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테러 이후 우려하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무슬림을 대상으로 한 폭력과 반이슬람 집회가 잇따르는 등 이슬람을 향한 증오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모양새다. 캐나다와 미국 등지에선 이슬람 여성이 일방적으로 구타를 당하거나 이슬람 사원에 방화를 하고 인분을 투척하는 등 증오범죄로 보이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프랑스와 인접한 유럽 국가들은 시리아 난민에 대한 시각이 포용에서 냉대로 급변하는 분위기다. 미국에서도 반난민 정서가 확산일로로 치닫고 있다. 난민을 받지 않겠다는 주가 17일 현재 31개 주로 늘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테러를 자행한 용의자 중 일부가 유럽으로 온 시리아 난민으로 가장해 침투했다는 보도가 잇따르면서 이와 같은 상황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는 형국이다.
ⓒ연합뉴스
급기야 극단주의자뿐 아니라 무슬림 전체를 싸잡아 위험 대상으로 지목한 지도자마저 등장했다. 슬로바키아 총리가 프랑스 파리 테러 이후 자국 내에 있는 모든 무슬림들을 감시하고 있다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무슬림을 향한 세계인들의 시선이 어느 정도의 수위에 이르렀는지 짐작케 하는 사례들이다.
한편,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 이래 그들에 대한 응징은 사흘째 계속됐다. 전 세계로부터 이슬람을 향한 혐오와 분노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고 IS 궤멸을 위한 지상군 투입 주장마저 불거지고 있는 양상, 하지만 이는 IS가 가장 바라는 결과물이자 그들이 쳐놓은 덫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IS의 심장부를 연일 공습하고 있는 프랑스의 성난 행동에 대해 많은 이들이 '사이다'라 외치며 시원하다는 반응 일색이지만, 이는 전혀 죄가 없는 시리아 민간인들만 엉뚱한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있고 정작 테러를 일으킨 IS에 대한 타격은 미미했던 걸로 전해져 무력 응징에 대한 효과에 의문을 낳게 하고 있다.
미국이 그동안 지상군 투입을 꺼려 온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무력 공습만으로는 절대로 IS를 격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미군에 따르면 최근까지 460여일 동안 IS를 무려 8000번 이상 공습하여 조직원 2만여명을 사살한 것으로 추정되나, IS는 여전히 시리아와 이라크 국토의 절반 가량을 점령한 채 건재하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작금의 폭력 전략은 앞서 지적한 전문가의 언급대로 IS가 짜놓은 치밀한 덫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다. 태생상 IS가 단순한 공습만으로 와해될 조직이 아니기에 더더욱 그렇다. IS를 궤멸시키기 위해 연합군을 꾸려 모든 군사적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는 유혹에 빠지기 쉬우나 이는 절대로 IS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으며 오히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기 십상일 테다. 극단주의를 없애야 하는 건 전 지구적 과제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IS 그들이 했던 것처럼 또 다른 폭력적인 방식으로는 작금의 사태를 더욱 꼬이게만 할 뿐, 보다 장기적이며 근원적인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치밀한 계획이 뒷받침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전 세계인들의 IS를 향한 분노가 또 다른 폭력을 부르며 어느덧 무슬림을 향한 증오로 확산되고 있는 뜨악한 현실, 이는 테러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IS가 가장 바라마지 않는 전략이 아닐까? 프랑스 테러를 통해 유럽 내 반 이슬람 정서를 극대화하고 시리아 난민 수용을 어렵게 만들면, 이를 통해 고립된 무슬림들이 결국 IS 자신들을 향하게 되리라 짐작되는 탓이다. 실제로 미국 하버드대의 스티븐 M. 월트 교수는 IS의 폭력 전략에 대한 극단적인 대처 움직임에 대해 경계하고 나섰으며, 미국 워싱턴포스트 역시 반 이슬람 정서의 확산은 IS 그들이 원하는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한겨레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여겨져 오던 우리나라에까지 어느덧 테러리즘에 의한 공포감이 엄습해 오고 있다. 경찰은 18일 국제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연계 단체를 추종하는 것으로 파악된 인도네시아 국적 불법 체류자를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국내에 체류 중인 시리아 난민이 적지 않다는 보도도 잇따르며 공포감을 한껏 부추기는 분위기다. 이러한 움직임은 무슬림을 향한 삐딱한 시선에, 반 이슬람 정서마저 더하고 있는 형국이다. SNS 등 온라인상에서는 파리 테러 이후 난민을 절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주장과 이슬람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드러내는 글들이 난무하고 있다. 단순히 반 이슬람뿐 아니라 어느덧 다문화 전반에 대한 배척으로 이어질 조짐마저 읽힌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잊어선 안 될 사실 하나가 있다. 무슬림은 전 세계 인구의 5분의 1에 이른다. 이들은 어떡하든 우리와 공존해야 할 이웃이지 배척해야 할 대상은 아니다. 우리가 정작 혐오하고 분노해야 할 상대는 이슬람 그 자체가 아니다. 잔인무도한 테러 행위를 통해 무고한 시민들을 죽인 테러리즘과 그 조직을 향해 분노를 표출해야 한다. 그렇다고 하여 폭력에 맞서 또 다시 폭력을 행사하자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잉태할 뿐이다. 작금의 테러 위협을, 이슬람을 비롯한 다문화에 대한 공격 내지 특정 집단을 향한 반감 및 증오를 명분으로 삼는 계기로 만들어선 안 된다. 폭력, 반감 그리고 증오는 IS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악화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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