현대인들에게는 필수품입니다. 이는 문서나 컴퓨터 등 무언가 눈에 띄는 장소에 잠시 붙여놓는, 손바닥보다 작은 메모지를 말하는데요. 원래는 제품 이름일 텐데, 워낙 독보적이다 보니 현재는 거의 보통명사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우린 평소 이를 1회용 메모지로 잘 활용해오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실질적인 편리함을 주는 사무 도구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포스트잇이 우리 앞에 최초로 등장한 건 30여 년 전의 일입니다. 1980년에 미국 3M사 직원인 아서 프라이와 스펜서 실버가 이를 상업적인 목적으로 출시하면서 최초로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화제가 됐던 이 포스트잇이 국내에서도 연일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강남역과 구의역 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아울러 홍대에 설치된 일베 조형물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기 위해 시민들은 누가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저마다 오프라인 현장으로 향했고,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하는 도구로 바로 포스트잇이라는 제품을 선택하여 활용한 것입니다. 과거에는 결코 볼 수 없던 현상입니다. 흔히 온라인에서 그저 단 몇 줄의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던 방식이 요즘 젊은이들의 의사 표현의 전부였을 텐데 이에서 탈피, 오프라인에서의 활동에도 뛰어든 셈입니다. 그의 매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건 다름아닌 포스트잇이었고요.


대자보로 대변되던 대학생의 집단 의사표현과 소통 방식은 어느덧 개인주의문화가 사회 저변으로 자리잡게 되자 학생운동이 그랬던 것처럼 점차 퇴조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얼마 전 대자보 열풍이 화제가 됐던 건 다름아닌 그러한 연유 때문입니다. 집단주의문화는 종적을 감추고 오로지 개인이 최고의 덕목인 세상이 된 것입니다. 게다가 인터넷과 SNS의 발달이 더해지면서 개인의 목소리가 더욱 중요해진 시대적 상황, 어느덧 온라인에서 의사를 표출하던 소극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적어도 자신이 공감하고 의사 표현을 하고 싶은 사안에 대해서만큼은 적극적으로 현장으로 달려가 흔적을 남기는 방식을 요즘 젊은이들은 선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왜 하필이면 포스트잇이냐는 의구심을 지닐 법도 합니다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포스트잇이란 제품이 어쩌면 근래 유행하는 SNS의 특징을 제법 빼닮긴 한 것 같습니다. 단 몇 줄의 간단한 메모만을 남길 수 있는 기능적인 측면도 그렇거니와 이를 흔적조차 없이 쉽게 붙였다가 가볍게 떼낼 수 있다는 점은 온라인에서의 간편한 글 작성 내지 삭제 방식과 매우 유사한 것 같습니다. 몇 차례의 클릭과 키보드의 입력에 의해 글을 남겼다가도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간단하게 이를 삭제할 수 있는 SNS의 편의성을, 메모지를 붙였다가 흔적도 없이 떼버릴 수 있는 포스트잇의 특성속에 고스란히 옮겨놓은 느낌입니다. 


뉴욕에서 벌어진 포스트잇 전쟁 역시 그의 산물인 형형색색의 형상들을 마음만 먹으면 단 몇 초만에 간단하게 모두 없앨 수 있습니다. 만드는 것도 쉽고 없애는 것도 쉬운 일입니다. 부담 따위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는 포스트잇에 담겨있는 제품의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 제품을 처음 고안하고 출시할 때만 해도 오늘날의 목적으로 쓰이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의 사용성과 편의성을 고스란히 오프라인에서도 누릴수 있게 만든 이 제품을 전 주저없이 이 시대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고 싶습니다.


현재 포스트잇은 다양한 크기와 색깔로 출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랑 받고 있는 크기와 색상은 7.5센티미터의 노란색 오리지널 제품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7.5센티미터의 작은 공간에 추모의 마음을, 혹은 분노의 심경을, 때로는 반대나 찬성의 의견을 정성껏 적곤 합니다. 이러한 메모지 한 장 한 장이 모여 수백장 아니, 수천장 수만장이 겹쳐지고 덧붙여져 일정한 외형적 형태를 띤 채 다양한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때로는 여론이 되기도 하며 소통의 장으로 변모하기도 합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울신문


포스트잇을 활용, 무료함을 떨쳐내고자 반 장난식으로 창문에 '안녕'이라는 글귀를 썼더니 반대편 건물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일이야' 라는 반응을 보여오고, 이는 어느덧 상대방의 안위를 묻는 단순한 방식에서 벗어나 창의력 경쟁으로 이어져 같은 도시, 반대편 건물에서 근무하면서도 평소 서로가 누구인지조차 전혀 알 수 없었던 이 삭막한 도심 공간에 형형색색의 메모지를 이어붙이며 상호 간에 관심과 공감을 표시하거나 소통을 이어가게 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이나 우리나라에서 포스트잇이 활용되는 방식은 제각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본질적으로 온라인에서의 가벼운 소통처럼 오프라인에서도 온라인에서와 비슷한 방식으로의 소통을 가능케 해주는 뛰어난 매개 내지 도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포스트잇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한 실로 엄청난 발명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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