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비흡연자다. 담배연기가 너무도 싫다. 때문에 흡연자들에겐 정말 미안한 얘기가 될 법하지만, 담뱃값 인상을 필두로 각종 금연 정책을 일시에 쏟아내놓고 있는 정부의 시책이 솔직히 반갑게 다가온다. 국민 건강 증진을 꾀하기 위함이라는 정부의 정책 기조가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생활 주변 곳곳에서 비흡연자들을 괴롭혀 온 담배연기를 정부가 직접 없애겠다며 팔을 걷고 나선 마당이니 이를 마다할 이유가 내겐 전혀 없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순진한 발상이다. 흡연자들에 대한 권리를 털끝만큼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정부의 일방적인 토끼몰이식 정책으로 인한 폐해가 고스란히 비흡연자들에게까지 전가되고 있는 탓이다. 실내 금연 조치로 인해 일제히 밖으로 쏟아져 나온 흡연자들, 이들 덕분에 어느덧 내겐 거리를 걷는 일조차 괴로운 일상이 돼버렸다. 금연을 통한 국민 건강 증진에 방점이 찍힌 정부의 정책 탓에 흡연자들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일례로 흡연실 설치 따위의 조치는, 되레 흡연을 부추기는 결과가 될 수 있다며 정부가 애써 외면해 오고 있는 실정이다.
ⓒ연합뉴스
이러다 보니 의외의 현상이 빚어지기도 한다. 현재 대부분의 건물과 영업시설의 실내는 금연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합법적으로 실내 흡연이 허용되고 있는, 이른바 '흡연방’이라 불리는 신종 업태가 빼꼼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곳의 모습은 여느 카페와 다르지 않단다. 다만, 차나 음료를 먹으려면 자동판매기를 이용해야 하고, 대형 환기장치가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 굳이 다르다면 다르다. 물론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자리에 앉아 떳떳하게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도 여느 카페와는 다른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신종 업종이 그러하듯, 이 또한 옆나라 일본으로부터 모방한 업태인 듯싶다. 일본의 경우엔 흡연방이 벌써부터 보편화됐단다. 일본의 흡연방과 우리 것의 다른 점을 꼽자면, 1인당 일정 액수의 입장료를 내야 하는 일본이지만, 우리의 경우는 별도의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있단다. 대신 음료나 과자 등 먹거리의 이용은 반드시 자판기를 통해 구매해야 한다. 물론 이마저도 강제성을 띠고 있지 않기에 흡연이 가능한 일종의 합법적인 '무인 카페'라고 하면 가장 적절한 표현일 듯싶다.
국민 건강 증진을 핵심 기치로 내세우고 있는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해 난 비흡연자이기에 딱히 이의가 있을 리 만무하다. 당연히 그렇게 돼야 한다. 그러나 무엇이든 일방적인 정책으로는 그 효과를 온전히 누릴 수 없다. 담뱃값 인상으로 세수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금연을 위한 예산은 외려 줄어들고 있다.(정부 금연정책, 국민 건강 증진에 얼마나 도움됐나 포스팅 참고) 더구나 비흡연자들에게까지 금연정책으로 인한 폐해가 고스란히 돌아오고 있는 모양새다. 풍선효과 탓이다. 이 정도의 상황이라면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기란 지극히 어려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오른 담뱃값 덕분에 세수 확보에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는 흡연자들, 하지만 그들의 권리는 철저히 외면 당하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물론 정부는 흡연자의 권리를 챙겨주는 것이 결국 금연정책 기조와 전면 배치되는 결과라는 그럴 듯한 이유를 대고 있다. 그렇다면 '흡연방'이라는 신종 업종을 정부가 허용하고 있는 상황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최소한의 흡연권 보장은, 궁극적으로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를 위한 결과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흡연자를 위한 최소한의 권리 보장이, 흡연을 조장한다기보다 결국 비흡연자를 비롯한 국민 모두에게 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정부가 혹시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한국일보
'흡연방'이라는 신종 업종의 등장은,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으로 인해 발생하게 된 일종의 반작용 현상이다. 흡연자나 비흡연자 모두에게 절실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기에 그 틈새 시장을 노리고 등장하게 된 일종의 신종 업태다. 그렇다면 이러한 업종에 대해 합법이라는 결론을 내린 정부의 조치는, 국민 건강 증진에 방점을 찍은 채 금연 정책에 올인하고 있는 현재의 정책 기조와는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행태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흡연방'의 등장을 환영한다. 정부가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 못하니 목 마른 사람이 직접 우물을 파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비록 상업시설에 불과한 데다 일본의 것을 그대로 모방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러한 시설이 흡연자들의 흡연권을 보장해주고, 나아가 거리에서의 담배연기 때문에 곤혹스러워 하고 있는 비흡연자들까지 보호해주니 이를 마다해야 할 이유를 난 전혀 찾지 못하겠다.
'생각의 편린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육 대란 위기, 정부가 결자해지하라 (6) | 2016.01.07 |
---|---|
일본인만도 못한 엄마부대봉사단 (10) | 2016.01.05 |
고용 불안감 고조시키는 정부의 노동개혁 지침 (10) | 2016.01.02 |
새해 소망, 정치 참여로 삶의 토대를 바꾸자 (16) | 2016.01.01 |
'평화의 소녀상' 이전은 어불성설이다 (12) | 2015.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