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강제모금 청년희망펀드로 일자리 창출 가능한가

새 날 2015. 11. 11. 12:53
반응형

박근혜 대통령이 최초 제안하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청년희망펀드가 도입 취지조차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당초 우려했던 대로 오히려 준조세식 성금으로 변질됐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오늘날 청년세대가 안고 있는 아픔은 3포세대, 5포세대, 심지어 n포세대라 불릴 만큼 넓고도 깊어, 이를 헤아리기조차 사실상 쉽지가 않다. 당장 해결해야 할 시급한 현안인 것만은 틀림없으나 실은 워낙 복잡다단하여 단순한 요법으로는 이의 해결이 지난한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이에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청년들의 실업난을 일자리 창출로 극복해 보자며 제안한 청년희망펀드는 지난 9월 박근혜 대통령이 개인재산 2,000만원을 내놓고 매달 월급의 20%씩 기부하기로 하여 1호 가입자가 된 바 있다. 물론 청년 일자리 창출이 이런 보여주기식 성금 모금 따위로 당장 이뤄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데다, 작금의 청년실업문제라는 게 사회 전반의 구조적인 모순의 발현체인 탓에 근원적인 해법이 제시되지 않는 이상 표피적인 정책만으로는 약효가 없으리란 건 해당 펀드를 들고 나올 당시부터 지적됐던 사항이다.

 

ⓒ한국일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왕 펀드를 조성하기로 하였으니 나 역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저 잘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사업 초기 시점부터 삐끗거리며 불거지기 시작했던 문제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차 확산되어가는 추세라 해당 펀드의 도입마저 무색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청년희망펀드가 만들어질 즈음 이를 직접 개발하여 판매하던 시중은행으로부터 직원들에게 펀드 가입을 종용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한바탕 논란으로 이어진 바 있다. 지점간 그리고 은행간 실적 경쟁으로 불거지더니 어느덧 직원도 모자라 고객뿐 아니라 주변 지인들까지 총 동원하여 계좌 개설을 반강제하거나 심지어 아르바이트, 청원경찰과 같은 계약직 직원들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이의 가입을 강요하는 등 결코 웃을 수 없는 씁쓸한 현상마저 빚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갖은 무리수를 둬 가며 모집 중이던 해당 펀드의 기부액은 9월 중순 모두 60억원에 그치며 기대 수준을 한참 밑돌았던 모양이다. 지지부진한 기부 현실에 조바심을 느낀 탓일까?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청년희망펀드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대기업에 기부액 규모와 참여 시기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부금 액수까지 구체적으로 할당한 모양이다. 5대 그룹에는 750억원, 금융권엔 500억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던 기업들은 불만이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공개적으로 드러낼 수는 없는 처지이다.

 

병석에 누워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200억원 기부가 신호탄이기라도 한 양 여타 기업들의 기부 행렬이 이어져 최근 청년희망펀드의 누적 기부액은 그 전달에 비해 무려 10배 이상 늘어난 606억원을 넘어섰다는 소식이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기업 오너와 임원들의 기부 릴레이 또한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일부 기업에선 해당 임원의 동의도 받지 않은 채 직급에 따라 일률적으로 기부금을 할당한 뒤 급여에서 이를 공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는 앞서 금융계에서 임직원들에게 해당 기부금을 강제로 할당했던 상황과 완전 판박이다.

 

ⓒ뉴시스

 

이러한 결과가 어이없게 다가오는 건 해당 펀드가 최초로 도입될 당시만 해도 애초 기업 명의의 기부는 받지 않기로 했던 대목이 아닐까 싶다. 정부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입장에 놓인 기업들의 실적 경쟁을 부추긴다는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한 데다, 이는 각계각층의 자발적 참여를 바라는 청년희망펀드의 본래 취지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는데, 결국엔 또 다시 말뿐이었던 셈이다. 이번 정부는 자신들이 한 발언마저 불과 며칠 사이에 언제 그랬냐는 듯 손바닥 뒤집듯 홀딱 뒤집어 버리는 게 일종의 습관이 돼 버린 모양이다.

 

청년 일자리 창출이 단순히 모금 방식으로 해결될 사안이라면 비록 지금과 같은 잡음이 발생하더라도 난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이를 환영할 테다. 하지만 과연 그러하던가? 작금의 청년실업난이 모금으로 해결 가능한, 단세포적인 문제에 불과하던가? 더구나 구체적인 기금 운용계획 등이 밝혀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렇듯 강제적으로 기금만 조성하면 어쩔 텐가? 올바른 진단과 진지한 고민을 통해 해법을 제시해도 시원찮을 판에 고작 기업과 개인들로부터 강제적으로 성금을 모아 청년실업난을 해결하겠다는 발상이 과연 올바르다고 할 수 있을까? 혹여 청년일자리 문제의 심각성을 사회 전반에 일깨우는 역할을 위해 해당 기금이 쓰일 요량이라면 굳이 마다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더라도 애초의 취지대로 강제적인 방식이 아닌, 자발적인 방식의 기금 조성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결국 이러한 보여주기식 정책으로는 청년들의 고통과 아우성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헬조선'의 탈출은 고사하고, 청년 일자리 창출 역시 더욱 요원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