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여성 vs 남성 혐오 전쟁, 어떻게 봐야 하나

새 날 2015. 12. 3. 12:48
반응형

여성을 혐오하는 표현이 넘쳐나게 된 건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이는 n포세대라 불릴 만큼 갈수록 치열해지는 사회의 경쟁 구도 속에서 여성들마저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해 들어오자 아마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던 일부 남성들이 스스로의 처지를 한탄하거나 자조하는 방식 대신 비교적 만만한 대상이라 여겨 온 여성을 비하하는 데서 비롯된 경향이 크다.

 

하지만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에 대해 특정 대상을 혐오하며 대리 만족을 얻어 온 부류가 극히 일부에 그쳤다면, 그나마 이러한 목소리도 있을 수 있겠거니 하며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안이었겠지만, 정작 문제는 처음엔 소수에 불과했된 여혐 표현이 어느덧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호응을 얻더니 점차 일반화의 길로 접어들며 일상 속으로까지 깊숙이 파고 들어오고 있다는 데 있다.

 

ⓒYTN

 

이른바 남초(남성이 절대 다수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여성 혐오 표현은 극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김치녀니 된장녀니 하는 표현은 이미 과거의 것이 돼 버렸고 어느덧 벌레를 의미하는 '~충' 시리즈가 대세로 자리잡은 지 오래이다. 이러한 표현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상은 비단 남성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온라인의 특성 때문만은 아니다. 온라인에서의 표현이 오프라인으로까지 연장되며 사회 일각에서 이를 부추기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는 탓이다.

 

어느덧 방송 등 대중매체를 통한 전파도 무시 못할 수준에 이르렀다. 남성MC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일부 케이블채널에서는 여혐 소재가 여과없이 자연스럽게 전파를 타는 등 이로 인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연예계에 힙합 열풍이 불더니, 때아닌 여성 비하 랩 가사가 등장하는 등 여성 비하 표현이 버젓이 방송을 통해 노출되는 경우도 흔하다. 심지어 키와 몸무게, 가슴 크기 등을 소재 삼아 여성 출연자의 외모를 희화화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빈도도 늘고 있다.

 

알다시피 TV 등 대중매체의 파급력은 엄청나다. 처음엔 온라인 구석진 곳, 한 두명의 신세 타령으로부터 비롯됐을 법한 여성 비하 표현이, 남초를 표방하는 커뮤니티 등지에서 그저 재미있다는 이유로 자주 등장하고 네티즌들 입에 오르내리더니, 새로운 유행이나 풍조에 익숙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 어느덧 대중매체를 통해서도 자연스럽게 표출되어 마치 한국 여성 전체의 성향이 그러한 것처럼 일반화시키며 여성의 이미지를 오염시켜 가고 있다.

 

그런데 의외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부터 온라인에서는 한국 남성을 혐오하는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남성에 의해 여성을 상대로 벌어진 성폭력이나 살해 사건 등 강력범죄와 관련한 언론 기사 댓글에는 어김없이 '한남충'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한남충'이란 한국 남성은 벌레와 동격이라는 의미의 여성들이 만들어낸 신조어다. 특정 대상을 비하하고 혐오하는 글이나 댓글은 그동안 주로 남성 중심의 문화로 받아들여져 온 경향이 강했으나 어느덧 남성들의 지나친 여혐 행위에 신물이 난 여성들이 조직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온 셈이다.



일부 여초(여성이 절대 다수인)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남성들에 대한 비난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남혐에 대한 특정 표현을 매우 일관된 방식으로, 아울러 조직적으로 표출하는 행위 때문에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여혐 대 남혐 댓글 전쟁이라는 표현까지 등장시키고 있는 모양새다. 남성과 여성이 상대방을 벌레라고 호칭하며 서로가 서로를 깎아내리는 데 여념이 없으며, 양측 모두가 가능한 화력을 총동원하고 있는 총력전 양상이다. 서로에 대한 배려는 눈을 씻고 찾으려 해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고, 어떡하든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앞서 언급했던 일부 남성들로부터 시작된 여혐이 어느덧 대중 매체를 타고 일상 속으로 파고들며 점차 일반화 단계에까지 접어들게 되자 더 이상 이를 참기 어려웠던 여성들이 남성들과 똑같은 방식의 조직적으로 대응에 나선, 일종의 반작용 현상이다. 즉 누군가 노를 저었기에 배가 앞으로 나아가게 됐다는 의미이다. 결국 원인은 남성들과 우리 사회가 공통으로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미러링 방식을 통해 남성들이 행해 왔던 표현을 그대로 따라하는 행태가 마치 아직 유아에 불과한 아이의 치기어린 행동처럼 보이기에 남성들과 똑같은 혐오적 표현이 결코 바람직스러운 행태가 아님은 분명하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뒤따르듯 단순히 표면적 현상만을 놓고 볼 때 일부 한국 남성들은 이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는 느낌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조금 더 깊이 바라 볼 경우, 여혐 남혐 현상 역시 현재 청년세대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잘 녹여낸 표현인 '헬조선'처럼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의 또 다른 발현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여성과 남성이 서로를 향해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등 날 선 공격을 퍼붓는 행위는 엄연히 범죄에 해당한다. 일종의 인격 살해와 같은 행위인 까닭이다. 

 

단순히 여혐 현상만 드러나고 있을 당시, 지금처럼 대중매체까지 나서서 이를 부추길 만큼 일반화로 치닫지 않고 진즉에 이에 대한 문제점을 공론화하여 해당 현상들에 대한 적절한 규제 내지 자발적인 노력이 이뤄졌다면, 작금의 남혐 현상으로까지 논란이 확산되지는 않았으리라 짐작되는 상황이다. 조금은 수월하게 해결할 수도 있었을 법한 문제를 우리 사회가 방치하고 되레 부추긴 결과, 이제는 남혐 현상으로까지 발전하여 어느덧 여성과 남성이 서로를 적으로 삼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덕분에 인격을 훼손하거나 살해하는 행위들에 대한 해법이 조금 더 복잡해지고 어려워진 것만큼은 분명하다.

 

 

여혐이 됐든 남혐이 됐든, 이러한 표현에 관용을 베풀어선 절대로 안 된다. 가뜩이나 여러 종류의 갈등으로 사회가 이쪽 저쪽 갈래로 갈라진 상황에서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하는 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혐오 표현에 대한 규제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규제란 되도록 하지 않는 게 최선이고, 만약 어쩔 수 없다면 최소한의 범주에서 이뤄져야 한다. 결국 우리에게는 결자해지와 자중이라는 혜안이 필요하다.

 

애초 인류가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탄생했기에 여성이 남성을 갈구하고 남성이 여성을 갈구하며 서로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는 건, 이렇듯 태생적이며 필연적인 결핍을 메우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은 아닐까? 서로가 흠집을 내 봐야 양쪽 모두 피해자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면 가뜩이나 완벽하지 못한, 어쩔 수 없이 결핍이란 상처를 타고난 서로가 서로에게 갈등이라는 소금마저 뿌리는 행위는 더없이 미련한 짓 아닐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