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수 활성화 차원에서 서머타임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6일 한 언론매체의 단독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구체적으로는 이달 중 발표할 내년도 경제 정책 방향의 한 축을 내수 진작을 통한 경제 활성화로 정했고, 그의 일환으로 서머타임제 도입 등을 통한 다양한 소비 진작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는 서머타임제의 도입이 국민의 여가 시간을 늘리고, 더 나아가 소비 진작에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아울러 정부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서머타임제를 도입하지 않은 국가가 아이슬란드와 우리나라밖에 없을 정도로 이 제도가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눈치다.
서머타임제란 낮 시간이 길어지는 봄부터 시계 바늘을 1시간 앞당겼다가 다시 낮 시간이 짧아지는 가을에 원래대로 되돌리는 제도를 일컫는다. 이의 기원은 1784년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치가이자 외교관 혹은 과학자 그리고 저술가이기도 했던 벤자민 프랭클린이 양초를 절약하기 위하여 일광시간의 효율적 사용의 필요성을 제시하면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름에는 태양의 남중고도가 가장 높은 시기라 해가 빨리 뜨고 늦게 지기 때문에, 다른 계절보다 비교적 긴 낮 시간을 활용하기 위한 요량으로 표준시간을 한 시간 앞당긴다는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48-60년과 1987-88년 두 차례 시행된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소식이 전해진 뒤 나타난 대중들의 반응은 온통 떨떠름함 일색이다. 인터넷과 SNS 역시 부정적인 기류가 역력하다. 물론 예측됐던 결과이긴 하다. 과거의 학습효과 덕분이다. 하지만 난 서머타임제의 등장 배경과 도입 취지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입장이다. 제도 자체만을 놓고 볼 때 굳이 안 좋은 방향으로만 바라 봐야 할 사안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애초 지극히 과학적인 발상으로부터 출발한 데다 효율성이라는 긍정적인 신호마저 담겨 있는 탓이다. 가뜩이나 에너지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에겐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무척 유용한 제도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사안이다.
지구촌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축복을 받은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진 채 태양의 공전 궤도를 1년에 한 바퀴씩 도는 까닭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무려 사계절을 만끽할 수 있으니 말이다. 반면, 인류가 태양이라는 존재 덕분에 삶을 누리고 있으나, 그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건 불운에 해당한다. 제아무리 핵융합 기술이 발전하여 인공 태양을 마구 만들어낸다 해도 절대로 태양을 대체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서 낮의 길이가 짧은 겨울철보다 상대적으로 긴 여름철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자고 주장하는 건 결코 부정적으로 바라 볼 사안이 아니다. 유한한 에너지 자원의 활용 차원에서 보자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역시 제도의 운영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아울러 운용의 묘를 어떻게 살리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가 될 수밖에 없다. 원래의 도입 취지대로 잘 활용할 경우 우리의 삶을 더욱 풍족하게 만들 수도 있는 노릇이나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이를테면 과거의 사례처럼 노동자의 노동시간 연장의 도구로 악용된다면, 근래 가뜩이나 팍팍하게 와닿는 시민들의 삶의 질을 더욱 더 나락으로 떨어뜨리게 할 수도 있는 사안인 탓이다. 대중들이 서머타임제 도입 소식을 접하자마자 한결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 건 다름아닌 전자보다 후자의 가능성이 더욱 높으리라 예상한 때문이 아닐까?
가장 최근, 그러니까 88서울올림픽 개최 즈음 도입됐던 해당 제도는 당시 노동자들의 노동시간만 연장시키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군 부대에서는 군인들의 작업 내지 훈련 시간이 대폭 늘어나는 바람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힘들다며 아우성이었다. 반면 애초 기대해 마지 않던 에너지 절약 효과는 극히 미미했다. 때문에 시행 1년만에 해당 제도는 전면 중단되고 만다. 그 시기를 몸소 겪었던 대중들에겐 서머타임 하면 매우 끔찍했던 기억만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대중들의 부정적인 기류는 다름아닌 이로부터 기인한다.
