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노숙과 몸싸움 빚은 명품 이벤트, 어떻게 봐야 하나

새 날 2015. 11. 6.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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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한 명품 브랜드 제품이 세계 60개국 250여 매장에서 동시에 판매된 가운데 우리나라도 명동점 등에서 판매 이벤트가 진행됐다. 그런데 오픈하자마자 매장 내에서는 몸싸움이 발생하는가 하면 매장 밖에서는 구입가의 몇배 비싼 가격에 되파는 리셀러들이 등장하는 등 진풍경이 벌어졌다. 도가 지나친 이러한 현상은 흡사 한 편의 씁쓸한 희극처럼 다가온다. 정상 가격의 10분의 1 가격에, 그것도 한정판이라는 희소성이 더해지니, 해당 브랜드 제품에 관심이 있거나 눈독을 들여오던 소비자들에겐 꽤나 매력적인 기회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소비자들의 이러한 관심 폭발은 노숙 대란이라는 기이한 현상마저 빚고 말았다. 선착순으로 판매한다는 업체의 방침에 따라 이를 먼저 구입하기 위해 판매가 예고된 날짜보다 빠르게는 일주일 전부터 일부 열혈 소비자들이 상점 앞에서 노숙을 하며 대기한 탓이다. 물론 해당 브랜드를 잘 알고 있거나 명품 가치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이들이 볼 땐 충분히 납득 가능한 상황일지 몰라도 나 같은 일반인 입장에서 볼 땐 정말로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연합뉴스

 

아울러 우리나라 사람들의 명품 사랑이 유별나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긴 하나 이렇듯 며칠씩이나 밤샘을 해가면서까지 이의 구입을 위해 줄을 선다는 건 선뜻 이해하기가 어려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도 경제학 원론에서 다뤄지고 있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여지없이 적용되고 있는 듯싶다. 수요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공급이 한정된 제품이라면, 게다가 가격마저 착하다면, 이의 구입을 위해 대기줄을 서는 일쯤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낯선 상황이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빚어지는 현상은 아닌 모양이다. 외국에서는 유명 브랜드와 인기 스포츠 스타가 결합된 한정판 운동화를 구입하기 위해 매장 앞에서 긴 줄을 서고, 동일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끼리 주먹다짐을 일삼거나 총기 사고 따위가 빈번하게 벌어진단다. 물론 이번 경우와는 조금 다르겠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이러한 제품 모으는 일이 단순한 취미를 넘어 목숨을 건 집착 현상으로까지 발현되기도 한단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동시에 치러진 비슷한 성격의 이벤트에서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만이 일주일간 노숙을 하거나 몸싸움 등을 벌이며 세인들의 눈길을 끌었던 건 분명 무언가 다른 속사정이 있을 법하다. 단순히 옷이 좋다고 하여 그렇게나 많은 사람이 동시에 노숙을 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혹시 옷에 꿀이라도 발라져 있었던 걸까? 그게 아니라면 역시 돈과 관련한 문제?

 

언론은 수일간 노숙을 해가며 해당 제품의 구입을 위해 줄을 선 다수의 사람들이 나중에 비싼 가격으로 되팔려는 이른바 리셀러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덕분에 대중들의 시선은 일제히 리셀러에게로 향하는 모양새다. 실제로 대기줄을 선, 특히 앞쪽에 선 이들은 그 비싼 가격의 옷을 한 두 벌만 구입해 간 게 아니라, 많게는 수십벌씩을 한꺼번에 구입해 갔다는 소식이다. 덕분에 판매를 시작한 지 고작 3시간만에 해당 제품이 모두 동나고 마는 기현상마저 벌어졌다.

 

이런 마당에 대중들의 리셀러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이벤트가 개인들에게 기회로 다가오기보다 리셀러들의 주머니만 채워주었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단순히 그러한 류의 불만뿐이 아니라 노숙을 하고 몸싸움까지 벌이며 매우 낯뜨거운 모습을 연출한 사실에 대해서도 질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어느새 리셀러들은 공공의 적이 돼 가는 분위기이다.

 

그렇다면 대중들의 리셀러를 향한 호된 비난은 과연 올바른 방향이라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제품을 구입한답시고 이들이 무질서한 행동까지 일삼고 대중들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사실은 그 자체로 잘못된 행동임이 분명하기에 적절한 꾸짖음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해당 결과가 있기까지의 원인과 과정을 돌이켜 볼 때 이들에게 무조건적인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앤 무리가 따르는 일임이 분명하다. 리셀러를 향한 비난은 과연 온당한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리셀러들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 잘못이 있다면 업체가 마련한 시스템을 그대로 따른 게 전부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불법적인 방법이 아닌 이상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돈을 버는 일에 대해 손가락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한 자격은 어느 누구에게도 부여된 바 없다. 설령 지나칠 정도로 과한 경우라 해도 말이다. 단 며칠간의 노숙을 감수하고 그 이상의 대가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를 어느 누가 마다하겠는가? 리셀러들이 무질서하게 몸싸움을 벌이는 등 애시당초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도록 멍석을 깔아놓은 업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해당 제품을 구입하러 온 이들은 그저 그들이 마련해 놓은 시스템에 따라 행동했을 뿐 아무런 잘못이 없다.

 

ⓒ뉴시스

 

이번 행사는 해당 업체가 명품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이벤트 형태로 치렀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 또한 일종의 마케팅 수단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명품 브랜드인 데다, 한정판, 게다가 10분의 1에 해당하는 가격이라면, 혹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의 구매 의욕을 당기는 요소임이 분명하다. 때문에 노숙까지는 아니더라도 엄청난 인파가 몰릴 것이란 예측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개인당 제품 구입 수량을 특정하지 않았던 건지 나로선 그저 의아할 따름이다. 이런 행사일수록 으레 1인당 한 벌이라는 판매 조건을 내걸었어야 하지 않을까? 평소 리셀러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결국 이러한 방식의 이벤트는 일종의 방임 아니겠는가? 이런 판국에 리셀러들이 노숙까지 감행한 채 매장의 옷을 싹쓸이한 건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 아닐까?

 

해당 업체는 이벤트를 통해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을 테니 결과적으로 볼 때 마케팅의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업체입장에서 손해를 볼 일은 전혀 없었다는 의미이다. 노이즈 마케팅처럼 모종의 치밀한 전략과 뛰어난 상술이 밑바탕에 깔린 게 아니라면 이러한 결과는 애초에 기대하기 어려웠을 테다. 결국 업체가 만들어놓은 시스템에 의해 일반 소비자들은 그에 놀아나며 해당 제품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끌어올려준 결과에 불과하다. 또 다른 이익은 리셀러들의 몫이 됐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받는 격이다. 이쯤되면 H&M과 발망에 의한 콜라보레이션이 아닌, 상술과 얕은 시민의식 그리고 욕망 따위의 콜라보레이션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과연 누가 누구를 손가락질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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