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툼스톤> 세기말적 혼돈과 불안감의 진원을 좇다

새 날 2014. 10. 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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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역시 간판 내릴 때가 되었는가 보다.  주초까지만 해도 집 주변의 상영관에서조차 모든 회차에 걸쳐 상영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달이 바뀌고 불과 하루 이틀 사이에 환경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가까운 곳에선 이제 볼 수 없게 됐다.  원래 지난 주 감상하려 했으나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1주일을 미뤘더니 아뿔싸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고 만 것이다.

 

자칫 예매권을 날려 버리게 될 상황, 이번 연휴를 활용해 상영관을 찾기로 했다.  집에서 그리 먼 곳은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할 거리이긴 했다.  그나마 상영횟수도 많지 않아 시간 선택에 있어 내게 허락된 여력은 많지 않았다.

 

리암 니슨표 영화라 애초부터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정확히 그만큼의 수준이었던 듯싶다.  예상했던 대로 리암니슨의, 리암 니슨을 위한, 리암 니슨에 의한 영화였다.  물론 순전히 우연이겠지만, 심지어 그의 전작 '논스톱'에서의 술 주정뱅이 설정까지 비슷했다.  다만, 영화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그 묘한 분위기 탓에 굳이 우열을 따지자면 왠지 '툼스톤' 쪽으로 균형추가 1센티 정도 더 기울 것 같긴 하다. 

 

 

형사인 맷(리암 니슨)은 알콜 중독자다.  그날도 그랬다.  그는 자주 가던 한 카페에 들러 늘 해오던 것처럼 익숙하게 술을 주문한 뒤 마시던 와중이었는데, 누군가 여럿이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총으로 카페 주인을 살해하고 달아난다.  본능적으로 분위기를 간파한 맷은 그들의 뒤를 쫓아 세 명의 용의자 모두를 총으로 사살하는데, 그가 쏜 총알 중 한 발이 그만 잘못 날아가 주변을 지나던 7살 아이의 눈을 관통해 즉사하게 만든다.



이 사건으로 경찰을 그만 둔 맷은 알콜중독자 모임에 나가 그 좋아하던 술을 끊고 사립탐정이란 새 직업을 갖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정확히 1999년, 알콜 중독자 모임을 통해 알게 된 한 사람이 자신의 동생에게 문제가 생겼다며 일을 의뢰해 온다.  얘기를 직접 듣기 위해 동생을 찾은 맷은 누군가 그의 직업상 약점을 이용해 아내를 납치하여 돈을 요구한 뒤 돈만 탈취한 채 그녀를 잔혹하게 살해한 사실을 접하게 된다.

 

 

그의 직업이 마약 중개상임을 알게 된 맷은 직감상 관여해선 안 될 일임을 깨닫고 손을 떼기로 하지만, 또 다시 맷을 찾아온 그가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된 아내의 뒷얘기를 털어놓으며 맷의 마음을 흔들어 놓게 되고, 결국 맷은 그의 의뢰를 받아들여 아내를 살해한 일당을 쫓기로 하는데.....

 

이 영화속에서 몇 차례 등장하는 장치가 있다.  다름아닌 Y2K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1999년이었고, 당시 한 세기의 마감뿐 아니라 새로운 밀레니엄의 탄생으로 인해 20세기에 만들어진 컴퓨터들이 2000년 이후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더라도 무언가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던 때다.

 

더욱 답답했던 건 실제 2000년이 돼 봐야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점들이 드러나게 될지 알 수 있는 상황이라 무수한 억측만 난무했던 터다.  다행히 2014년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무탈한 것을 볼 때 당시 아무런 문제도 발생치 않았다는 의미가 된다.  결국 Y2K는 기우로 그친 셈이다.

 

하지만 당시엔 새로운 세기와 뉴 밀레니엄을 맞아 무언가 세상의 종말이라도 온듯 여러 분야에서 세기말적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 영화에선 그러한 몽환적인 세기말적 분위기를 영화 속에 녹여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뉴욕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한 칙칙한 회색 빛깔과 음울한 분위기가 왠지 그러한 느낌을 심어주려 노력한 흔적으로 와닿는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그 진원지일 듯한 세기말의 음울한 기운은 직업상 약점을 이용해 잔혹한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들에게로 와서야 비로소 정점을 찍는다.  그들의 인상 자체가 참 거시기하다.  이들의 엽기적 범죄행위는 한껏 불안감을 내포한 세기말의 상징적 장치일지도 모르겠다.  

 

 

아울러 칙칙한 톤의 영화 분위기에 유일하게 원색을 입혀 도드라져 보이게 만들고, 슬로우 장면과 전혀 생뚱맞은 밝고 경쾌한 음악으로 희생자가 될 처자를 비출 땐 하도 그로데스크하여 아마도 이 처자가 1999년과 2000년을 연결해 주는 상징적인 존재 아니었는가 싶은 생각마저 들게 했다. 

 

 

물론 본의 아니게 파트너가 된 흑인 소년 TJ 역시 이 처자와 함께 새로운 밀레니엄을 연결해 주는 매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 듯싶다.

 

영화 자체는 솔직히 별로였다.  내용이나 소재거리도 그다지 특이하지 않았고 어느 정도 예측이 될 만큼 뚜렷한 반전 효과 같은 장치도 없어 다소 밋밋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오히려 영화 관람을 마친 뒤 자꾸 당시의 음울한 분위기가 연상되며 여운이 길게 남는 걸 보니 감독이 애초 의도했던 연출이 일정 부분 효과를 거둔 게 아닐까 싶기는 하다.

 

 

감독 스콧 프랭크

 

* 이미지 출처 : 다음(Daum) 영화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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