그러나 서머타임제 도입이라는 언론보도 이후 정부의 태도는 돌변하고 만다. 기획재정부가 6일 오전 서머타임제 도입과 관련하여 보도자료를 내고 전혀 검토한 바 없다고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일단 도입하지 않겠다고 나섰으니 그와 관련한 당장의 염려는 거두어들이는 게 가능할지 모르나, 무언가 찜찜함을 완전히 내려놓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서머타임제 도입과 관련한 보도가 있었다는 사실은 실제로 검토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쩌면 2016년 경제정책방향을 결정하기 전 사전 여론 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물밑 움직임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88서울올림픽이 개최됐던 당시로부터 무려 30년 가까이나 흘렀고, 그 사이 우리나라의 경제는 세계 10위권에 이를 만큼 볼륨이 커졌으니, 이제 다시 서머타임제의 도입을 고려해도 될 정도로 사회 경제적 여건이 충분히 무르익은 건 아닐까? 서머타임제가 글로벌 스탠다드가 분명 맞다면 이를 적극 수용해야 하는 게 옳지 않을까? 그동안 경제 상황이 어려울 때마다 이의 재도입이 논의됐음에도 번번이 반대 의견에 부딪히며 불발되고 말았는데 이제는 도입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나 우리나라의 여건상 이는 여전히 시기상조로 판단된다. 정부가 OECD를 언급하며 글로벌 스탠다드라 말하고 있지만, 알다시피 OECD의 각종 통계 결과를 살펴 보면 우리의 경우 부정적인 영역에서만 수위를 차지하고 있고, 정작 긍정적인 영역에서는 바닥을 헤매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문에 글로벌 스탠다드를 도입 이유로 들기엔 무언가 궁색한 측면이 읽힌다. 아울러 내수 진작을 위한 목적으로 꺼내들었다는 대목 또한 마찬가지다. 정부가 서머타임제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근거로는 이로 인해 국민의 여가 시간이 늘어나면 소비 진작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해가 길어진 만큼 앞당겨진 여분의 시간이 고스란히 시민들의 여가 시간으로 활용된다는 생각은 지극히 순진한 발상이다. 아울러 애초 기대했던 대로 혹여 늘어난 시간이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하더라도 작금의 어려운 경제 여건상 이것이 소비 진작으로 이어지리라는 것 또한 지나치게 긍정적인 예측이 아닐 수 없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내놓은 ‘연장근로시간 제한의 고용효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지난해 연간 노동시간은 2285시간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경영자들은 우리 노동자들을 여전히 게으르고 일 안 하는 캐릭터로 생각하고 있는 경향이 크다. 최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이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의욕이 세계 최하위권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이러한 결과의 이면을 살펴보니 입이 떡하니 벌어진다. 당시 조사는 우리나라 경영자들로 그 대상을 국한하여 이뤄졌고, 이를 단순 합산했다는 분석 때문이다. 결국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이 발표한 자료는 우리나라 기업 경영주들의 노동자에 대한 삐딱한 인식만을 고스란히 드러내놓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인식은 기업과 다를까? 한 가지 사례를 살펴 보자. 얼마전 금융개혁 10대 과제를 발표했는데, 그 중 하나가 은행원들의 노동시간에서 점심시간을 제외시켜 은행 마감시간을 연장하겠노라는 방안이다. 셔터를 내린 이후부터 본격 업무를 시작하는 은행원들의 직업적 특수성은 외면한 채 오후 4시면 문을 닫는 은행의 행태가 못내 못마땅했던 탓인지 이를 연장하겠노라는 속셈이다. 하지만 은행원들에게 있어 마감시간 한 시간의 연장은 퇴근시간의 대폭 연장을 의미한다. 이렇듯 정부는 노동자들의 고충에 대해선 안중에도 없다. 개혁이란 어휘가 무색할 지경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서머타임제가 도입된다면 애초 취지에 맞는, 제대로 된 운영이란 게 가능하기나 할까? 혹시 우리 사회는 온갖 부작용 때문에 서머타임제가 중단됐던 20여년 전의 상황으로부터 단 한 발자욱도 나아가지 못한 건 아닐까? 과거나 현재에도 노동자들의 혹독한 노동시간은 큰 변화가 없듯 말이다. 이번엔 비록 해프닝으로 일단락 되는 듯싶으나, 국민과의 소통 없이 무엇이든 밀어붙이기로 일관하고 있는 정부의 최근 행태 때문에라도 왠지 이번 해프닝이 단순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건 비단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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