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메이즈 러너> 영화적 상상이 빚어낸 압도적 몰입감

새 날 2014. 10. 5. 16:12
반응형

 

 

소설이 원작이란 사실을 영화 관람 후에야 알았다.  물론 이는 해당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았다는 의미가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품성 따위는 차치하더라도 영화적 상상력이 빚어낼 수 있는 비슷한 장르의 작품들 중 최고의 재미를 선사해 준 영화 아니었나 싶다.  압도적인 몰입감이란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주변에서 팝콘 등을 우물거리거나 비닐봉지 부스럭거리는 소리, 그리고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마저 전혀 거슬리지 않을 정도였다.  메너 좋지 않은 분들이 근래 많이 늘어나는 추세라 영화 관람할 때마다 본의 아니게 앞서 언급된 행동들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는데, 분명 이 영화의 시선을 잡아 끄는 능력은 근래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그 급이 달랐던 듯싶다. 

 

 

토마스(딜런 오브라이언)가 기억을 상실한 채 화물용 엘리베이터에 실려 한없이 올라가 놓이게 된 곳은 전혀 낯선 공간이었다.  그곳엔 이미 같은 방식으로 던져진 소년들로 가득했다.  그들 스스로 삶을 꾸리고 살아가는 터전은 미로로 이뤄진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미로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는 아침에 열렸다 저녁이 되면 다시 닫히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아울러 미로를 이루는 경로는 매일 랜덤으로 바뀐다.

 

 

출입이 금기시된 절대 성역으로써의 미로는 리더의 허락을 득한 자만이 왕래할 수 있다.  그곳을 출입하는 유일한 이들은 '메이즈 러너'라 불리는, 미로의 구조를 매일 추적하여 탈출구를 그려가며 가까운 미래에 이곳을 떠나길 꿈꾸는, 기약없는 작업에 몸 담고 있는 소수의 몇몇뿐이었다. 

 

 

토마스는 누구보다 호기심이 왕성하고 자유분방하여 기존의 그곳을 철저하게 통제해오던 룰마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온통 하지 말라는 것들 투성이인데다 숨기는 무언가가 있는 듯도 싶고, 자신이 왜 이런 환경에 처해졌는지 너무나도 궁금해하던 터, 아울러 이곳을 탈출하고자 하는 무한 욕망에 이끌려 그는 어느날 리더의 허락 없이 미로 속으로 뛰어드는데.... 

 

 

비록 많은 사람들로 이뤄지진 않았지만, 이곳 역시 엄연히 사람사는 세상이거늘, 때문에 그나마 몇 되지 않는 사람들조차 여러 부류로 나뉜다.  전통을 고수하려는 세력과 혁신을 꿈꾸는 세력이 둘로 나뉜 채 힘 겨루기를 벌이기 일쑤다.  이른바 보수와 진보라 불리는 세계관이 이 영화를 통해서도 투영되고 있다.

 

토마스는 이곳에서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어떡하든 미로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대표적인 진보적 인물로 묘사되어 있고, 갤리(윌 폴터)는 기존의 룰이 깨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대표 보수 인물로 그려져 있다. 



"이곳에 눌러앉아 죽으나 미로속에 들어가 탈출을 시도하다 죽으나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난 차라리 미로속에서의 죽음을 택하겠어"

 

토마스의 사상을 읽을 수 있는 대사 한 꼭지다.  둘의 신경전은 사실 초반부터 그려져 있지만, 단순한 육체적 힘 겨루기 양상으로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사상적 간극에 의한 노선 투쟁으로 변모해 간다.

 

 

갤리 역의 윌 폴터는 지난해 관람했던 영화 '와일드 빌'을 통해 개성 있는 캐릭터로 각인되어 있던 터였는데, 한창 자라고 있는 와중이라 그런지 꽤나 덩치가 커져 당시보다 많이 어른스러워졌다.  그 독특한 외모가 앞으로 영화계에 한 획을 그을 인물로 성장시키리라 기대한다. 

 

민호(이기홍)라는 캐릭터로 등장한 배우는 실제로 한국인이었는가 보다.  메이즈 러너의 리더역을 맡고 있지만, 그 역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를 꺼려하고 더군다나 약간은 비겁한 캐릭터로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뒤늦게 메이즈 러너에 합류한 토마스에 의해 동화되며 점차 진보적인 인물로 변모해 간다.

 

 

이야기의 얼개는 사실 별 거 없을 만큼 단순하다.  비싼 몸값의 유명 배우들 출연도 없다.  하지만 감독의 뛰어난 연출로 인해 영화가 시작되면서부터 종영될 때까지 단 한 순간조차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특별히 제작비용이 많이 들었을 것 같지도 않다. 

 

실제 촬영공간은 아이들의 삶의 공간이랄 수 있는 운동장과 실내 세트 하나 정도가 고작이었을 테고, 나머지는 죄다 CG가 담당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하여 고급스러운 CG가 사용된 것 같지도 않다.

 

결과적으로 커다란 제작비를 들이지 않고도, 아울러 뚜렷한 작품성 없이도, 영화적 상상력만으로 얼마든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가 증명해 보이고 있는 셈이다.  서로 다른 세계관 중 과연 어느쪽 세계관이 이 세상의 발전을 이뤄왔는가를 지켜보는 일 또한 흥미진진하다.  일단 다른 걸 다 떠나 무조건 재미있다는 점 때문에 난 이 영화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감독  웨스 볼

 

* 이미지 출처 : 다음(Daum) 영화 섹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