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명문'을 만드는 건 과연 무언가

새 날 2015. 5. 1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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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과학대학교 청소노조는 지난해 3월부터 17차례에 걸쳐 임금교섭을 벌여왔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결렬되었고, 결국 지난해 6월부터 현재까지 1년이 다 돼가도록 파업을 벌여오고 있습니다.  노조원들은 애초 대학 본관 안에서 농성을 벌였으나 지난해 10월 강제 철거된 채 길거리로 나앉은 이후, 본관 앞으로 장소를 옮겨 농성을 벌여오던 와중입니다.  그러나 학교와 법원은 이마저도 가만히 두질 않았습니다.  18일 오전 이를 강제 철거하였고, 결국 청소노조원들은 학교 밖에서 농성을 이어가야 할 딱한 처지로 내몰렸습니다.

 

청소 노조원들의 요구는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10년 20년을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지난해 최저시급인 5210원을 받고 있는 처지라고 합니다.  먹고 살게는 해줘야 보람된 직장으로 알고 열심히 일할 수 있으니 생활임금을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참고로 정부가 청소 용역에게 주는 시중 노임 단가는 시급 7915원이며, 이들을 고용하고 있는 용역업체는 최종안으로 6643원의 인상안을 제시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동안 학교 측의 대응은 놀라웠습니다.  총장과 이사장은 단 한 차례도 대화에 나선 적이 없으며, 오히려 법원에 농성장 퇴거, 현수막 게시금지, 업무방해 금지, 출입 금지 등의 가처분 신청을 낸 뒤, 고소 고발과 통장 압류로 노조를 탄압해 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총학생회를 필두로 한 학생과 교수 교직원 심지어 총장까지 직접 나서 노조 현수막과 리본 등을 강제로 철거하거나 커터칼을 들고 다니며 파업 현수막을 찢곤 했다고 합니다.  학교 측이 노조원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학생들을 구사대로 동원했다는 의혹마저 일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총장이 커터칼로 현수막 철거... 울산과학대 기막힌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에서 가장 크게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은 다름 아닌 학생들의 무관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곳의 환경을 늘 깨끗하게 관리하여 온 이들 청소 노동자의 생존권 싸움에 관심을 보인 학생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긴 총학생회마저 학교 측에 회유될 정도이니 오죽할까 싶긴 합니다.  농성 중인 청소 노동자분들의 호소글이 작금의 현실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이 드리는 글

 

우리는 청소밖에 모릅니다. 그러나 울산과학대에 들어올 내 자식같고, 손주같은 학생들이 더 나은 교육을 받기 바랍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대하는 교육. 낮은 자를 위하는 교육. 나만 잘 산다고 끝이 아닌, 이웃과 함께 사는 교육. 그러나 지금 울산과학대는 그런 교육을 가르치지 않는것 같습니다.

 

함께 10년을 일한 청소노동자들의 소박한 소원을 이처럼 무시하는 대학에서 학생들이 무엇을 배울지 무섭습니다. 학교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은, 대학의 주인인 학생들입니다. 학생들, 우리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에 힘을 주세요. 우리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세요.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이 이토록 아프게 싸우는구나, 관심 가지고 알려 주세요!

 

때마침 비슷한 처지로 내몰렸던 다른 대학교의 청소 경비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기숙사에서 청소와 경비 일을 해온 23명은 지난해 11월 27일 용역업체로부터 노동 시간을 줄이고 월급을 삭감하는 내용이 담긴 재계약안을 통보 받게 됩니다.  이를 거부했던 23명은 지난해 12월부터 연대 신촌캠퍼스에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천막농성을 벌여왔습니다.

 

그런데 특이했던 건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스스로 대책위원회를 꾸린 채 이들의 긴 싸움에 함께했다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요?  용역업체와 농성 노동자들은 지난달 30일 교섭을 갖고 그들의 순차적 복직에 합의했다고 합니다.  양 측이 지난 1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를 방문해 화해서를 작성하면서 이번 결정이 공적 집행력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동참이 천군만마 역할을 했던 셈입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기나긴 농성 끝에 일터로 돌아가게 된 연세대 청소 경비 노동자들은 대자보를 통해 연세대 학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왔습니다.  훈훈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음은 대자보의 개략적인 내용입니다.  "막막한 우리 청소 경비 노동자들에게 학생들의 연대와 지지는 어두운 동굴 속 등불과 같았고, 사막의 오아시스였습니다.  지쳐갈 때쯤 문화재를 열어주고 웃음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인생을 더 살았지만, 우리 학생들로 인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 삶의 터전이기도 하지만 학생들의 교육 공간, 그리고 학생들의 행사에 항상 함께 하겠습니다"

 

대자보엔 농성에 함께 참여해준 학생들을 향한 진정어린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앞서 본 울산과학대학교 청소 노동자들의 호소글과는 판이했습니다.  무엇때문일까요?  바로 학생들의 관심 여부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제 눈에 띄는 문구 하나가 있었는데요.  다름 아니라 "공부만 하고 주위를 챙길 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나 명문은 학생들이 만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라는 문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명문'이란 기준은, 비단 입학생들의 수능성적만은 아닐 것입니다.  지성과 인성, 역사와 전통, 연구 실적, 평판 그리고 졸업생의 사회 진출 및 기여도 등등 수많은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 명문이냐 비명문이냐를 가르게 됩니다.  주변의 일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며, 또한 아파하는 이웃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하던 곳에선 놀랍게도 모두가 바라던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반면, 자신의 일이 아니라며 타인의 고통을 모른 채 외면하기 바빴던 곳에선 여전히 문제의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강제 집행을 통해 농성자들이 학교 밖으로 쫓겨나는, 볼썽사나운 일마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명문'이란 저절로 만들어지지도 않거니와, 그렇다고 하여 먼 곳에 있지도 않은, 그러한 성질의 것임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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