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이 오를수록 오히려 선호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특정 제품과 관련한 기사 하나가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이유는 작금의 경제 상황이 너무도 어려운 탓이다.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아울러 어떠한 제품이기에 이 불황 국면에서 불티나게 팔린다는 걸까? 해당 기사에 따르면 주변에서는 불황이라며 온통 아우성들이지만 사치품만은 예외란다. 일례로 700만원을 훌쩍 넘는 한 명품 브랜드의 핸드백은 없어서 못팔 정도로 인기가 많고, 하룻밤 숙박료가 50만원을 웃도는 럭셔리 호텔 브랜드가 처음으로 국내에 진출하여 성황리에 오픈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뿐만 아니다. 고가품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럭셔리카도 매년 급성장 추세란다. 하긴 며칠 전 한정품이라고 하여 내놓은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 의상 역시 일주일씩 노숙을 해가며 구입을 위해 몸싸움까지 벌일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걸로 보아 우리나라 사람들의 명품 사랑이 대단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니 왜 아닐까 싶긴 하다. 이 때문인지 한국의 명품족은 글로벌 브랜드들의 VIP가 돼 가는 추세란다. 아니 말이 VIP이지 내가 보는 관점에선 사실상 봉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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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유명 명품 브랜드들이 매년 가격을 인상하고 있지만, 그것도 터무니없이 높게, 그에 아랑곳없이 고객은 끊임없이 몰리고 있는 탓이다. 아무리 가격을 높게 올리더라도 인기 제품은 미리 예약한 상태에서도 구하기 어려울 정도라니 이쯤되면 말 다한 셈이 아닐까 싶다. 업계 스스로도 한국에서 성공하기 위해 '비싸게 팔고, 비싸게 팔고, 또 비싸게 팔아라'는 말도 되지 않는 전략을 내세우며 그와 같은 사실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러한 우리만의 특이한 소비 현상을 두고 해당 기사는 미국의 사회학자 베블렌이 1899년 출간한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주장한 가격이 오르는 데도 수요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인 이른바 '베블렌 효과'를 언급하고 있다. 베블렌은 이를 통해 부유층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고,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치를 일삼는다고 꼬집은 바 있다. 이러한 과시적 소비는 처음에는 일부 부유층을 중심으로 시작되지만, 다른 이들이 특정 상품을 많이 소비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주변사람들이 이를 흉내내면서 사회전체로 확산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경향 때문에 불경기임에도 불구하고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그토록 바싼 가격에 제품을 내놓아도 없어서 못팔 만큼 인기가 많음을 해당 기사는 지적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부 소비자들의 허세를 꼬집으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물론 수긍 가는 측면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일반적인 소비가 움츠러드는건 경기 불황 초기 국면의 신호이자 지극히 당연한 노릇일 테고, 불황이 가속화되면서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며 이 때문에 하위 단계로 밀려나는 일부 계층이 그러한 현상을 애써 감추고 싶은 욕망 탓에 내실보다는 외양에 치중하는 경향이 다소 커질 개연성이 있을 법하니 말이다.
하지만 제품이 어느 정도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천양지차일 듯싶다. 난 비싼 명품을 소비하는 계층이 제아무리 베블렌 효과로 인한 과시적 소비가 과한 경향이 크다고 하더라도 기사에서 언급한 사례는 지극히 일부 계층에서 빚어지는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즉 해당 제품의 소비 증가가 일반인들의 부유층 모방효과로 나타날 수 있는 허세적 결과라고 보기엔 그다지 호락호락한 가격대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때문에 지나친 일반화가 아닐까 싶다. 솔직히 내 주변에선 앞서 언급한 고가품 따위에 눈독을 들이거나 실제로 구입한 이들을 본 사례가 없다. 다른 세상 얘기에 불과하다. 도대체 어떤 이들이 저런 제품을 구입한단 말인가.
난 오히려 작금의 현상을 동국대 김낙년 교수가 얼마전 논문을 통해 발표한 하위 50%가 갖고 있는 자산이 고작 2%에 불과하다는 우리 사회의 현실과 자산 상위 1%가 전체 자산의 26%를 갖고 있다는 부의 불평등으로 인한 양극화 문제로 바라보는 게 설득력이 훨씬 높으리라 생각한다. 즉 일부 모방효과를 통해 고가품 내지 사치품의 소비가 이뤄지긴 하겠지만, 이는 지나치게 높게 형성된 해당 제품의 가격대로 보아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테고, 궁극적으로는 이를 소비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여력이 있는 특정 계층에서의 소비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게 맞을 것 같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된 모습으로 올곧게 비추고자 했다면 난 이러한 극히 예외적이며 일부 계층에만 해당하는 뜬금없는 기사보다 급격한 사회 변화와 경기침체, 양극화, 일자리 문제 등으로 사회 경제적 지위가 불안해진 사람이 많아지면서 취업준비생이나 노숙인 등 경제적 취약자를 노린 범죄가 근래 늘고 있다는 내용의 또 다른 기사가 되레 훨씬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불황에 명품이 잘 팔린다고? 불황 따위가 피부로 와닿을 리 없는 특정 계층에겐 지극히 당연한 결과 아닐까? 해당 기사는 일부 계층의 허영심 내지 허세를 꼬집고 싶었겠지만, 이를 통해 펼친 내용은 실상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의 한 단면을 비췄던 게 전부이지 않았나 싶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셈이다. 가격이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고가품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일부 계층의 명품 소비는 결국 근래 소비재와 서비스 시장을 중심으로 가격파괴 현상이 확산되며 일본의 장기불황을 그대로 답습해 가는 게 아닌가 하는 공포감을 불러오고 있는 끝모를 경기 불황의 현실과 극명하게 대비되며, 심각한 부의 불평등 즉 양극화된 우리 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비추고 있는 듯싶어 씁쓸하기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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