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집회 및 시위 중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집회나 시위시 신원 확인을 어렵게 할 요량으로 복면을 착용하거나 소지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해당 법안의 주요 골자다. 이의 추진은 지난 2009년 이후 6년만이다. 정갑윤 국회 부의장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다고 20일 밝혔다.
지난 14일 서울 도심에서 개최된 민중총궐기 대회가 이번 법안의 단초가 된 셈이자, 복면 뒤에 숨은 불법 폭력 시위대 척결에 나서 무법천지가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던 김무성 대표의 날 선 발언이 일종의 신호탄이 된 셈이다. 집권세력이 이번 집회를 애시당초 불법 폭력 집회로 규정하면서 빚어낸 결과물 중 하나다. 그러나 집회에 참가했던 한 시민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아 쓰러진 채 사경을 헤매고 있고, 집회의 성격을 두고 폭력 집회냐 아니면 과잉 진압이냐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여전히 뜨거운 상황에서 이번 법안 발의는 그러한 분위기를 더욱 부추기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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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은 지난 2009년에도 입법화를 시도했다가 인권 침해 논란으로 인해 무산됐던 해당 법안을 내친 김에 다시금 끄집어 낸 셈이다. 김무성 대표는 19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전 세계가 복면 뒤에 숨은 이슬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 척결에 나선 것처럼 우리도 복면 뒤에 숨은 불법 폭력시위대 척결에 나서야 한다”며 이번 집회 참가자들을 이슬람 무장단체인 IS에 비유하고 나섰다. 아울러 미국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선진국들도 국가 안전 보장과 질서 유지를 위해 복면금지를 합헌이라고 결정했다며 이번 입법화의 근거로 이를 제시하고 나섰다.
하지만 난 새누리당의 복면 착용 금지 법안에 반대한다. 우선 테러 행위를 통해 무고한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하고 있는 IS를 집회 참가자들에 빗대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난 경악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이와 같은 비정상적인 사고는 평소 집회 및 시위에 대한 새누리당의 시각이 얼마나 비틀어져 있는가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잣대라 할 만하다. 집회 결사의 자유는 헌법에서도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다.
아울러 이는 개인이나 집단이 스스로 생각하는 바를 발현하는 방식 중 하나이자, 시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많지 않은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때문에 국가는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 분명한 건 집회와 시위는 국민의 기본권이지 테러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집회에 참가하는 행위를 테러와 동일시하는 집권세력의 무지와 만용을 깨부수기 위해서라도 절대로 복면 착용 금지가 이뤄져서는 안 된다.
독일 등 선진국들이 복면 금지를 합헌으로 결정했다는 대목은 사실이다. 하지만 집회 참가자들을 폭도로 간주하는 게 아닌 보호 대상으로 여기며 최대한 시위를 보장해주는 시위 문화가 자리잡힌 선진국들과, 시위대 하면 무조건 폭도로 몰아붙인 채 차벽을 세우고 물대포부터 쏘아대는 우리의 그것과는 애시당초 비교 대상이라 할 수가 없다. 이는 마치 성인과 아이를 비교하는, 비대칭적인 상황이라 할 만하다. 시위 참가자들이 다치거나 불상사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여 이들을 보호해주는 역할이 주임무인, 즉 민중의 지팡이 역할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경찰이 우리에게도 존재한다면, 나 역시 복면 착용 금지를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시위대를 향한 작금의 우리 경찰이 과연 민중의 지팡이라 말할 수 있는가?
복면 금지 법안은 시위대가 IS의 테러 요원이기라도 하듯 가뜩이나 집회 시위에 대해 색안경을 낀 채 바라보는 시각에 더욱 좋지 않은 이미지를 덧칠하며 국민의 권리를 크게 해칠 우려가 있다. 즉 시위 그 자체가 불법적인 행위인 양 시민들에게 각인시키는 낙인 효과마저 낳을 우려가 점처진다. 국민의 기본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시위라고 하면 무조건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크다. 복면 금지 법안이 통과되기라도 하는 날엔 그로 인한 낙인으로 인해 시민들의 집회 및 시위와 관련한 권리를 크게 위축시키고도 남을 테다. 아마도 이는 새누리당 등 집권세력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가 아닐까 싶다. 자신들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듣기 싫으니 아예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아울러 선진국들이 복면시위를 금지하고 있는 까닭은 불순한 목적을 가진 위장 시위 참가자들로부터 선량한 일반 시위 참가자들의 안전을 보호하려는 것이 주목적이다. 이렇듯 시위 문화가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복면 착용을 한 시위대를 온전하게 시위에 참여하는 이들로부터 걸러내어 시위대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역할이 주목적이지만, 여전히 후진적인 시위 문화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경우 복면 금지는, 시위는 '좋지 않은 것' 혹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부지불식간 심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도 남을 테다.
게다가 집회와 시위에 대해 무조건적인 불법 폭력 집회라 규정한 뒤 차벽부터 세우고 물대포와 캡사이신 따위로 집회 참가자들을 위협하는 위압적인 사회 분위기에서는 선진국에서의 자유로운 그것과 달리 복면 착용 금지가 개인의 인격권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마저 다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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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의 시위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데엔 나 역시 이견이 없다. 그 중 하나가 불법 폭력 시위일 텐데, 실제로 불법 폭력 시위를 사전 모의하거나 이를 유도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우리 사회에 이미 널리 형성돼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시위 문화의 변화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박수를 어느 한 쪽 손바닥만으로 칠 수가 없듯 말이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오롯이 최고 권력만을 바라보기한 채 집회 시위를 무조건적인 폭도로 몰아가고 있는 경찰 역시 변화하지 않는 이상 올바른 시위 문화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테다.
우리 사회의 시위 문화에 대한 변화의 열망이 전혀 없는 건 아니나 이를 위해선 모두의 희생과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법, 결국 복면 착용 금지 입법화 시도로부터는 건전한 시위 문화의 효과보다 이번 광화문 집회를 빌미로, 아울러 때마침 벌어지고 있는 IS의 테러 행위를 빙자해 자꾸만 공안 정국으로 몰아가려는 속내가 읽히는 데다, 해당 이슈를 계속 부각시킴으로써 국정화 등의 논란으로부터 대중들의 시선을 돌리려는 정치적 꼼수가 엿보이는 등 집권세력이 본질보다 정작 젯밥에만 관심이 있는 듯 보이기에 난 그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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