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진정한 애국심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새 날 2015. 11. 16.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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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이 빼빼로데이라는 건 기막히게 잘 기억하면서도 이틀 앞이었던 9일이 소방의 날이었다는 사실을 우린 잘 모른다. 아니 혹여 알고 있더라도 사실 그뿐이다. 그보다 더욱 가슴 아픈 건 소방관이라는 직업인이 외국에서는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지만, 우리나라에선 극한 직업인으로서 음지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 채 무척이나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소식은 또 있다. 사고현장에서 부상을 당한 경험이 있는 119 소방대원 8명 중 7명이 자비로 치료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고려대에 의뢰해 화재진압, 구조, 구급, 119종합상황실 업무를 맡고 있는 전국 소방직 공무원 8525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1일 이상의 요양이나 치료가 필요한 부상을 당한 경험이 있는 소방공무원 1348명 중 173명(12.8%)만 공무상 요양을 신청해 승인을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부상자 8명 중 1명만 요양 승인을 받은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자비로 치료했다는 의미가 된다.

 

JTBC 방송화면 캡쳐

 

부상 경험이 있는 소방공무원의 83.3%는 부상을 당해도 행정평가상 불이익이나 복잡한 신고절차 등의 이유로 공무상 요양을 신청하지 못한다고 하니 앞선 결과는 결코 과장된 게 아니다. 정부에 보고되는 공상자 숫자를 인위적으로 줄이려는 관행 때문에 소방관들이 자비 치료라는 굴레와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데다, 공상 신청 관련 매뉴얼의 부재와 담당 소방직 직원조차 없는 현행 시스템이 이의 악순환을 지속시킨다는 전문가의 지적은 뼈아프다. 목숨을 걸고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에게 소방병원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현실과 이들 대부분이 자비 치료를 받는다는 결과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개탄스러울 뿐이다.

 

때마침 부상을 당한 한 군인의 치료비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6월 비무장지대 내 지뢰폭발 사고로 부상을 당한 한 군인의 치료비를 국방부가 전액 부담하겠다는 내용이 실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에 따르면 지금까지 들어간 치료비 1950만원 가운데 1100만원을 장병들의 자율모금으로 마련한 것이며, 국방부에 의하면 이는 장병들 개인 희망에 의한 형식이라 전혀 문제의 소지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해당 모금은 21사단 전 장병의 기본급에서 0.4%를 징수하여 조성한 결과이기에 사실상 강제징수에 해당한다는 게 심 의원의 주장이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을 지겠다고 한 약속은 정작 다른 장병들의 타율에 의한 모금 형태로 변질되었고, 생색은 국방부가 내고 있는 셈이다.



소방공무원이나 군인은 눈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낮거나 궂은 곳 그리고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도맡아 하는, 오롯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직업인이다. 이들이 공무 중 불의의 사고로 다친 결과는 결국 국가와 국민을 위한 희생에 다름아니다. 때문에 부상에 따른 치료와 그로 인한 후유증 그리고 생계까지 모든 책임을 국가가 떠안아야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노릇일 테다. 공무 중 부상을 당한 것도 억울한 입장일 텐데, 이런 상황에서 치료비를 자비로 부담케 하거나 생색은 국가가 내면서 모금 등의 형태를 통해 강제적으로 다른 동료들로부터 치료비를 갹출하는 방식은 너무도 부당하게 와닿는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이 스친다. 얼마전 정부는 장병들의 자긍심을 고양하고 국가 수호의 대표 선수로 애국심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한다며 모든 군인의 군복 오른쪽 어깨 부분에 태극기를 부착토록 의무화한 바 있다. 뿐만 아니다. 경찰과 소방 공무원 제복에도 태극기를 부착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제복에 태극기를 달면 자긍심과 애국심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번 정부 들어 그 어느 때보다 유독 애국심을 강조하거나 이의 고취를 위해 애를 쓰고 있는 흔적이 역력하다.

 

ⓒ동아일보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애국심이란 게 국가가 강제로 고취시킨다고 하여 만들어지거나 머릿속에 심어지는 그러한 성질의 것은 결코 아닐 테다. 공무 중 부상을 당했는데 정작 국가에서는 치료조차 책임져 주지 않는 상황에서 제복에 태극기 하나 부착한다고 하여 애국심이 절로 우러나올까?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일 테다. 소방공무원이나 군인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공무를 수행하는 와중에 부상 등의 위협 때문에, 아울러 최악의 경우 부상을 당한 경우라 해도, 적어도 치료비 때문에 또 다른 고통을 겪는 일 따위는 없어야 하지 않을까?

 

이번 정부는 보여주기식 행정의 달인이 아니랄까 봐 그저 눈에 확 띄는 실적 따위에만 관심과 자원을 집중시키는 듯싶다. 제복에 태극기 부착하는 일만 해도 그렇다. 얼마나 그럴 듯해 보이는가. 그러나 태극기 부착과 같이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보다 소방공무원이나 군인의 부상 사례에서 보듯 정부의 생색과는 전혀 거리가 먼 탓에 눈에 띄는 영역은 아니지만, 국가와 국민을 위해 진짜로 애를 쓰고 있는 이들에게 가장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닿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나 시스템상의 미흡한 점을 개선하여 혜택이 돌아가게끔 해야 함이 옳지 않겠는가? 가짜 애국심이 아닌, 진짜 애국심을 키우는 일이란 이렇듯 단순히 제복에 태극기 하나를 덧대는 형식적인 방식이 아니라 국민들 스스로가 몸소 느끼며 우러나올 수 있도록, 자연스런 형태가 되어야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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