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타짜 - 신의 손> 화투판에 풀어놓은 부나비 같은 욕망

새 날 2014. 9. 27.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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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 바둑을 소재로 한 '신의 한 수' 그리고 도박을 소재로 한 '타짜'.. 이 두 영화엔 묘한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바둑과 도박은 그저 허울 좋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을 뿐 온통 눈속임으로 범벅이 된 채 사기극을 통해 관객마저 속이려드는 컨셉 말고 말이다. 

 

다름아닌 '하우스'라는 공간이다.  영화속에서처럼 과연 내기 바둑이나 도박을 위해 실제로 그러한 류의 은밀한 장소를 대여해 주고 또한 조직적으로 그곳을 찾는 이들의 돈을 뜯어내기 위해 사기 행각을 벌이며 먹고 살아가는 기생충 같은 사람들이 존재하는가의 여부는 내게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만화 내지 영화 장르에서나 등장할 법한 허구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가끔 언론 기사를 통해 모처에 모여 주기적으로 도박 행각를 일삼아온 사람들의 검거 소식을 듣고 있노라면 어쩌면 '하우스'라는 형태가 실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아니면 거꾸로 이런 영화 때문에 그러한 업종과 공간이 생겨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은 그야말로 다양한 것일 테고, 또한 돈을 버는 방법 또한 우리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을 만큼 무궁무진하다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비단 영화속에서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우린 흔히 함께 여행을 떠나 보면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고, 또한 함께 도박을 해보면 그 사람의 성격를 알 수 있노라 말하곤 한다.  어쩌면 도박의 속성이란 게 인간의 다면성을 그대로 빼다 박아 판박이 해놓은 형태의 것일지 모른다.  서로를 속고 속이며 짓밟고 올라서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간의 본성을 묘사하기 위한 소재로써 사실 이만한 것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일 테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영화들이 잊을 만하면 만들어지는 이유도 아마 이러한 연유 때문일 테다.

 

 

중국집 배달일을 하는 대길(최승현), 현실은 비록 비루하나 허세 좋고 손재주가 워낙 남달라 도박판이 벌어지는 곳에만 가면 늘 승승장구다.  우연한 기회에 그는 폭행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상대방에게 상해를 입힌 채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런 와중에도 그의 타고난 허세는 여전하다.  그를 한눈에 반하게 만든 미나(신세경)에게 결혼을 약속하며 화려한 모습으로 돌아올 테니 기다려 달라는 일방적인 한 마디만을 남긴 채 살던 곳을 떠난다.

 

 

강남에서 그의 선배인 짜리(이동휘)를 통해 '하우스'에 취업하게 된 대길, 사장(이경영)의 눈에 띤 그는 타짜로 화려하게 데뷔한다.  처음 시작했던 반지하 월세방으로부터 어느덧 번듯한 대형 아파트로 수직 이동하며 신분상승의 꿈을 이루게 되는 대길, 하지만 이러한 달콤함은 오래가지 못한다.  돈을 놓고 벌이는 사람들의 농간과 속임수 그리고 기만에 의해 대길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며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롤러코스터를 타게 되는데..

 

 

2시간 30분에 이르는 러닝타임이 지루할 틈이 없다.  긴장감의 연속이다.  오랜 친분관계를 쌓아온 사람라고 하여 그들을 철석 같이 믿으며 안심하기엔 너무 어리석은 짓이다.  배신은 순식간에 이뤄진다.  반전에 반전, 또 다시 반전이 이뤄지며 정신을 홀딱 빼놓는다.  긴장의 끈을 놓으려는 순간 스크린 위에선 아무도 믿지 말라며 채근하기 바쁘고 우린 또 이를 쫓느라 정신이 없다. 

 

어차피 손놀림으로 이뤄진 사기술이지만, 타짜의 세계에도 엄연히 우열은 존재한다.  그러나 온전한 약육강식이라기보다 누가 더욱 치졸한가의 수 싸움이 그들의 운명을 가른다.  실제 인간 세계 역시 표면상 실력을 놓고 겨루는 경쟁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을 훑을 경우 결국 실력이 아닌 경우가 다반사 아닌가.

 

 

이하늬와 신세경의 신경전이 제법 날카롭게 펼쳐진다.  노처녀 히스테리 류의 갑, 이하늬가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는 신세경에게 마구 쏟아붓는 저주는 신선하기까지 하다.  화장을 평소보다 더욱 짙고 표독스럽게 그리고 나온 신세경의 도도함은 점차 악랄한 악인들로 상대를 갈아탈 때마다 빛을 발하는 느낌이다. 

 

 

타짜의 3대 고수 중 하나로 출연한 김윤석, 예의 능글맞은 연기를 선보이며 그만의 카리스마를 감춰놓은 채 약방의 감초마냥 필요할 적마다 이를 관객들에게 슬쩍슬쩍 꺼내 보인다. 

 

먹이 피라미드로 따지자면 김윤석보다 한 단계 아래에 놓여 상대적으로 약한 카리스마로 그려진 곽도원의 악인 연기는 물이 오른 느낌이다.  그의 풍모로부터 전해져오는 느끼함이 잔인함과 더해져 묘한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이쯤되면 최고 악인의 대표 주자로서 자리를 굳힐 기세다. 

 

기억에 남는 연출 장면 몇 가지가 있다.  자꾸 언급하여 미안하긴 하지만 비슷한 소재 및 장르인 '신의 한 수'와의 비교는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이 영화에선 '신의 한 수'에서처럼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큼 잔혹한 장면이 많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행 당한 후의 상황을 1인칭 시점으로 묘사해 생생함을 더한다.  아울러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연출 기법이긴 한데, 자동차 사고 순간의 충격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다만, 끝없는 반전이 이뤄지다 보니 다소 산만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배우들의 역할 중량감 또한 고루게 분산되어 그러한 느낌을 더한다.  아울러 끝 부분의 연출이 엉성했던 점은 옥에티라 생각된다.  대충 마무리지으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린 왜 이런 말도 되지 않는 내용의 영화를 보며 흥분하거나 기뻐하고 그렇지 않으면 또 슬퍼하게 되는 걸까?  이는 아마도 너무나 각박한 삶, 현실세계에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마치 로또 1등 당첨과도 같은 환상을 스크린속에서나마 환타지의 형태로 잠시 맛보며 대리만족감을 얻기 위해서 아닐까 싶다. 

 

 

감독 강형철

 

* 이미지 출처 : 다음(Daum) 영화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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