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두근두근 내 인생> 바람이 분다 더없이 따뜻한 바람이

새 날 2014. 9. 15.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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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바람을 가장 앞서 반겨하는 건 나무들이고, 바람결 따라 흔들리는 나무들의 몸짓을 보고서야 계절이 그 뒤를 따른다.  또 다시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 때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간절하게 살고 싶어진다.  영화속 아름이도 그랬다.  실은 그가 간절히 살고 싶다고 느끼던 때는 숨을 쉬고 있는 모든 순간이다.

 

오늘 따라 아내의 아침 얼굴이 이상하다.  마치 가수 민해경 같다.  혹은 왕눈이?  아내에게 물어본다. 

 

"얼굴이 왜 그래?  꼭 왕눈이 같애"  황당한 대답이 돌아온다.

 

"어제 영화 보느라 하도 울어서 그래"

 

그랬다.  어쩐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곁에서 연신 훌쩍이는 눈치더라.  그렇다고 하여 마냥 눈물만을 짜내는 영화는 아니니 오해 마시라.  아내는 평소에도 눈물샘이 약한 편이라 드라마를 보면서도 눈물을 곧잘 뚝뚝 떨구곤 했다.  단언컨대 영화를 보는 내내 과도한 눈물샘 자극 장면은 없다.  오히려 난 즐거운 마음으로 관람할 수 있었다.

 

 

16세 소년 아름이(조성목)는 '선천성 조로증(일찍 늙는 증상)'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그래서 나이는 비록 이팔청춘이지만 신체 나이는 무려 80세에 가깝다.  시한부 삶이다.  그의 아버지 대수(강동원)는 택시 기사이며, 현재 아름이와 같은 나이인 16세 때 역시 동갑인 아름이 엄마 미라(송혜교)를 만나 아름이를 덜컥 임신시키고 만다.  두 사람의 만남은 마치 영화 내지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운명 그 자체였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아직 중학생에 불과한 이들이 아기를 임신한 상황에서 이를 반겨할 부모나 친지들은 없다.  결국 그들은 집을 뛰쳐나온 채 독립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아름이는 비록 희귀병을 앓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여의치 않은 가정이지만, 그들은 서로를 보듬으며 그 누구보다 밝게 살아가고 있던 와중이다. 



그러던 어느날 방송국 PD로 일하고 있던 아름이 엄마의 학교 동기 덕분에 아름이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그의 안타까운 사연이 소개되며 전국에 방송 전파를 타게 되는데...

 

누구보다 정이 많고 나이에 비해 속 깊은 아름이 역을 맡았던 조성목의 연기가 무척 좋았다.  아들보다 분명 철이 덜 든 듯한 ' 헛발왕자' 아름이 아빠 강동원의 좌충우돌 코믹 연기도 괜찮았고, 학창시절 그 고운 얼굴로부터 예기치 않게 '씨발 씨발'이란 욕을 남발하며 일명 '씨발공주'라 불리는 송혜교의 연기도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적어도 그들의 연기로부터 불안감이 느껴지진 않았으니 이 정도면 역할에 나름 충실한 게 아닐까 싶다.

 

 

그들의 연이 맞닿았던 16세 당시로 돌아가 마치 청소년인 양 교복을 입고 학생 흉내를 내던 능글맞은 연기는 현재의 그들 나이 탓에 물론 어색한 측면이 엿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코믹 코드란 점을 감안한다면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싶다. 

 

아름이에게 늘 요구르트를 건네며 다가오던 이웃 할아버지 백일섭의 구수한 연기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한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그냥 툭툭 내뱉는 식이라 마냥 가벼울 듯싶지만, 실은 재차 곱씹어 봐야 할 만큼 촌철살인인 경우가 더 많았다.  겉은 냉정하지만, 왠지 속은 따스한 감성을 지녔을 것만 같은 이성민 씨의 어벙벙한 주치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철없는 아빠는 TV속에서든 아니면 밖에서든 장소 불문한 채 젊은 처자들만 보면 눈을 떼지 못하고 침을 질질 흘리기 바쁘다.  이런 모습을 지켜 보던 미라는 그에게 가자미 눈으로 응수하지만 그뿐이다. 

 

우연한 기회에 소녀시대 콘서트 현장에서 경호 알바를 하게 되는 아빠인데, 하필 태티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장면이 TV를 통해 미라에게 딱 걸리고 만다.  분장실에서 태티서 세 사람이 아름이 아빠에게 관심을 보이며 한 마디씩 툭툭 내던지는 행동에 평소 걸그룹에 환장해 왔던 그는 그만 정신이 혼미해지기까지 한다.  이를 어쩌나.

 

 

시한부 삶을 사는 아름이의 다큐멘터리가 방송을 탄 뒤로 성금이 줄을 잇고 응원 메시지가 봇물을 이루지만, 반대로 그의 외모를 조롱하고 비하하거나 저주를 퍼붓는 부류들도 역시 활개를 치며 아픈 아름이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사회 일각에서 부는 저급한 바람이 희귀병을 앓으며 시한부 삶을 사는 아이의 마음마저 후벼파고 있었다.  특히 특수한 환경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려는 파렴치한의 모습은 우리 사회를 그대로 축소시켜 놓은 듯싶다.

 

주 예수를 믿으라며 병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일종의 선교 활동을 벌이는 이들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은 흡사 길거리의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싶으며, 특정 종교의 삐뚤어진 선교 방식을 제대로 비튼다.

 

철없던 아름이 아빠는 오히려 속 깊은 아름이 덕분에 진짜 아빠로 변모해 간다.  집을 뛰쳐나온 이래 이제껏 한 번도 찾지 않았던 아름이 할아버지(김갑수)에게 어느날 아빠는 다다가게 되고, 가출한 이래 자신은 늘 아버지를 외면하고 있었지만 반대로 연로한 아버지는 언제나 아들과 손주 생각뿐이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아름이를 매개로 가족 간의 관계가 극적으로 복원되던 찰나다.

 

아름이가 이담에 커서 되고 싶은 건 아빠란다.  아빠가 되고 싶은 이유는 단 하나다.  아름이 같은 아들을 직접 키워보며 아빠의 마음이 어떤지를 확인해 보고 싶단다. 

 

난 반대로 우리 아들 녀석이 속 썩일 때면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 이담에 장가가서 너랑 똑 같은 아들을 낳아 키워 보며 이 애비 마음이 어땠는지 몸소 겪어 봐라'

 

 

아름이라는 속 깊은 아이를 통해 가족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케 하며 우리 스스로를 반성하게끔 만든다.  깨알 같은 코믹 요소와 다양한 에피소드 그리고 특별 출연한 감초 연기자들의 호연 덕분에 두시간 남짓의 러닝타임이 지루할 틈 없다.  군더더기가 없음은 감독이 연출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의미로 와닿는다.  가족 전체가 함께 관람하면 더욱 좋을 매우 따뜻한 영화다. 

 

또 다시 바람이 분다.  여름의 흔적을 지우려는 듯 지금 부는 바람은 제법 시원하다.  그러나 가을 길목에서 불어오는 요즘 바람도 좋지만, 그보단 아름이가 남겨 준 따뜻한 바람이 우리 사회에 잔뜩 불었으면 더없이 좋겠다.

 

 

감독  이재용

 

* 이미지 출처 : 다음(Duam) 영화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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