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정작 국민은 뒷전인 '국민을 위한 정치'

새 날 2015. 5. 11.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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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일 청와대에서 제3차 규제개혁 장관회의 겸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4월 임시국회에서 경제활성화 주요 법안들이 끝내 처리되지 못한 결과에 대해 "법안들을 붙잡고 있는 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정치인지 묻고 싶다"며 정치권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아울러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청년들이 얼마나 애가 타겠느냐"며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물론 표면적으로 볼 때엔 해당 법안들이 실제로 야당의 제동 때문에 처리되지 못한 채 연기된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속내를 살펴볼 경우 결코 야당의 단순 발목잡기 탓만은 아닌 정황으로 읽힌다.  결국 이 모든 게 지난 2일 여야가 전격 합의를 일궈낸 공무원연금 개혁안으로 귀결되는 모양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 명기를 둘러싼 여야의 첨예한 대립이 여타의 안건마저 처리하지 못하게 만들고 만 셈이니 말이다. 

 

애초 정부와 공무원단체 등이 참여한 연금개혁 실무기구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에 합의한 바 있고, 여야 지도부 역시 이 합의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여야는 4월 국회 마지막 본회의 날 다시 '50%라는 숫자를 관련 국회 규칙의 부칙 별지에 적시한다'고 합의하면서, 공무원연금 개혁의 첫 삽을 힘차게 뜨는 듯싶었다.  그러나 정작 청와대가 국민연금 연계 방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다 된 밥에 코 빠트리는 격이 되고 말았다.  모든 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대통령이 언급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될 수 없었던 결과는 정치권인 여당과 야당이 합작으로 이뤄낸 산물임이 분명하지만, 그 근본 원인을 따지고 들자면 청와대 역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정치권 탓만 하는 대통령의 태도로부터는 그동안 익히 봐 왔던 유체이탈형 화법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는 모양새다.  오늘날 여야의 극한 대치는 사회적 합의를 뭉개버리도록 뒤에서 배후 조종한 청와대에 원죄가 있고, 그에 의해 합의를 깬 새누리당에 부차적인 잘못이 있는 셈이니 말이다.

 

청와대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상향 조정할 경우 ‘1702조원 세금폭탄’이라는 논리를 꺼내들었다.  보건복지부의 '보험료 2배 인상' 논리에 이은 또 다른 공포감 확산 마케팅이다.  여론몰이를 통해 정치권을 압박해보겠노라는 심산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언급한 '국민을 위한 정치'란 과연 무얼까?  상호 견제와 균형이라는 3권 분립의 기본 정신은 온 데 간 데 없고,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입법부를 압박하는 게 과연 국민을 위한 정치일까?  물론 절대 아닐 테다.  청와대가 보이고 있는 작금의 행태는 제왕적인 행정부 수반의 전형에 다름아니다.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안 협상은 누가 보더라도 완벽하지가 않다.  오류 투성이다.  전공노나 전교조 등의 참여 배제 역시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반쪽짜리 개혁이란 비아냥이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비록 아쉬운 부분이 수두룩하지만, 그 나름으로 최선의 협상이었음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다.  제아무리 제왕적 형태의 대통령이라 한들 말이다.  아울러 이해당사자와 정부 그리고 정치권 모두가 참여하여 합의를 이뤄낸 사회적 대타협인 만큼 해당 성과에 대해선 높이 평가해주어야 함이 옳다. 

 

그러나 청와대는 유독 이번 개혁안에 대해 반대하고 나선 채, 정치권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회적 합의를 무산시키려 흔들고 있다.  결코 바람직스러운 모습이 아님은 분명하다.  때문에 무언가 다른 꿍꿍이마저 엿보이는 대목이다.  앞서도 언급했듯 작금의 여야 간 극한 대치 상황은 결국 청와대가 원인 제공을 한 셈이니 말이다.  이러한 정치적 지형을 의도한 청와대가 '국민을 위한 정치인가'라며 되묻는 모양새는 그야말로 한 편의 희극이 아닐 수 없다. 

 

진정 '국민을 위한 정치'란 무언가?  사회적 대타협을 애써 무산시키며 청와대가 정치권을 압박하는 행태가 거기에 부합하는 걸까?  아니면 공포감마저 불러일으키며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한껏 조장하고 나서는 게 과연 국민을 위한 정치라고 할 수 있을까?  국민연금 개정에 대한 문제는 정치권에서 합의한 바와 같이 사회적 기구를 통해 얼마든 논의가 가능한 사안이다.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청와대의 꼼수 내지 무리수는 오히려 국민을 위한 정치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이나 멀다.  국민을 언급하고 있지만 정작 국민은 뒷전인 탓이다.  때문에 이번 대통령의 '국민을 위한 정치' 발언은 그 어느 때보다 공허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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