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C형 간염 집단 감염사태, 무엇을 남겼나

새 날 2015. 11. 27.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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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형 간염이 집단 발병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던져준 모 의원 사태는 우리 사회에 여러모로 숙제를 남겼다. C형 간염 감염자가 67명으로 급증한 데엔 정황상 주사기 재사용이나 수액 오염 등이 의심됐던 터다. 실제로 이번 사건에 대해 조사에 나선 보건당국에 따르면 사고로 인해 뇌병변장애 3급과 언어장애 4급 등 중복장애 2급 판정을 받은 해당 의원의 원장이 지난 2012년부터 주사기를 재사용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다. 뇌 손상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지고 거동이 불편한 원장을 대신해 부인이 일부 의료행위를 한 정황도 파악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준다. 원장의 부인이 간호사들에게 채혈을 지시하는 등 무면허 의료행위를 해왔다는 것이다. 보건당국은 이에 따라 해당 의원을 업무정지 처분하고, 원장에 대해서는 서울시에 자격정지를 의뢰하는 한편, 원장의 부인에 대해선 의료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한 상태다.

 

ⓒ연합뉴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이번 사태가 이러한 조치만으로 해결되는 단순한 상황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후폭풍이 우려된다. 그동안 해당 의원이 벌여온 의료 행태를 감안할 때 주사기 재사용으로 인해 감염될 수 있는 질병은 C형 간염뿐 아니라, 이를테면 에이즈나 말라리아, 매독 등 온갖 종류의 감염병이 그에 해당될 수 있는 까닭에 그동안 이 의원을 이용해온 환자들에게 이러한 감염병이 무차별적으로 확산됐을 가능성마저 점처지고 있는 탓이다. 

 

해당 의원을 이용한 일가족 3명이 동시에 C형 간염에 감염된 것으로 알려지는 등 이번 사태로 인한 파장은 점차 확산돼가고 있는 모양새다. 보건당국 역시 이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해당 의원을 거친 환자 등 2,268명을 대상으로 C형 간염 외 헌혈시 혈액안전을 위해 실시하는 선별검사항목 등 다른 질병의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로 했단다. 해당 결과에 따라 자칫 더욱 커다란 사태로 비화될 조짐마저 읽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이 초래돼야만 했을까? 우선 원장의 진술대로라면 그가 사고로 뇌 손상을 입어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에서 비상식적인 의료행위가 이뤄져 왔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기에, 의사 면허 취득 후 진료 적절성 평가나 면허 갱신 제도가 선진국에 비해 크게 미흡한 우리의 현실을 꼬집게 된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의사가 정상적인 신체와 정신 상태로 환자를 볼 수 있는지를 2-3년마다 점검하고 의사면허를 재평가하는 제도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의료법을 통해 정신질환자 등은 의료인이 될 수 없다는 조항을 두고 있는 데다, 보건복지부 위탁을 받아 대한의사협회나 한의사협회 그리고 간호협회가 운영하는 보수 교육을 3년 단위로 받도록 의무화돼 있긴 하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게 보편적인 평가다. 구체적으로는 3년간 단 24시간의 교육을 이수하면 통과되기에 전문성이 요구되는 의료인에게 있어 앞서 원장의 사례처럼 치명적인 부분을 제대로 걸러내는 기능이 극히 미흡하단다. 이를 강화시켜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사고가 벌어진 의원에서 과거에 근무했던 간호조무사에 따르면 원장이 사고를 당해 장애를 입기 전인 2012년 이전에도 주사기를 재사용한 적이 있다고 밝힘으로써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의사면허 재평가보다 오히려 의료인으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직업적 윤리 의식을 망각한 채 의료행위를 해온,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끔찍한 현실에 집중된다.

 

모든 직업에는 공통 행동 규범과 각 직업군에서 각각 지켜야 할 세분화된 행동 규범이 존재한다. 의료인들은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이기에 다른 직종에 비해 더욱 엄격한 봉사정신과 책임 그리고 전문의식이 요구된다. 직업 윤리 의식이 희박할 때 어떠한 일들이 벌어졌는지 우린 흔히 봐왔다. 이를테면 최근 일본의 한 병원에서는 근무자들이 모두 잠을 자는 바람에 중환자가 사망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새벽에 인공호흡기 이상으로 경보음이 계속 울렸음에도 불구하고 당직 간호사가 계속 잠을 자는 바람에 병원에 입원 중이던 남성 환자가 사망하고 만 것이다. 당시 사망한 환자가 있던 병동에는 당직 간호사를 비롯해 3명이나 근무를 하고 있었지만 모두 잠을 자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으며, 더욱 어이없는 건 이 병원에서는 10년전부터 당직근무자 전원이 수면을 취해왔다는 사실이다.

 

ⓒ서울신문

 

얼마전 우리나라의 한 유명 성형외과 수술실의 수술대 위에 환자가 있는 상태에서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등 의료인들이 음식물을 섭취하거나 보형물로 장난을 치는 모습이 SNS에 올라와 비난을 자초한 바 있다. 수술실에서 수술복을 입은 의료진들이 V자를 그리며 서로 팔짱을 낀 채 찍은 사진을 올려 욕을 먹는 경우도 있었다. 수술실에서의 이러한 행위는 일종의 일탈로 간주되며, 절대로 있어선 안 될 행위들이다. 전형적인 직업 윤리 의식을 망각한 행위로 받아들여지는 탓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들에게 있어 다른 직업인들보다 더욱 엄격한 윤리적 잣대가 들이대어지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의료인들 스스로도 히포크라테스 선서나 나이팅게일 선서를 통해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의무를 다할 것이라는 다짐을 하지 않았던가.

 

병원장 등에 대한 고발로 마무리지어진 이번 C형 간염 집단 감염 사태가 앞으로 어떠한 파장을 낳게 될지는 예측 불허의 상태다. 어쨌거나 이번 사태로, 우리에게는 비단 의료인들뿐 아니라 자신의 직종에 몸담고 있는 모든 직업인들의 직업 윤리에 대한 중요성을 새삼 일깨우고 있으며, 아울러 의료인에 대한 재평가 제도의 보완이라는 시급한 숙제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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