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미국의 노팁 문화 확산 움직임과 최저임금

새 날 2015. 11. 1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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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문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팁 문화일 텐데, 근래 이 팁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음식점들이 잇따르면서 미국의 오랜 관습에 무언가 작은 변화의 조짐이 읽힌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 뉴욕의 유명 레스토랑 체인인 '유니언스퀘어 호스피탤리티 그릅'이 최근 팁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데 이어 이번에는 대형 음식점 체인인 '조스 크랩 색' 역시 노팁을 선언했다고 한다.

 

팁이란 원래 호텔이나 레스토랑 등에서 고객이 봉사자에게 감사의 뜻으로 전하는 금품으로, 이의 유래는 18세기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옛날 영국의 한 음식점에 ‘신속하고 훌륭한 서비스를 위해 충분한 지불을’ 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는데, 나중에 이 문구가 ‘To Insure Promptness’(신속함을 보장받기 위해)로 줄어들었고, 이것의 앞글자를 따서 팁(Tip)이 유래된 것이라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이러한 팁 문화는 국가별, 지역별로 차이가 존재하나 일반적으로 음식점 등에서는 음식 값의 10% 내지 15% 정도를 봉사료라는 개념으로 더 얹어 팁의 형태로 지불하던 것이 일종의 관례가 된 셈이다.

 

ⓒ헤럴드경제

 

그렇다면 미국에서는 왜 갑자기 노팁 문화가 등장하게 된 걸까? 모두가 알다시피 팁을 주는 문화는 봉사에 대한 대가라는 그 자체로 일종의 배려가 깃들어 있는 문화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오히려 이로 인해 피해를 입는 노동자들이 발생하고 있단다. 이게 무슨 말일까? 언론에 보도된 레스토랑에서는 그동안 고객들에게 받는 팁의 수준을 고려하여 직원들에게 시간당 2.25달러의 시급을 주고, 나머지 임금은 팁으로 보전하도록 해 왔단다. 문제는 이로부터 기인한다.

 

알다시피 음식 서비스는 주방 직원과 홀에서 서빙하는 직원들의 조화로 이뤄진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배후에서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는 직원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고객과의 접촉이 많은 홀 서빙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팁을 많이 챙길 수 있어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반면, 주방 등 그렇지 못한 영역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고객들의 팁을 받을 기회가 적어 상당수가 최저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한 공간에서 함께 일하면서도 팁 문화 때문에 되레 임금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음식점의 경영주 입장에서는 전 직원이 받는 팁 총액을 기준으로 하여 직원들의 시급을 결정하였지만, 말그대로 팁마저도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불거지며 노동기본권조차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하는 한계 이하의 직원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해당 체인점의 최고경영자는 팁 대신 음식값에 봉사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요금을 인상하고, 이렇게 받은 봉사료는 직원들에게 골고루 분배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는 “그동안 일부 체인점에서 노팁 정책을 시행한 결과, 고객들의 반응이 좋았고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품질도 좋아졌다”면서 노팁 문화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결국 이러한 노팁 문화의 확산 또한 팁 문화가 정착됐던 이유처럼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일종의 배려라는 마음 씀씀이가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이다. 여기에 뉴욕주가 시간당 최저임금을 15달러(1만 8천원)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등 미국 사회 전반에 불고 있는 사회 불평등을 없애려는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과연 노팁 문화가 직원 복지 향상을 위한 대안으로 자리매김할 것인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변화를 바라보며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미국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 팁 문화 그 자체에 대해 언급하려 함은 아니다.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미국 사회의 잇따른 움직임이 우리로서는 부러울 수밖에 없다. 최근 최저임금위원회 산하 제도개선위원회 회의가 개최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경영계 측은 매년 정하는 최저임금을 3년마다 한 번씩 정하자는 주장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저물가 기조가 계속되는 만큼 최저임금을 해마다 올릴 필요가 없는 데다, 매년 개최되는 협상으로 인해 불필요한 갈등을 굳이 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연합뉴스

 

하지만 노동자들의 생계가 달려 있는 최저임금 협상은, 경영자들 입장에선 다소 불편하게 다가올지는 몰라도 절대로 불필요한 갈등으로 치부되어선 안 될 노릇이며,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급 6,030원으로 여전히 노동자들의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대단히 열악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실을 도외시한 채 이의 협상을 3년마다 하자는 주장은 결국 최저임금을 인상해주기 싫다는 공허한 소리로만 받아들여질 뿐이다. 아울러 저물가 기조라는 그럴 듯한 논리를 들고 나왔지만, 이는 최저임금 인상을 회피하려는 꼼수적 수단에 불과하다. 

 

미국은 주 정부와 경영자들이 직접 나서 최저임금을 올리자고 주장하거나 노팁 문화를 전개하면서까지 직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애쓰고 있고, 또한 사회 불평등 구조의 해소를 위해 각계각층이 하나가 되어 함께 노력하고 있는 게 확연하다. 그에 비해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최저임금위원회의 한 축인 경영계를 이루는 기업들은 사내 유보금을 몇백조원씩 쌓아두고 움켜쥔 채 아주 작은 배려조차 베풀지 않으려 하고 있으니, 이는 흡사 소설 '크리스마스 캐롤' 속 자린고비 주인공 '스크루지'의 형상과 꼭 빼닮은 것 같지 않은가? 못내 씁쓸하게 다가오는 건 비단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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