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담뱃값을 올리기 위해 표면적으로 내세워 왔던 건 흡연율을 떨어뜨려 국민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함이다. 그동안 흡연자들에 대한 압박은 전방위적이며 과감하게 이뤄져 왔다. 물론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며 파급력이 크게 느껴졌던 건 담뱃값의 대폭 인상이었지만, 그 외에 실내 금연 구역의 확대 등도 피부에 까칠하게 와닿는다. 왜냐하면 이로 인한 결과가 흡연과는 전혀 관련없는 비흡연자의 삶의 질에까지 영향이 미치고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어느덧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흡연자들이 온통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 비흡연자들에겐 거리가 흡사 지뢰밭과 같은 느낌이 돼 버렸다. 사방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때문에 이를 피해 가느라 솔직히 아주 곤혹스럽다. 간접흡연의 피해를 줄이고자 시행됐던 실내 금연 조치가 되레 풍선효과를 낳으며 거리를 걷는 선량한 시민들마저 몹시도 괴롭히고 있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여전히 태부족이긴 하나,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역이나 버스 터미널 등엔 흡연자들을 위한 별도의 흡연실이 마련되어 있긴 하다.
ⓒ연합뉴스
그런데 정작 흡연자들이 이러한 실외 흡연실의 이용을 꺼리고 있다 하니, 도대체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가뜩이나 협소한 공간에 공기 정화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흡연자들조차 도저히 담배를 피울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서울역 광장 인근의 흡연실을 이용해 본 모 언론사 기자에 따르면, 이곳에 들어온 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머리카락과 옷이 담배냄새로 가득해졌단다. 선진국의 경우 입지와 환기 조건 등 흡연실 설치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마련되어 있으나 우리의 경우 그렇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럴 만한 사연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정부의 정책 기조는 스스로가 주장하고 있듯 흡연의 권장이 아닌 금연에 방점이 찍혀 있다. 때문에 흡연실 또한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설치해야 하는 사안이란다. 구체적인 흡연실 설치 규정은 흡연을 부추기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합법적인 흡연 공간의 수는 금연구역에 비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실외 금연구역은 10월말 현재 1만3306곳에 이르나, 흡연 공간은 8개 자치구의 16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17개의 구에는 흡연 공간이란 게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결과는 결국 흡연자뿐 아니라 비흡연자에게까지 그 피해를 고스란히 전가시키고 있는 양상이다.
정부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보자. 국민들의 건강을 살뜰히 챙기다 보니 이러한 결과가 빚어졌다는 의미 아닌가. 내겐 담배 연기 때문에 어느덧 거리를 걷는 행위조차 버거운 일이 돼 버렸건만,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시간이 조금 지나면 상황은 점차 나아지려나? 과연 그럴까? 희망을 바라볼 수는 있는 걸까? 그러나 담뱃값 인상에 따른 결과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애초 기대와는 사뭇 다른 현실인 까닭에 기대 난망이 아닐 수 없다.
때마침 정부의 금연 사업과 관련한 통계 결과가 발표됐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금연 치료 지원 사업에 참여했던 흡연자 10명중 7명이 중도에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금연에 성공한 사람은 고작 2%에 불과하다는 소식이다. 건강보험공단의 '금연지원 프로그램 유지 및 중단 현황' 자료에 따르면, 10만9693명(67.7%)이 중도에 포기하였으며 금연에 성공하여 치료를 마친 인원은 3403명에 불과했단다.
이러한 결과가 빚어진 건 치료 비용의 40%를 흡연자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흡연자들은 담뱃값 인상으로 인해 담배도 비싼 가격에 구입하여 피워야 하는 마당에 금연 치료를 위한 비용마저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이중고를 떠안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금연 치료 지원 사업이 지지부진해지자 자가 부담 비율을 올해 10월부터 40%에서 20%로 낮췄다. 담뱃값 인상으로 늘어난 세수에 비해 금연 사업에 대한 지원이 무척 옹색하다는 일각의 비판을 의식한 듯싶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원 비율은 과연 적절한 걸까?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담뱃값 인상에 따른 정부의 담배부담금 수입은 2조9000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불어났다. 그러나 담배부담금의 고유 목적인 건강증진사업비로는 28.4%만 배정해 놓아 정부가 진정 국민의 건강 증진을 꾀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즉, 앞서 언급한 금연 치료 비용에 대해 현재보다 더 부담할 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있노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그 사이 이에 참가했던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금연에 실패한 채 담배를 도로 입으로 가져가기 일쑤다.
지난해 정부가 담배 판매로 거둔 세수는 6조7000억원이었으며, 올해는 벌써 9조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한국납세자연맹이 자체 추산한 자료에 따르면 담배로 인한 세수는 12조6084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치도 있다. 하지만 올해 각종 금연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2475억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내년엔 이와 관련한 예산이 오히려 110억원 더 삭감된 수준이다. 과연 정부의 주장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헤럴드경제
정부는 국민 건강 증진을 부르짖으며 담뱃값을 인상하거나 각종 금연 대책 등을 내놓은 채 떠벌리고 있지만, 그로 인해 되레 흡연자나 비흡연자 모두가 고충을 토로하고 있는 상황인 데다, 담뱃값 인상으로 부쩍 늘어난 세수를 애초 고유 목적인 금연 관련 정책에 제대로 쏟아붓질 않아 실질적인 금연 치료 효과는 거의 미미한 상황이며, 늘어난 세수에 비해 금연사업에 배정된 예산을 되레 줄이고 있으니, 결국 애초의 기대와는 달리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는 셈이다.
이는 흡사 "담배와 폐암 등 질병 사이에 필연적인 관계가 있다거나 흡연자 스스로 흡연 여부를 결정할 수 없을 정도로 의존성이 높아서 국가가 개입해 담배의 제조나 판매 자체를 금지해야만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한 사법부와는 달리 "폐암 하나, 뇌졸중 두 개 주세요" 라며 "담배를 피우는 것은 폐암을 사는 것과 같다"던 정부의 TV속 금연 캠페인 광고의 그 복잡미묘한 느낌처럼 혼란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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