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감염병 신고를 후회한다는 병원, 도대체 왜?

새 날 2015. 11. 7.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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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병원이 '원인 미상 폐렴 환자' 발생을 신속하게 당국에 신고해 추가 확산을 막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지만, 그의 반대급부로 병원을 찾는 환자 수가 급감하여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다. 오죽하면 신고한 것을 후회할 지경이라고까지 표현할까 싶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병원측의 경영 상황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처지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건강검진 취소율은 평일 5% 수준이었으나 20%로, 4배 이상 크게 눌었으며, 입원환자 수 역시 평일 20여명에서 5일 현재 3명으로, 7분의 1 수준까지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 메르스 감염자가 발생하면서 환자가 급격히 감소해 가뜩이나 경영에 직격탄을 맞은 이래 겨우 회복세를 보이는가 싶더니 이번 사태로 인해 또 다시 어려움이 가중되며 설상가상의 상황으로 내몰린 셈이다.

 

ⓒ연합뉴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등의 관련 법규에 따르면 질병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의사나 한의사가 감염병 환자를 진단했을 경우 곧바로 관할 보건소장에게 병명과 발병일, 환자의 인적사항 등을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 6월 전국을 강타했던 메르스 사태 당시에도 일부 병원들이 메르스 의심환자를 보건당국에 늑장 신고하여 사태를 더욱 키웠던 뼈아픈 전례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삼성서울병원장은 경찰에 고발되었고, 얼마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바 있다. 그의 혐의 내용은 6월 3일부터 대략 한 달간 1000여명의 메르스 의심환자를 진단하고도 최소 2일에서 최대 28일 늦게 보건당국에 신고한 사실이다.

 

한동안 전국을 감염병이라는 끔찍한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채 사회 전체를 혼돈의 도가니에 빠뜨렸던 메르스 사태다. 이를 돌이켜 보면 전술한 민간 병원 등의 잘못이 사태 확산에 도화선 역할을 톡톡히 한 데다, 안이한 상황 인식으로 컨트롤타워 역할을 사실상 방기하다시피 한 보건 당국이 이를 더욱 확산시키는 데 일조한 바 있다. 이후 보건 당국은 미흡한 제반 시스템을 점검하고 관련 규정을 새로 만들거나 뜯어고치는 등 국가방역체계의 재정비에 사활을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부산 강서구에서는 3년 동안 100건이 넘는 감염병 진단 사실을 당국에 늑장 보고한 것으로 나타나 감염병 관리 체계의 허술함이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에 비해 이번 건국대병원의 조치는, 언론에 보도된 그대로를 인용하자면, 칭찬 받을 만하다. 폐렴 의심 환자 3명을 확인하자마자 방역 당국에 신고를 완료하였으며, 비슷한 시기에 CT에서 독특한 소견을 보이는 폐렴 의심 환자가 확인되고, 이들의 근무지가 모두 동물생명과학대학이라는 사실까지 역추적 과정을 통해 밝혀낸 뒤 당국에 곧바로 알렸다는 것이다. 이렇듯 병원측의 발빠른 신고 덕분에 추가 차단을 막을 수 있었노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현재 봇물을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병원측에 돌아온 대가는 혹독하다 못해 참담하다. 해당 병원은 '원인 미상 폐렴'의 발생지 내지 숙주로 낙인이 찍힌 채 그에 따르는 손해마저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과 맞닥뜨리고 있다. 이래서야 감염병 앞에서 경영상의 위협을 느끼며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 처지의 병원들이 과연 공익을 생각하며 제대로 된 신고라는 걸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이와 관련하여 기현균 건국대병원 감염관리실장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뉴스1

 

"이런 식으로 병원이 손해를 모두 짊어져야 하는 시스템에서는 성실한 신고가 나올 수가 없다. 건강보험 수가 조정 등을 통해 신고한 병원에 보상이 주어지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그렇다. 이분의 주장에 대한 비용적인 측면의 검토 등 가치판단에 앞서 적어도 이번 건국대병원의 사례처럼 신고한 것을 후회한다는 표현이 튀어 나오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물론 감염병 환자를 진단하게 될 경우 보건 당국에 신고해야 함은 관련법으로 정해진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공익 차원에서 볼 때 지극히 당연한 결과가 돼야 한다. 하지만 만약 건국대병원의 사례처럼 병원 경영에 있어 극도의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이라면 누구든 법을 위반하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 짐작된다. 그렇게 될 경우 제2의 메르스 사태가 또 다시 재현되지 말라는 보장 또한 없잖은가?

 

병원 경영의 어려움이라는 위험을 과감히 무릅써가며 공익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대가에 대해선 건강보험 수가 조정을 통해서든 그렇지 않으면 다른 경로를 통해서든 어쨌거나 모종의 보상책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국가방역체계를 보다 튼튼하게 하는 담금질이 될 수 있는 데다, 보다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 담보를 위한 첩경이 될 게 틀림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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