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국민의 슬픔과 분노마저 통제하려 드는 정부

새 날 2014. 4. 29.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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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 언론사를 통해 해양수산부의 위기대응 매뉴얼이 공개됐다.  그런데 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순한 매뉴얼이 아니었다.  해양수산부가 공개한 '해양사고 위기관리 실무 매뉴얼'에 따르면, 대형 선박 재난 발생 시 언론 담당자는 여론을 다른 방향으로 분산시킬 대체 기사를 개발해야 한다는 지침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이름부터 요상하기 그지없는 이른바 '충격 상쇄용 기사 아이템' 개발이다.  이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가뜩이나 험악해진 민심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고발뉴스

 

정부의 허술하고 무능한 대응으로 배에 남겨진 수백 명의 승객 중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살리지 못해 뭇매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된 대처는 커녕 그저 자신들의 과오를 덮기 위한 여론 공작에만 골몰하고 있는 듯한 정부의 이러한 행태에 대해 비난의 화살이 쇄도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정도다.

 

그동안 정부와 집권 여당에게 불리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이들은 정황상 국면 전환용 물타기라는 의혹 아닌 의혹을 야기시켜가며 무수한 대체 사건을 터뜨려 왔고, 이를 통해 교묘히 빠져나갈 수 있었던 뛰어난(?) 자체 역량이 이번 매뉴얼을 통해 그저 정황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 엄연히 실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여실히 드러낸 셈이다. 

 

이러한 와중에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정부 바판 보도 자제를 요청하는 문자를 보낸 것으로 알려져 더욱 물의를 빚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정부의 대응은 허술하기 짝이 없으면서 여론 통제와 호도를 위한 술책에 있어선 능수능란하기가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정부가 여기에 한 술 더 뜨고 나섰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언론의 의혹 보도에 대해 이의 통제를 시도한 정황이 속속 드러난 것이다.  미디어오늘이 28일 단독 보도한 바에 따르면,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사를 조정 통제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언론 모니터링을 강화해 문제가 되는 기사에 대한 삭제를 요구하는 등 세월호 관련 보도와 의혹 제기에 대해 전방위로 통제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정부의 내부 문건을 입수했단다.

 

ⓒ미디어오늘

 

그중 방통위의 '"세월호" 관련 재난상황반 운영계획'에 따르면, 재난상황반을 구성하면서 '방송사 조정통제' 권한을 부여하고 '방송 오보내용'과 '인터넷 오보'를 모니터링하여 정부의 오보 판단 기준에 따라 해당 언론사를 통제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미디어오늘

 

아울러 방심위가 방통위에 보고한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 대응 보고' 문건을 통해서는 언론과 시민들의 의혹 제기에 대해 강력하게 규제하거나 이를 통제하려는 그들의 속내를 확인할 수 있다.

 

일찍이 일본발 방사능 오염 공포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괴담으로 치부하고 이를 잡겠다며 진작부터 으름장을 놓았던 정부다.  또한 철도노조 파업 당시엔 철도 민영화 괴담과 유언비어가 퍼지고 있다며 대통령이 직접 SNS 유언비어에 대한 대응을 공공연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벌어졌을 당시 불안해하지 말라는 정부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2차 피해로 확산되며 국민들이 불안해하자 정부는 또 다시 이를 괴담으로 규정하고 이의 차단을 위해 실제 'SNS 괴담 전담팀'을 운영해왔던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정부는 이렇듯 국민이 불안해하거나 공분을 일으킬 만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발 빠른 대처로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기보다 우선 국민들의 입막음을 통해 여론 확산 차단에 주력해온 경향이 짙다. 



정부가 여론에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건 취약한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 탓 아닐까 싶다.  국정원 댓글로 상징되는 18대 대선 부정선거 의혹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은 댓글에 의해 권좌에 올랐다는 비아냥을 피해갈 수 없고, 계속되는 인터넷과 언론 통제를 통한 여론 호도 작업이 국민들의 감정선을 건드리며 대통령의 호칭을 '댓통령'이란 표현으로 사용되어지게 만든 일등 공신 역할을 톡톡히 했을 테다.

 

단언컨데 정부가 여론 호도를 위한 노력에 쏟아부은 만큼 이번 세월호 참사에 같은 열량의 에너지로 대응했더라면 적어도 생존자 0이라는 최악의 참담한 결과를 빚어내진 않았을 테다.  오히려 취약한 정권 정통성을 만회하기 위해 국민들의 알 권리와 말할 권리를 차단하는 데에만 온 신경을 집중한 나머지 정작 중차대한 사안엔 소홀히한 경향이 컸던 탓에 오늘날과 같은 참상이 빚어졌다고 봐야 함이 맞겠다.

 

가뜩이나 국가적 재난 상황 앞에서 국민들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하나 같이 똑같은 보도를 일삼는 방송사들을 바라보며 분통을 터뜨려야 했다.  정부는 의혹이나 국민들의 궁금증 해소에 주력하는 제대로된 방송사의 보도엔 오히려 징계를 통해 재갈을 물리고 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지 모르겠다.  때문에 작금의 활활 타오르는 국민적 분노는 참사 현장 및 현실과는 괴리된, 앵무새처럼 일관된 언론사들의 보도 행태가 더욱 불을 지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결과, 당연히 정부의 몫이다. 

 

언론사와 방송사를 통제하고 조정하는 건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나 볼 수 있을 법한, 국민의 기본권마저 빼앗는 파렴치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하긴 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국가적 재난과 총체적인 정부의 무능과 부실 앞에서조차 사과도 않는 상황이니, 이러한 현실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제대로된 보도를 접하며 진실을 깨달아가는 일도 요원하고, 더군다나 국가적 재난 상황 앞에서 함께 슬퍼하며 걱정하는 일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 그저 암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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