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자주 가던 포털 사이트를 열었더니 '노인부부 월소득 200만원 돌파.. 기초연금으로 형편 개선'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메인에 보인다. 특정 포털만이 아니다. 해당 기사는 대부분의 포털 인기 기사 목록에 등극했다. 국민연금연구원의 '기초연금 시행 후 노인의 가계동향' 보고서를 기반으로 작성한 기사다. 결론은 이렇다. 2015년 2분기 기준 노인 단독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97만원이고, 노인 부부가구의 소득은 215만2천원이란다. 그러니까 해당 기사의 제목은 이를 토대로 지어진 셈이다.
하지만 노인 가구의 유형별 분석이 아닌, 65세 이상 전체 노인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2015년 2분기 기준으로 178만3천원에 그친다. 이 기사가 강조하고 싶었던 건 아마도 2014년 7월부터 65세 이상 노인의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월 최대 20만원을 지급하고 있는 기초연금의 극적인(?) 효과 아니었을까 싶다. 실제로 2014년 3분기 174만7천원이었던 소득은 2015년 2분기 178만3천원으로 높아졌다. 결국 이를 좀 더 그럴 듯한 효과로 포장하기 위함이었는지, 전체 평균이 아닌 노인 가구의 유형 중 가장 큰 금액인 노인 부부가구 소득을 제목으로 뽑은 셈이다.
물론 기초연금의 효과가 전혀 없으리라곤 생각지 않는다. 비록 두드러지지는 않더라도 미약하나마 소득 증가 효과가 완전히 없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아울러 어떤 방식으로든 공적이전소득이 늘어 노인들의 삶에 보탬이 되도록 해야 하는 건 지극히 바람직스런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다수의 노인들에게 있어 기사 제목처럼 월소득 평균 200만원이라는 금액이 과연 피부에 와닿을까? 언뜻 이 기사 제목만 보면 나의 노년에 대해 그다지 염려스러워 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같은 사안을 다룬 기사인데, '노인 월소득 100만원도 안된다'라는 제목과 둘 중 어느 기사가 우리 현실에 더욱 가까운 느낌일까?
당연히 후자가 아닐까? 물론 두 기사 제목 모두 전혀 근거 없는 내용은 아니나, 난 같은 사안을 놓고서도 이렇듯 보는 관점에 따라 천양지차의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노인 가구를 유형별로 살펴 보면, 2015년 2분기 기준 노인 단독가구는 38.2%, 노인 부부가구 45.1%, 노인 1인과 비노인 가구원가구 6.8%, 노인 부부와 비노인 가구원가구 9.9%로 분포돼 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노인 부부가구가 분명 맞다. 하지만 절반을 넘지 못하는 데다 노인 단독가구의 비중 또한 만만치 않다. 이런 와중에 소득이 가장 많을 수밖에 없는 부부가구를 기준으로 기사 제목을 작성한 것이다. 이는 마치 대푯값을 평균으로 하느냐 최빈값으로 하느냐, 혹은 중앙값으로 하느냐에 따라 극단에 위치한 값의 영향으로 인해 전혀 다른 결과로 만들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는 느낌이다.
어쨌거나 기초연금 덕분에 이전소득이 조금이라도 늘어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하다. 2013년 3분기에 66만5천원에 불과하던 이전소득이 기초연금 시행 이후인 2014년 3분기 74만5천원, 4분기 75만4천원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특히 노인 단독가구의 이전소득은 62만8천원으로 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64.7%에 달했으며, 노인 부부가구의 이전소득은 96만7천원으로 44.9%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전소득이란 공적이전소득(기초연금 등과 같이 정부로부터 받는 소득)과 사적이전소득(자식의 용돈 등 개인적으로 얻는 소득)으로 나뉘어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국민연금연구원의 또 다른 보고서인 '노인가구의 소득수준과 공적 노후소득보장의 국가 간 비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후소득 중 이전소득의 비중은 평균 48.6%에 불과하다. 조사 대상 국가 중 한국과 대만을 뺀 모든 국가에서 이전소득의 비중이 70% 이상이며, 그 중 네덜란드는 무려 90%를 넘어서는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형편없는 수준이다. 게다가 우리의 경우 이전소득 중 사적이전소득이 무려 19.8%를 차지한다. 참고로 여타 선진국의 사적이전소득은 0.1~0.4%에 그칠 정도로 굉장히 미미한 수준이다. 이러한 경향은 여전히 부모 봉양의 책임 의식이 강한 우리만의 특성을 잘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49.6%)과 자살률(인구 10만명당 55.5명)은 OECD 회원 국가 중 단연 으뜸이다. 아울러 노인가구의 상대 빈곤율 또한 46.9%로, 앞서의 국민연금연구원의 보고서 조사대상 국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 빈곤율은 중위소득 50% 미만에 해당하는 노인가구의 비율을 일컫는다. 공적이전소득의 비중이 낮다 보니 한국인의 노후소득에서 근로사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49.9%에 달하는 실정이다. 오로지 삶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늙어서도 일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우리 노년의 삶이 한없이 고달파지는 이유이다.
ⓒ연합뉴스
얼마 전 담배 구입을 원하는 손주뻘 정도밖에 안 되는 청소년들로부터 500원씩을 받고 이른바 '담배 셔틀'로 용돈 벌이를 한다는 노인 얘기를 접한 적이 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담배 판매 제한으로 이를 쉽사리 구할 수 없는 청소년들과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궁핍한 노인들이 그나마 손쉽게 적은 돈이라도 벌 수 있다는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분명히 범법 행위인 데다 가히 좋은 모습이 아님에도 이러한 상황으로 노인들을 자꾸만 내몰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씁쓸함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하다.
노년의 고달픈 삶의 모습은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추운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거리의 폐지를 주워 하루 하루를 근근히 연명하는 노인들이 거리에 넘쳐난다. 이러한 현실은 외면한 채 극히 미미한 기초연금의 효과를 언급하고자 현실감이 결여된 기사 제목을 이용해 대중들의 상대적인 박탈감을 키우는 건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정부 기관지가 아닌 이상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을 치열하게 부각시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보완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채찍질을 가해야 하는 게 올바른 언론의 모습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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