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정치 희화화한 김만복, 불신과 혐오감만 키워

새 날 2015. 11. 10.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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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시대는 정치 불신을 넘어 혐오의 시대라 할 만하다. 젊은이들은 선거날만 되면 자신의 삶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며 투표를 외면하기 바쁘다. 최근 잇따라 치러진 각종 선거에서의 지극히 낮은 투표율이 이를 입증한다. 참고로 가장 최근에 치러졌던 10.28 재보선의 경우 평균 투표율은 20.1%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의도적으로 정치 혐오를 조장하거나 부추기는 세력이 우리 주위에 존재하고 있음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국격과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은 일부 정치인들의 자질이 이를 키우는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최근 새누리당으로의 팩스 입당과 함께 구설수에 오른 김만복 전 국정원장의 황당한 행보는 정치에 대해 불신을 키우는 건 둘째치고 심지어 희화화하기까지 하고 있다. 이는 정치인 자신들에게도 독이 될 테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국민 모두에게 적지 않은 상처와 피해를 준다. 우리가 희극을 보며 웃고 넘기듯 현실 정치에서는 이 분의 돌출 행동을 보며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입장인 까닭이다.

 

ⓒ뉴스1

 

김만복 전 원장은 내년 총선에서 부산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8월 팩스로 새누리당에 입당원서를 제출한 상태에서 부산 기장읍에서 열린 10.28 재보선 새정치민주연합 후보 결의대회에 참석하여 해당 후보의 지지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사실들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뒤 물의를 빚자 그는 별도의 자료를 통해 적극 해명에 나선 모양새다. 그에 따르면 팩스로 새누리당에 입당원서를 제출한 건 맞으나 당시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한 채 지난 5일 언론보도를 통해 알게 됐단다. 아울러 새정치민주연합 후보 지지 발언을 한 것은 새누리당 당원이라는 인식이 없던 상황에서 개인적인 차원의 인간적인 정리에 의한 결과란다.

 

그가 해명한 내용 모두가 사실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한 행위로 받아들인다 해도, 새누리당에 입당원서를 제출한 상황에서 반대 진영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의 지지연설에 나섰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보나 혹은 도의적으로 보나 도저히 납득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아울러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자신이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할 경우, 즉 징계 절차를 밟고 있는 새누리당에서 출당을 당한다 해도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하겠으니 이 경우 자신이 야권연합 후보가 되어야 한다며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절대로 기장군에 후보를 내선 안 된단다.

 

어떤 경우라 해도 이번 총선에서 금배지를 달아야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히고 나선 셈이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막무가내식 돌출 행위로부터는 정치적 소신이나 철학 따위를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게 문제다. 오히려 보통사람들이라면 절대로 갖출 수 없을 듯한 두 진영 사이를 양 다리로 걸친 채 자유롭게 오고가는 특이한 정신세계가 돋보이는 걸로 봐선 오로지 국회의원이 그의 최종 목적지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분이 정치인이 된다면 그 자체로 모순이 아닐까 싶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기-승-전-국회의원'이라는 표현이 기가 막히게 와닿을 정도다.



간혹 여당과 야당을 제 집 드나들 듯이 진영을 바꾼 채 어떡하든 정치인의 지위를 유지해 오던 이들을 보며 대중들은 소신 없는 철새 정치인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대곤 했는데, 김만복 전 원장의 경우는 그 수준을 아주 가볍게 넘어서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오직 출세와 성공에 눈이 멀어 신의를 손바닥 뒤집듯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의 독특한 정신세계와 정치적 소신은 그가 모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발언한 내용을 통해서도 엿볼 수가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내가 국정원에서 클 때, 마침 간부 내지는 국정원장까지 된 시기였고. 그리고 그 사람들, 새정치민주연합이 아니고 노무현 대통령의 어떤 안보정책 내지는 대북정책에 제가 깊이 관여했기 때문에 그 쪽하고 정서가 맞았지. 내 기본적인 정서나 내 주변은 약간 보수적입니다. 그래서 새누리당이 나하고 정서가 맞습니다. 저는 국정원장 출신으로서 더 이상 종북좌파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며, 국민들과 남북 화해협력과 평화적 통일 문제에 관해서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이게 내 마지막 결론입니다."

 

종북좌파란 소리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새누리당에 입당한 것이라는 그의 발언이지만, 실은 자신이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선 열세에 놓인 야당에서 출마해 봐야 가능성이 희박하기에 당선 가능성이 풜씬 높은 새누리당을 통해 출마하고 싶은 의지를 밝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또 다시 기-승-전-국회의원인 셈이다.

 

이 분이 새누리당에 입당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땐 뭐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게 솔직한 나의 속내다. 앞서도 언급했듯 그동안 비슷한 성향을 보여 온 정치인들이 한 둘이 아니었던 탓이다. 게다가 이분은 국정원장이라는 특이한 이력까지 지낸 분이다. 야당 성향의 인물이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옮겼다는 사실이 비록 괘씸할지언정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제대로 된 정치 활동을 한다면야 더 이상 누가 뭐라 하겠는가. 어떤 진영이든 자기 소신껏 제 몫을 톡톡히 하는 정치인들은 대중들로부터 사랑과 지지를 받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정치인들은 외면을 받게 되는 건 인지상정일 테니 말이다.

 

ⓒKBS

 

얼마 전까지 각종 돌출행동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김만복 전 원장의 과거 행적에 대해선 그다지 언급하고 싶지가 않다. 다만, 작금의 오락가락 정치 행보를 통해 가뜩이나 불신 가득한 현실 정치를 희화화하고, 대중들로부터 정치 혐오감을 더욱 부추긴 행위에 대해서 만큼은 그 책임을 따져 묻고 싶다. 국민의 수준이 그리도 어쭙잖아 보이는가? 안타깝게도 정치인이 되기 위한 목적이 오로지 정치인이란 지위 그 자체인 사람을 원하는 국민은 없다. 이는 비단 진보 보수니 혹은 여당 야당 따위의 진영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더 이상의 정치 퇴행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우리 사회에 대한 애정이 그에게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지금이라도 당장 정치권을 떠나는 게 현명한 판단이 아닐까 싶다. 어차피 야당과 여당 어디에서도 환영 받을 수 없는 계륵 같은 존재가 된 이상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은 여기까지로 보인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보더라도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지 않은가. 만약 이런 분이 국회의원에 당선된다면, 물론 그럴 일은 추호도 없겠지만, 이건 희극을 넘어 우리 정치사에 두 번 다시 없을 비극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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