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점심시간 핑계로 은행 영업 연장하는 게 금융개혁?

새 날 2015. 11. 30.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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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인터넷은행 사업자가 선정됐다. 29일 KT 컨소시엄의 '케이뱅크'와 카카오의 '한국 카카오 은행'이 국내 첫 인터넷은행 사업자로 예비인가를 받은 것이다. 은행 설립 인가로는 지난 1992년 평화은행 이후 23년 만의 일이란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본격적인 영업이 시작될 전망이다.

 

그런데 이는 당초 금융위원회가 밝힌 인터넷전문은행 심사 일정보다 한 달 가량 단축된 결과다. 더구나 휴일 전격 발표라는 형태로 이뤄졌다. 이례적인 사안이라 할 만하다. 이에 대해 금융위 측은 주가 등 시장에 미칠 영향이 커 일정을 앞당긴 것이라는 해명을 내놓았지만, 언론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등에서 더딘 금융 개혁을 질타하자 성과로 내세우기에 더없이 근사한 인터넷은행을 서둘러 발표했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때마침 정부와 새누리당의 금융개혁 10대 과제 발표가 있었기에 이러한 해석은 충분히 실현 가능해 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연합뉴스

 

지난 27일 정부와 새누리당은 인터넷 전문은행 도입 등을 담은 금융 개혁 10대 과제를 발표했다. 이의 핵심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의 수명 연장으로 꼽힌다. 기촉법은 법정관리를 앞둔 부실기업을 채권단이 추가지원과 구조조정으로 회생시키도록 한 일명 워크아웃법이다. 국회 정무위는 기촉법의 시한을 2018년 6월까지 2년6개월 연장하는 개정안에 합의했다. 이밖에 보이스피싱이나 불법사금융 근절 대책 등이 해당 과제에 포함돼 있다. 하지만 정작 나의 관심을 끌었던 개혁 과제는 다름아닌 은행과 금융기관, 금융공기업의 근무시간에서 점심시간을 제외해 그만큼 영업시간 연장을 추진한다는 방안이다.

문득 얼마 전 최경환 부총리가 했던 발언이 스친다. 은행 마감시간과 관련한 언급이었다. 그는 지난달 "지구상에 오후 4시면 문을 닫는 은행이 어디 있느냐, 업무방식을 바꿔 시대에 부합하는 서비스를 해야 한다"고 질타한 바 있다. 당시 그의 발언을 두고 무수한 뒷말이 오고 간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렇듯 금융 개혁 10대 과제로 금융 노동자들의 근무시간에 대한 제동을 걸고 나온 걸 보아 하니 결과적으로는 그의 발언이 결코 공허한 소리가 아니었음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자칭 타칭 경제 전문가로 불리는 최경환 부총리가, 은행이 4시에 문을 닫음으로써 모든 업무가 종결되는 게 아니라는 금융기관의 생리를 결코 모를 리 없다. 점포 문을 열고 닫는 그 순간까지는 전적으로 고객들과의 대면 업무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점포 문을 닫고 나서야 그날 입출금된 시재를 맞추거나 정산하는 등 은행원들 본연의 업무가 시작된다. 점포를 다녀간 고객들이 얼마나 많고 적으냐에 따라, 아울러 각 파트별로 분장된 직원들의 손발이 얼마나 척척 맞아 떨어지느냐에 따라 업무 종료 시간은 그때 그때 달라진다. 때문에 4시에 문을 닫는다고 하여 그들의 퇴근 시간이 여타 업종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에 비해 결코 빠르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월말이나 연말, 그리고 명절 같은 시기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에 그날 내로 퇴근을 바란다는 건 그야말로 언감생심일 테다.

 

그나마 다른 직종보다 급여를 두둑이 받으니 그것으로 위안이 되지 않겠느냐고? 과연 그럴까? 은행원들의 노동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바로 시재, 즉 돈을 다루는 직업인 탓이다. 수신 담당 직원이 만에 하나 그날의 시재를 맞추지 못할 경우, 그로 인한 금전적 손실은 고스란히 본인의 몫이 되며, 그렇다고 하여 대출 등 여신 업무가 수신에 비해 수월하냐 하면 이 또한 뒷감당은 담당자 본인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기에 항상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입장이다. 대출 담당자는 업무를 그만두더라도 이후 수년동안 두 발을 뻗은 채 맘 편히 잠을 잘 수 없다는 우스갯소리마저 회자되고 있다. 자칫 대출 사고가 터지기라도 하는 날엔 천문학적인 액수의 금전적 손실조차 업무 담당자 본인 및 책임자가 모두 이를 감당해야 하는 탓이다. 이를 회사에 알렸다가는 징계 등 인사상 불이익이 따르는 탓에 웬만한 금융사고는 직원들 스스로 해결하는 게 일종의 업계 관행이다.



