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세월호 대자보를 떼낸 것도 결국 기성세대다

새 날 2014. 4. 23. 08:37
반응형

세월호 참사 현장인 진도 실내체육관에 붙여져 우리 사회에 잔잔한 울림을 전해주었던 대자보가 결국 철거됐다.  세월호 희생자의 지인이자 자원봉사자로 활동 중이던 한 여대생이 써붙인 것으로 알려진 이 대자보엔 현 기성세대와 정부를 비판하고 있는 내용의 글이 담겨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어른이 되지 않겠습니다

 

재난사고 어쩔 수 없었다.  아는 게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돈이 많이 들어 어쩔 수 없었다.  지위가 높으신 분이라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내 나라가 대한민국이라 어쩔 수 없었다.  세월호는 소시민의 거울상이다.  책임을 다한 사람들은 피해를 보고 결국에 이기적인 것들은 살아남았다.  수많은 사람의 생명이 달린 직업에 1년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게 맞느냐고 먼저 묻고 싶다.  몇백 명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직업에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사회를 만든 우리가, 1년 계약직 선장에게 책임에 대해 묻는 것은 그야말로 책임 전가이며 책임 회피는 아닌지.  세월호 따위로 이 많은 사람 보내려니 마음이 아려온다.  또 내가 이런 참담한 세월을 몇십년 더 보내려니 착잡한 마음이 끝까지 올라온다.  더 이상의 인명피해 없이 무사 귀환 간절히 바란다.

 

세월호 참사라는 너무도 어이없는 현실이 젊은이들로 하여금 최근 그들만의 아날로그적 감성이 깃든 사회 참여 방식인 대자보 문화를 재차 되살려낸 셈이라 볼 수 있겠다.  이를 보고 있자니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워 낯을 들 수가 없다.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고 비통하다.  하지만 그보다 우리를 더욱 괴롭게 하는 건 다름 아닌, 이러한 젊은이들의 내면적 표현마저 현실에서는 곱게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는 부분이다.

 

피해자 가족들이 현재 당하고 있을 고통, 제3자의 입장에서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테다.  비단 바닷속에 잠겨 생사를 알 길 없는 실종자 때문만도 아니다.  피해자 가족 중 특정 정치색을 띠는 전문 선동꾼이 섞여 있다며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이나 유언비어를 SNS를 통해 퍼나르기하고 유포시켜 거꾸로 선동하는 협잡꾼들 때문에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 언론의 행태가 도마에 오르고 신뢰를 잃게 되자 일반 시민들이 온라인을 통한 SNS에 의존하고 있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세계 1위 IT강국의 통신 인프라 면모는 예전보다 악성 루머가 삽시간에 퍼져나갈 수 있게 하는 든든한 토대 역할을 한다.  때문에 무엇보다 정부와 언론이 떠드는 말을 믿을 수 없게 만든 그들 스스로의 원죄가 크다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문제는 일반인들이야 그렇다 쳐도 정치인과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마저 이에 부화뇌동하며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의 행동이나 지만원 씨의 쓰레기 같은 망언 등은 작금의 혼돈 상황을 더욱 부추기는 역할을 하며 피해자 가족들의 아픈 가슴에 또 다시 대못질을 해대고 있다.  1주일동안 이어진 구조활동을 지켜보며 이미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쳐 더 이상 버텨낼 재간이 없을 만큼 힘겨운 상황일 텐데, 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들이 나타나 분탕질을 해대는 바람에 이젠 선의의 행동조차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가 없게 만든 것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격이다.

 

이젠 기성세대의 잘못을 통렬하게 비판하며 자신은 절대 그러한 기성세대가 되지 않겠노란 한 여대생의 가슴 절절한 글귀마저도 현실에선 받아들일 수 없는 처지가 돼버렸다.  외견상 정치적 놀음의 희생양이 되길 바라지 않노라는 피해자 가족들의 우려에 의한 결과지만, 실상은 우리 사회가 이러한 젊은이들의 따끔한 일성조차도 곱게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여전히 성숙하지 못해 벌어진 해프닝에 불과하다.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 허술한 대처로 모두를 분노케 한 장본인인 이 못된 기성세대들이, 결국 자신들 때문에 붙여진 대자보마저 스스로 '셀프 철거'한 셈이 아니면 과연 무엇이겠는가.  부끄럽다.


반응형