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김영삼 신드롬, 왜 다시 김영삼인가

새 날 2015. 11. 29.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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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사는 사람이 있다더니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딱 그짝이 아닐까 싶다. 살아 생전엔 나라를 망친 대통령이라며 국민들로부터 심한 꾸중을 듣거나 구박을 받더니, 신기하게도 서거 이후 되레 그의 인기가 치솟고 있으니 말이다. 미디어 매체 등 그 어디를 둘러 봐도 온통 YS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 일색이다. 그가 대통령으로 재임 중이던 시절 사회 첫발을 뗀 나로선 그의 공과를 너무도 잘 알기에 이러한 현상은 그야말로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조금 과장된 표현을 빌리자면, 일종의 신드롬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해당 현상은 객관적인 수치로도 입증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24-26일 전국 성인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전화 인터뷰 설문을 한 결과 51%가 YS에 대해 “호감이 간다”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3월 같은 조사에서 고작 19%에 그쳤던 결과를 감안한다면 그야말로 괄목상대라 할 만하다. 반면, 그에 대해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답변은 지난 3월 66%에 달했던 데 비해 이번 조사에서는 34%로 크게 줄었다.

 

ⓒ스포츠경향

 

이러한 변화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 그와 동시에 그의 대통령 재임 중 냉탕과 온탕이라는 극과 극을 오갔던 지지율 변화를 새삼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고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당시 70%라는 높은 지지율로 임기를 시작했고, 이후 '하나회 청산' 등 일련의 과감한 개혁조치로, 93년 11월에는 임기 중 최고치였던 87.3%의 지지율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한다. 임기 첫 해 내내 지지율이 80%대를 상회할 만큼 당시 그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임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지지율은 하락세로 반전되었고, 급기야 임기말에 가선 14%까지 떨어지는 극악의 상황으로 내몰린다.

 

흡사 롤러코스터와 같았던 그의 지지율 변화 추이는 곧 대통령 재임 중 그가 남긴 극명했던 공과 과를 의미하기도 한다. 아마도 과거는 물론이거니와 앞으로도 그처럼 공과 과가 뚜렷한 지도자를 찾기란 녹록지 않은 일이 될 듯싶다. 그의 공은 고공행진하던 지지율이 말해 주듯 대부분 임기 초반에 몰려 있고, 반면 과는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그 밀도가 점점 높아지더니 외환 위기 사태가 빚어지면서 절정에 달하게 된다. 다른 과오를 다 떠나 외환 위기 사태 하나만으로도 YS에 대해 결코 좋은 기억을 간직할 수 없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정도로 이는 우리 사회에 커다란 생채기를 낸 희대의 사건이다.

 

나 역시 미증유의 위기 상황이던 IMF 사태를 겪으며 김영삼 그 이름 석자만으로도 이를 부득부득 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실은 YS가 대통령이 되기 훨씬 이전부터 그에게서는 희망 따위를 도저히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3당 합당이라는 야합을 통해 우리 정치를 적어도 십수년 정도는 후퇴시킨 데다, 심지어 희화화하기까지 한 까닭이다. 이는 오직 대통령이 되겠노라는 권력욕에서 비롯된 몹쓸 결과물이자 그를 비열한 정치인으로 낙인 찍히게 만든 원죄이기도 하다. 



그런데 참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중들의 기억 속엔 YS 하면 떠오르는 단어 1순위가 IMF 위기가 아닌, ‘민주주의’라고 하니 정말로 아이러니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김영삼 그가 재조명을 받는 현상 그 자체만으로도 나로선 의외로 다가오는데, 대중들이 그로부터 IMF 등 과거의 과오를 지운 채 민주주의라는 공부터 떠올린다는 건 더더욱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노릇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왜 벌어지고 있는 걸까? 

 

현실의 우리 모습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어느덧 과거 20세기 철 지난 시대에나 횡행해 오던 권위주의 시대로 퇴행하고 있는 모양새다. 안타깝게도 이번 정권의 통치 행위로부터는 유연함이라고는 일절 찾아볼 수가 없다. 국민대통합을 외치며 출범했건만 통합은커녕 분열만을 일삼고 있는 데다, 국민과의 소통은 그저 말뿐, 뭐든 일방통행식이다. 제아무리 과반의 대중들이 이러한 성향의 권력 집단임을 사전에 충분히 알고 있었고, 또한 일부는 과거의 아스라한 향수를 떠올리거나 누군가를 긍휼히 여기며 기꺼이 한 표 행사를 했을지는 몰라도, 현 정권의 지나친 폭주는 어느덧 절대 지지층인 그들마저 피로감에 빠져들게 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고 하여 야권이 현 집권세력의 대안 역할을 하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가 못한 게 현실이다. 이토록 지리멸렬한 경우도 드물 만큼 대중들로부터 철저히 외면 당하는 신세가 됐다. 물론 자업자득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러니까 적어도 YS가 야당에 몸담고 있던 시절까지만 해도, 집권세력이 민의를 저버린 채 폭주할 경우 이에 대해 제동을 걸고 일종의 경고 역할을 주도했던 당사자는 당연히 야당의 몫이었으나, 현재의 야권 세력은 집안 싸움과 자신들의 이권에만 골몰한 채 전투력을 상실한 지 오래인 탓이다. YS처럼 돌직구 하나 제대로 날릴 줄 아는 인물이 없다.

 

ⓒ뉴시스

 

YS 그만의 과감한 결단과 돌직구 같았던 독설은, 그가 떠난 빈 자리를 더욱 허전하게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하고도 남는다. 직설적인 표현이라 거북하거나 황당하게 와닿는 경우도 더러 있긴 했지만, 아주 가끔은 정적을 향해 시원스레 퍼붓는 발언이 십년 묵은 체증을 싹 내려가게 하는, 요즘 표현으로 빗대자면 사이다와 같은 느낌이었던 터라 아쉽지 않을 수가 없다. 금융실명제 단행과 하나회 청산 그리고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와 같은 시원시원한 결단은, YS가 아닌 다른 지도자라면 도저히 흉내낼 수조차 없는 그야말로 독보적인 결과물이 아니었는가 싶다. 

 

어떻게 쟁취한 민주화인데, 야금야금 퇴행의 길로 접어드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바라보며 대중들은 자신들의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그리려 했던 게 다름아닌 민주주의의 후퇴 아니었을까 싶다. YS가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정치를 희화화하긴 했지만, 어쨌든 그 이전까지만 해도 고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쌍끌이 민주 투사로서의 명성을 날린 인물로 기억하고 있던 대중들은, 비록 김영삼 대통령이 IMF 위기로 나라 전체를 부도 직전까지 몰고간 사실을 절대로 잊을 수는 없는 노릇이겠으나, 작금의 쓰라린 현실 속에서, 더구나 야권이 워낙 지리멸렬하다 보니, 오히려 IMF 따위의 결정적인 과오보다는 민주 투사로서의 YS를 떠올리며 이젠 역사 속으로 사라진 그의 존재를 아쉬워하거나 그리워하는 현상이 다름아닌 '김영삼 신드롬'의 실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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