한편 회사는 직원들을 마케팅 요원으로서의 활용뿐 아니라 주요 고객으로 삼고 있기도 하다. 회사가 개발한 상품을 최대한 많이 판매해야 수익을 남길 수 있을 테니, 직원들을 그냥 둘 리 만무하다. 결국 소속 직원들에게 금융상품의 일정량을 할당하게 되는데, 처음엔 가족과 일가 친척 심지어 친구들에게까지 부탁하여 이를 소화하는 게 보편적이나,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민폐가 되는 까닭에 결국 스스로가 해결하게 된다. 업계에서는 이를 이른바 자살골이라 부른다.

 

때문에 이 정도 수준의 노동 강도와 현금을 다루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다른 직종보다 급여를 조금 더 많이 받는 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금융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금융기관에 종사하는 이들의 점심시간을 빌미로 근무 시간의 연장을 꿈꾸고 있는 게 아닌가. 금융기관 직원들의 고충을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는 4시에 마감하는 표피적인 결과만을 언급한 채 이를 압박하고 있는 모양새다.

 

점심시간을 근무시간에서 제외시키겠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은행 점포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있어 점심시간은 여타 직종의 노동자들처럼 온전하게 사용 가능한 시간일까? 물론 어림없다. 실시간으로 고객과 대면해야 하는 처지이기에 교대 근무가 일상이며, 자신이 늦을 경우 대신 일 처리를 담당하는 직원이 고생하게 될 게 뻔한 노릇이기에 대부분이 소화조차 제대로 시키지 못한 채 서둘러 점포로 돌아오기 일쑤다. 이러한 고충은 외면한 채 오로지 마감시간만을 언급하고 있는 정부와 여당은 그래서 못마땅하기 짝이 없다.

 

당장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이에 대해 반발하고 나선 상황이다. 이들은 28일 성명을 통해 “당정이 발표한 금융개혁 과제는 그간 금융산업을 망친 관치금융은 제쳐놓고 기존 정책 재탕과 짜깁기에 불과하다. 금산분리 완화, 영업시간 조정, 성과연봉제 확산 등 금융 노동개악을 금융개혁으로 호도하는 악의적 공세를 계속한다면 15만 금융노동자의 총의를 모아 총력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긴 정부와 새누리당의 이러한 발상이 결코 우연은 아닌 듯싶다. 최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이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의욕이 세계 최하위권인데, 그게 바로 노동자들의 헝그리 정신이 부족한 데서 비롯됐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이의 실상은 우리나라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해서 그걸 단순 합산한 결과이고, 이는 결국 기업을 경영 하는 사람들이 한국의 노동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떠한가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에 불과할 뿐이다. 즉 정부나 집권 여당 그리고 기업 모두는 한국의 노동자들을 그저 자신들의 요구에 맞춰 충실하게 일하고 따라야 하는 부속품 정도로만 여기고 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의미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그러나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내놓은 ‘연장근로시간 제한의 고용효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지난해 연간 노동시간은 2285시간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업계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라고 하여 OECD 최고 수준에 해당하는 살인적인 근로시간으로부터 예외일 수는 없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새누리당 그리고 기업들은 심지어 은행원들의 점심시간 같지 않은 점심시간마저 근무시간에서 제외시켜 영업시간을 연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실 속에서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외면한 채 오로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을 강조하며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정작 중요하면서도 시급히 바꿔야 하는 건 이런 게 아니지 않았던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작금의 방안들이 개악이라 불리며 힐난을 당하고 있는 건, 다름아닌 이렇듯 애시당초 본질을 벗어난 근본적인 지점으로부터 비롯된 연유 탓이 큰 데다, 사회적 합의나 공감대 형성 따위의 절차 없이 오롯이 경제부총리의 단 한 마디 질타에 의해 빚어지고 있는, 결코 웃을 수 없는 현실 때문이 아닐까? 아울러 개혁인지 개악인지 당최 종잡을 수 없는 노릇이지만, 어쨌거나 이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과민한 반응과 조급증이 낳은 산물은 아닐는지.. 작금의 금융개혁을 꾀하는 주체들이 반드시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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