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일본인만도 못한 엄마부대봉사단

새 날 2016. 1. 5. 12:06
반응형

엄마부대봉사단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제 발전과 후손을 위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을 용서해야 된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는 우리 정부와 일본 정부가 24년만에 위안부 협상을 타결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절차상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진 데다 결과적으로는 일본에 유리한 합의로 종결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일며 이를 성토하는 등 사회 일각에서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는 가운데 나온 주장이다.

 

주요 정치적 현안이 있을 때마다 모종의 관계가 점쳐지는 특정 정치 세력의 주장이나 입장을 일관된 방식으로 표현해 온 이들이 다름아닌 앞서 언급한 단체들이다. 때문에 작금의 행동은 진즉부터 예견돼 왔던 터다. 시민단체를 조직하여 자신들이 주장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사를 여러 형태로 표출하는 현상에 대해선 민주 사회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자 외려 적극 권장되는 사안이기도 하다. 물론 재정적 지원 등 그 배후가 어떤 세력이냐에 따라 가치판단은 달라져야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가장 소극적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투표일 테며, 시민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건 그나마 적극적인 방식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헤럴드경제

 

물론 나를 비롯한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에게는 이들의 주장이 영 거북하기만 하다. 아니 솔직히 역겹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범법행위가 아닌 이상, 아울러 개인에게 보장된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이상, 이들의 행위에 대해 무턱대고 잘못됐다며 비난할 수는 없는 처지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지울 수 없는 데다 절대로 잊혀서도 안 되는 과거의 아픈 역사가 정치 쟁점화로 전락하게 된 안타까운 현실을 탓하거나 저들의 천인공노할 행위에 대한 도덕적인 비난을 가하는 건 얼마든 가능한 일이되, 이미 정치적인 쟁점이 된 사안을 두고 자신들의 의사 표현을 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 뭐라 하며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이들의 행동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는 걸까?

 

비단 이번 사안뿐 아니라 우리 뇌리에 가장 깊이 각인된 사례 중 하나를 들춰 보자. 아마도 세월호 참사 당시 벌였던 행동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수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기억이 여전히 새록새록하니 말이다. 이들의 행동이 대중들로 하여금 분노를 야기하게 하거나 기분을 언짢게 했던 건 단순히 자신과 생각이 전혀 다르다는 이유 때문만이 아닌, 분명히 다른 요인이 존재했던 듯싶다. 그렇다면 그게 무얼까?

 

일종의 정서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엄마'라는 용어에서 그 해답이 보인다. 현재 논란의 중심에 놓인 시민단체의 명칭에는 '엄마'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으나 그와는 전혀 어울릴 법하지 않은 행동 기제를 드러내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께 그만 하라며 종용하고 나선 그들은 물론이거니와 세상 모든 이들에게 있어 '엄마'란, 실체 없이 그 이름만으로도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 이를테면 정치나 그보다 더욱 복잡한 사안 따위도 모두 초월할 수 있는 지극히 아름다우며 강인한 존재의 대명사다.

 

 

필시 누군가의 엄마이기도 한 그분들이 배가 침몰하여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역겨운 주장을 하거나, 같은 여성으로서 일본군 위안부라는 씻을 수 없는 과거의 고통을 안은 채 살아가고 있는 할머니들께 이제 그만 하라며 종용하고 나섰다. 얼마나 아이러니하며 우리 정서와 어울릴 법하지 않은 개떡 같은 상황인가. 이 사람들은 도대체 뭘 잘못 먹었길래 심사가 이리도 뒤틀린 채 우리네 보편적인 정서로부터 한없이 벗어나 있는 걸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사실 이분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저 '엄마'라는 이름을 사용한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진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이들은 엄연히 따로 존재한다.

 

세월호 참사는 물론, 일본군 위안부라는 씻을 수 없는 반인륜적 범죄 행각마저 정치 쟁점화로 전락시킨 정부와 정치권의 원죄가 무엇보다 제일 크게 다가온다. 전술한 보수단체들은 정부나 집권 여당의 정책을 따르거나 그저 옹호한 죄밖에 없다. 영혼이 없다는 의미이다. 때문에 누군가로부터의 비호와 물질적 지원을 받든 그렇지 않든,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윗선의 지시에 의해 앵무새처럼 자신들의 입장을 그때 그때 피력할 뿐, 절대로 그 이상일 수 없는 불쌍한 존재가 바로 그들이다. 

 

한편, 이들 보수단체 회원들이 집회를 개최한 4일 비슷한 시각 옆나라 일본에서도 관련 집회가 열렸다. 놀랍게도 일본인들임에도 불구하고 엄마부대봉사단 등이 외쳤던 것과는 전혀 다른 주장이 오갔다. 도쿄 지요다구 총리관저 앞에 모인 일본 시민 100여명은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일본 정부의 요구는 파렴치하다는 구호를 외쳤다. 거듭 언급하지만, 일본을 용서하자는 엄마부대봉사단 등의 회원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다만, 일본 시민들의 행동과 우리 시민단체의 그것이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

 

ⓒ한겨레

 

아울러 이번 집회를 이끈 엄마부대봉사단 대표의 집회 발언 중 "아베께서 사과까지 했으니 우리가 일본을 이제 용서하고 좀 이해하자는 마음으로 함께 나아가자"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내가 의아한 건 우리 지도자를 언급할 때조차 잘 사용하지 않는 극존칭을 어쩌다가 일본 지도자, 그것도 아베에게 사용하게 되었을까 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현상을 우린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일본인들마저 일본 정부를 비난하고 나선 상황에서 우리 시민단체의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행동은, 더 이상 그들을 언급하거나 표현할 가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만듦과 동시에 그 어떠한 수사조차도 모두 사치로 둔갑시키고 마는 매우 찜찜한 상황이다. 이런 분들에게 역지사지를 말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더 말해 봐야 내 입만 아픈 지경 아닌가. 결국 지나친 정치병이 이러한 볼썽사나운 꼴을 만든 게 아니면 과연 무얼까. 그러나 내가 정작 우려하고 있는 건, 이들의 움직임보다 우리 정부가 억지 주장이라며 극구 반박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일본 정부가 줄곧 일관되게 주장해 온 바대로 이번 집회가 결국 소녀상 이전의 신호탄 역할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