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고용 불안감 고조시키는 정부의 노동개혁 지침

새 날 2016. 1. 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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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노동시장의 불확실성 해소 및 유연성 확대를 위해 '일반해고'의 기준과 절차를 담은 지침을 지난달 30일 발표했다. 이날 정부가 공개한 지침의 핵심은 두 가지다. 우선 업무능력 결여자, 즉 저성과자에 대한 일상적 해고가 가능해졌다는 부분을 꼽을 수 있으며, 두 번째로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노동자의 동의 없이도 개정할 수 있도록 한 대목이다. 이번 정부의 지침 발표로 향후 적법한 해고의 종류는 징계해고, 정리해고 외에 업무능력의 결여자에 대한 퇴출을 적법화한, 이른바 저성과자 해고라 불리는 일반해고로까지 그 기준이 확대될 전망이다.

 

이와 같은 정부 지침의 초안이 발표되자 당장 노동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노총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노사정 대타협을 파기했다며 노사정위원회의 탈퇴를 시사했고, 민주노총은 총파업 등을 통해 총력 투쟁에 나설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현행 근로기준법은 그 표현상 다소 모호하고 추상적인 구석이 많아 노동 현장에서의 분쟁이 끊임없이 지속돼 왔다. 이는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에도 불필요한 비용을 유발하는 등 노사 양측에 모두 불리하게 작용해 온 경향이 크다. 이번 지침은 결국 이에 대한 기준과 절차를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마련된 셈이다.

 

ⓒ헤럴드경제

 

일반해고와 관련하여 까다로운 평가가 요구되는 등 언뜻 정부의 지침을 보면 쉬운 해고라기보다는 꽤나 어려운 해고로 읽힌다. 사용자조차 이번 지침은 기존 판례를 정리한 수준을 넘어 오히려 해고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노동계는 강력 반발하고 나선 것일까? 우선 이번 지침이 마련되기까지의 절차적 흠결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노사정 대타협 이후 100일이 지나는 동안 사실상 이렇다 할 토론이나 대화의 노력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2015년을 불과 이틀 남겨놓은 30일 전문가 좌담회라는 형식을 빌려 정부안을 공개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왜 이러한 결과가 빚어졌는지에 대해 짐작가는 대목이 있긴 하다. 아마도 행정부 수반의 압박 때문이 아니었는가 싶다. 어쨌거나 지나치게 일방적인 결과임엔 틀림없다. 예의 그 소통 없는 정부의 일방통행식 정책 추진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빛을 발하고 있는 셈이다. 노동계와 사용자 및 정부 사이의 불신의 골이 여전히 깊은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이런 방식으로 추진하려면 노사정 대화는 도대체 왜 했던 것인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정부가 일반해고에 대해 일견 그럴듯한 평가제도와 까다로운 요건 등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노동계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결국 사용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특정 직원을 해고시키기 위해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하여 부당해고의 부담감을 줄이는 온갖 방법들을 찾아내리라는 점이다. 우선 핵심 타깃은 내부고발자 내지 노동조합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계의 입장에서는 이번 지침이 마음에 들지 않는 정규직 직원을 저성과자로 얼마든 낙인을 찍어 해고 가능케 하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 직원으로 채우는, 모두가 우려하는 형태의 노동 유연화(?)가 이뤄지리라는 전망이다.



노동 전문가들 역시 우려의 목소리 일색이다. 정부 지침에 따른 평가제도의 오남용으로 인해 노사관계가 파행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기에 노동자들에게 두려움이 아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지침이 돼야 할 것이며, 저성과자 해고자 선정에서 노조나 근로자 대표의 참여를 보장해 그 공정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결국 초안인 이번 지침을 근거 삼아 일반해고 오남용과 악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가 노사정 사이의 깊은 갈등을 가라앉힐 핵심 열쇠로 작용할 전망이다.

 

2013년 기준 우리나라 노동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5.6년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OECD 국가의 평균 근속연수는 10.5년으로 우리나라보다 약 2배가 높다. 고용 안정성이 이미 최악이라는 의미이다. 한 온라인 취업포털 사이트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현재 고용상태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69.3%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정부의 일반해고 지침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도 노동자들은 벌써부터 고용 불안감에 떨어 왔던 셈이다.

 

세계 경기의 하향세가 대한민국의 수출 부진을 심화시키고 이로 인해 기업 매출과 근로소득 둔화로 이어지고 있다. 병신년 새해가 밝았지만 도통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다름아닌 이러한 점 때문이다. 한국경제의 기본은 수출이다. 수출이 어려우면 내수도 죽고 경제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신규 취업자의 고용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가뜩이나 취업절벽이라는 신조어까지 양산해내고 있는 고용시장에 더욱 매서운 취업 한파가 몰아치리라는 암울한 전망이 드리워지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연합뉴스

 

청년층은 취업에 성공해도, 그렇지 않아도 문제다. 통계청의 '2015년 5월 청년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청년층 임금근로자가 첫 직장에서 일하는 기간은 평균적으로 1년 6개월에 불과하단다. 청년층 임금근로자 3명 중 2명꼴인 63.3%가 첫 일자리를 그만둔 것으로 조사됐으며, 이들의 평균 근속기간은 고작 1년 2개월이었다. 20대 이하 직장인 10명 중 8명이 입사 후 3년 이내에 회사를 떠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사회 초년생인 청년층의 경우 다른 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시직, 계약직 등 비정규직의 비율이 높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일반해고를 가능케 한 노동개혁 지침은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자칫 정규직 등 안정된 일자리를 대거 비정규직 등의 자리로 대신 메워 가뜩이나 OECD 최하위 수준에 불과한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성을 해치고, 결국 자본의 배만 불리는 형태로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게 하기에 충분하다. 정부가 말하는 노동개혁이 노동개악으로 흐르지 않으려면 지금처럼 노사정 대화라는 근본을 망각한 채 노동계를 배제한 일방적인 정책 추진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 모두가 우려하던 대로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고용 안정성을 해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은 그럴 듯한 수사적 표현으로 감쪽 같이 둔갑시킨 노동개악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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