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농부는 밭을 탓해선 안 된다

새 날 2015. 5. 19.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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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놓고 팽팽히 맞서고 있는 여야의 극한 대치 상황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정치적 주도권이 달린 사안인 탓인지 서로 간에 한치의 양보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마뜩지않은 상황은, 물론 새누리당의 여야 합의 파기가 직접적인 원인이긴 하지만, 애초 정치인들이 조성한 게 아니었습니다.  국민연금 변경 연계에 반대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개입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여야는 애초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전격 합의하고 모처럼 사회적 대타협을 이뤘다며 흡족해하던 터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건 결국 청와대였습니다.  행정부가 입법부를 압박하는 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제가 얼마나 제왕적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8일 조윤선 정무수석의 사퇴는, 이러한 분위기에 마침내 정점을 찍은 모습이었습니다.  정치권에 일종의 최후통첩을 날린 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새누리당은 자신들의 의도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자 엉뚱한 방향으로 화살을 돌리는 모양새입니다.  또 다시 국회선진화법 개정 카드를 꺼내든 것입니다.  어떤 법안이든 소수 정당이 찬성하지 않을 경우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게 한다는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야당이 공무원연금 개혁법안 처리를 놓고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 내 볼썽사나운 몸싸움과 날치기 입법을 방지한다는 취지로 지난 2012년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현재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법안입니다.  새누리당은 여당 주도의 주요 법안들이 국회선진화법에 번번히 가로막히자 지난 1월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청구한 데 이어 최근 공무원연금 개혁법안 처리가 지연됨과 동시에 구체적인 개정 논의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우리의 정치 풍토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습니다.  법안이 자신에게 유리할 땐 강력히 추진하다가도 불리해지는 상황에선 이 때문에 발목을 잡는다며 개선을 요구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가장 비근한 예로는 교육감 선거를 들 수 있습니다.  지난해 6월 4일 치러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대거 당선되자 보수 진영으로부터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비등해진 바 있습니다.  반대의 결과였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얼마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1심에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판결을 받자 또 다시 직선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봇물을 이뤘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읽히는 상황입니다.

 

교육감 직선제는 숱한 문제점을 노정시키고 있지만, 시민들이 교육정책과 관련한 교육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자 교육자치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제도입니다.  특정 제도에 문제점이 있다면 이를 보완해 나가면 될 일입니다.  선거 자체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손가락에 생긴 작은 상처 때문에 손을 자르는 우를 범해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YTN 방송화면 캡쳐

 

한편, 이완구 전 총리가 지난달 27일 퇴임한 지 한 달 가까이 돼가고 있습니다.  총리 공백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후임 총리 지명을 늦출 이유가 없다던 박 대통령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면서 총리 지명은 예상보다 훨씬 늦어지고 있습니다.  특정 인사에 대한 하마평이 오르내리고 있긴 하지만 인선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이 이렇듯 장고를 거듭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이번 정부 출범 이후 반복된, 총리 잔혹사에 의한 낙마 트라우마 때문으로 읽힙니다.

 

이러한 결과는 또 다시 그와 관련한 제도 흔들기로 귀결되는 모양새입니다.  총리 잔혹사가 까다로운 인사청문회 탓이라는 주장이 정치권 일각으로부터 새나오고 있습니다.  총리 후보자에 대한 능력과 자질은 물론, 도덕성 및 과거의 행적까지 살피는 꼼꼼한 청문회 탓에 박근혜 대통령이 장고에 접어들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역시나 스스로를 탓하기 보다 제도를 탓하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옳지 못한 생각입니다.  사실 총리를 할 만한 훌륭한 인물은 우리 사회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만약 청문회를 통과할 법한 적절한 인물이 대통령 주변으로부터 찾기가 쉽지 않거나 혹여 있더라도 스스로가 이를 고사하는 상황이라면, 이는 애초 사람 관리를 잘못한 대통령 자신을 탓해야 할 노릇이며, 아울러 대통령의 인선 잣대가 과도할 정도로 좁아 벌어지는 결과일 테지, 제도를 탓하는 건 우스운 일입니다.  

 

진정한 어부는 바다를 탓하지 않으며,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농부 역시 밭을 탓하지 않습니다.  작금의 정치가 국민을 위한 그것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위정자들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을 탓하기 전에, 아울러 제도를 탓하기 전에, 그동안 자신들의 정치 행위가 지나치게 특정 이익에만 매몰돼 왔던 건 아닌지 반성하고 또 다시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국민을 위한 정치란 생각보다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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