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예비군 공포' 누가 부추기는가

새 날 2015. 5. 1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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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훈련장 총기사고는 군 당국의 허술한 총기 관리가 불러온 전형적인 인재였습니다.  이번엔 공교롭게도 내곡동 훈련장에서 발생하였지만, 혹여 이곳이 아니더라도 전국 예비군 훈련장 어딘가에서, 언젠가 한 번은 반드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이면서도 태생적인 한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탓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예비군 훈련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 파악과 개선 작업이 마련돼야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노릇입니다만, 사건 이후 보이고 있는 군 당국의 행태는 여전히 못 미덥기만 합니다.

 

급기야 270만 명에 이르는 예비군 전체가 술렁이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예비군 부대마다 훈련 참가를 연기하거나 참가하더라도 적어도 사격훈련만큼은 피하고 싶다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힘들다는 군 복무를 마치고 이제야 간신히 제대하였건만, 또 다시 목숨을 걸 수는 없다는, 이른바 '예비군 공포’가 전국적으로 확산돼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예비군 공포는 어디에서 비롯됐을까요?

 

ⓒ국민일보

 

물론 자신의 분노를 엉뚱한 곳에 표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번 사건의 가해자로부터 비롯된, 지극히 개인적인 만행이 이번 공포감의 단초가 되겠습니다만, 이것이 더욱 극대화되거나 확산일로에 놓이며 패닉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는 데엔 그럴 만한 연유가 있는 것으로 읽힙니다.  총기 난사 사건 이후 군 당국이 보여 온 믿을 수 없는 행태가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가해자에 의해 마지막으로 총구가 겨누어졌던 예비군에게 군 당국이 현장검증을 요구하며 가해자의 역할을 종용했다고 합니다.  가해자는 이미 7발의 총탄으로 사망자와 부상자들을 쏘고 난 뒤 마지막으로 이 예비군을 조준하였으나 다행히 그를 쏘지 않은 채 총구를 자신에게 돌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해당 예비군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상황인데요.  가해자의 총구에 겨누어진 이 예비군은 끔찍했던 당시의 상황으로 인한 극심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군의 현장검증 요구를 거절했으나 군 당국은 국민의 '알 권리'가 먼저라며 끝내 그를 현장검증에 참여시켜 가해자의 역할을 재현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13일 총기 난사 사고가 발생한 육군 52사단 동원예비군 훈련장 사격장에는 9명의 현역 장교 및 사병, 그리고 200여명의 예비군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총상 등 직접적인 육체적 손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이들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릴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군 당국은 사상자를 제외한 당시 사격장에 있던 200여명 전원을 부대 내 생활관에서 대기하도록 지시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후유증으로 인해 또 다른 고통을 겪게 될지도 모르는 피해자의 입장보다는 이들을 단속하여 어떡하든 사건을 무마하려는 군 당국의 옹졸한 태도가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사실 군이 언제부터 국민의 '알 권리'를 챙겨왔기에 이토록 이를 운운하는지 의아할 따름입니다.  지난해 발생한 육군 GOP 총기 난사 사건 당시에도 부상당한 가해자로 위장한 트럭을 보내며 취재진을 따돌렸던 군입니다.  방산비리로 인해 한 해 수조원의 예산이 줄줄 새나가는 의혹이 불거진 상황에서도 책임을 져야 할 일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회피해 온 당사자들일진대, 이들에게 과연 국민의 알 권리를 운운할 자격이 있는가 모르겠습니다. 

 

 

언론보도의 행태도 못마땅하거나 의심스럽긴 매 한 가지입니다.  대서특필되고 있는 최근의 기사로부터는 국민의 입장보다 오히려 군 당국의 그것이 더욱 절실하게 반영된 듯한 느낌을 받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군 당국의 총체적인 책임을 묻기보다 현장 관리를 소홀히한, 지엽적인 책임으로 몰아가려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물론 사격장의 사로를 관리해야 할 장교나 사병들이 막상 사고가 터지자 매뉴얼대로 행동하지 않은 채 모두 회피한 행태에 대해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긴 합니다만, 애초 20개의 사로에 6명의 관리 인력이 배치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사고에 대한 올바른 대처를 바라는 자체가 무리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이러한 부분보다는 예비군 훈련장의 전반적인 운영 실태라든가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해 이를 돌아보고, 군 당국의 처절한 반성과 향후 대책이 오가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군 당국의 총체적인 책임보다는 현장 관리를 소홀히한 해당 훈련장 소속 인력들의 책임을 더욱 부각시켜 정작 자신들은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듯한 움직임으로 읽히기에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이번 사건의 핵심은 예비군 훈련의 구조적인 문제에 집중되어야 할 것입니다. 

 

군에 보낼 때도 한없이 못미더워하던 우리 부모님들, 급기야 장성한 자식을 예비군 훈련에 보낼 때조차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돼버렸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군 당국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훈련을 앞둔 예비군 본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이들의 부모 역시 안심하고 자신의 자녀를 예비군 훈련장에 보낼 수 있도록, 신뢰할 수 있는 훈련 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입니다.

 

군사적으로 볼 때 우리의 주적이라 할 수 있는 북한의 관영 노동신문마저 우리 군의 방산비리를 조롱했던 뼈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예비군 공포'가 한낱 우발적인 사고로 인해 발생했다기보다 정작 군 당국의 구조적인 문제점들과 부적절한 대응, 그리고 국민으로 하여금 신뢰를 느낄 수 없도록 만들고 있는 사후 행태로 인해 더욱 확산돼 가고 있다는 사실을 군 당국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군 상층부 것들이 막대한 돈을 받아먹고 불량 군수품을 사들이도록 한 결과 괴뢰 군부대들에서 전투기술기재들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거나 각종 사고들이 련발하고 있다."  - 북한 관영 노동신문 5면에 수록된 기사 내용 중 (2015.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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